“씨앗 너무 애쓰지 마. 너는 본디 꽃이 될 운명일지니.” 붉은색 ‘그림정원’ 인장이 찍힌 캘리그래피가 입구부터 손님을 반겼다. 게스트하우스 ‘그림정원’ 안주인 김지혜씨(39)가 직접 쓴 캘리그래피다. 건물에 들어서니 상쾌한 내음이 코끝을 스친다. 역시 안주인의 솜씨로 만든 수제 방향제가 바람결에 풀어낸 향이다.

전남 여수시 관문서 8길 10-2. 이 자리는 오래전부터 숙박업소 차지였다. 여관 ‘도원장’은 가인 모텔을 거쳐 지금의 게스트하우스 ‘그림정원’이 됐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부부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유가 있었으면, 꽃을 심을 수 있는 마당이 있었으면, 그림이 걸려 있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부부가 나눈 대화는 남도로 내려와 ‘그림정원’에 담겼다.

1층은 카페로 꾸몄다. 곳곳에 캘리그래피가 눈에 띈다. “수월산 호랑이가 어젯밤에 나타나서 천군이 이겼다고 울고 가더라!” 김씨 고향인 거문도에서 외치던 응원 구호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참 멋진 일이네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는걸요”는 만화영화 〈빨간 머리 앤〉의 대사에서 따왔다. 꼬마 손님이 먹물로 쓱쓱 그린 나무 그림도 벽면 한쪽을 차지한다. 손님들도 직접 캘리그래피를 배울 수 있다.

ⓒ시사IN 김연희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몇 시간이고 ‘멍 때리는’ 것도 좋다. 24시간 공짜로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아메리카노를 뽑아 마실 수 있다. 조금 지겨워진다면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뽑아들면 된다. 큰 창 너머 동네 골목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팡이 짚고 지나가는 동네 노인, 앞집 담장을 넘어 뻗어나온 감나무 가지가 손에 잡힐 듯하다. 이웃집과 어깨를 맞대고, 마을 풍경에 녹아들고픈 주인장의 바람이 묻어난다.

그림정원은 채우기보다는 비우기에 적합한 게스트하우스다. 여수에 있는 여러 게스트하우스들이 제공하는 ‘8시 맥주 무제한 파티’가 없다. 밤 12시면 공식 취침 시간이다. 그때부터 오전 7시까지는 바깥출입이 제한된다.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여행친구를 찾고 싶은 이들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주인 부부는 숙박업소 제1의 원칙이 ‘푹 잘 수 있는 환경’이라고 여긴다. 각 방도 ‘편히 쉰다’는 목적에 충실하다. 2인실부터 6인실까지 모두 개별 화장실을 갖췄다. 호텔은 가격이, 게스트하우스는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부담스러운 여행객이라면 만족할 만하다. 조용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 때문인지 특히 모녀 손님이 많이 찾는다.

ⓒ시사IN 김연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