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가시나무언덕 게스트하우스’는 광주 양림동의 야트막한 뒷동산에 자리하고 있다. 광주 기독병원을 등지고 그리 높지 않은 언덕길을 오르니 하늘로 곧게 뻗은 굵직한 흑호두나무들이 보였다. 함께 늘어서 있는 것은 수령이 200년 넘은 호랑가시나무였다. 나뭇가지에 드리워진 전구 불빛을 통해 게스트하우스의 윤곽이 드러났다. 7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빛바랜 붉은 벽돌집이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수풀이 무성해 낮에도 사람이 오지 않는 흉가였다. 1994년, 30년 넘게 이곳에 머무르던 선교사들이 떠난 후 한동안 호남신학대학교 기숙사로 쓰이다가 방치되었다. 문화기획자 정헌기씨는 서양의 건축양식을 따르면서도 한국의 서까래, 처마 등이 조화롭게 갖춰진 아름다운 건물이 방치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2014년, 그는 호남신학대로부터 건물을 임차해 공간을 개조했다.

ⓒ정헌기 제공

게스트하우스를 둘러싸고 건물 두 채가 더 있다. 예술인들의 창작 공간으로 변모한 원요한 선교사 사택과, 광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축물인 우월순 선교사 사택이 바로 그것이다. 흑기왓장을 박아넣은 산책로를 따라 작은 개울을 건너면 세 건물의 중심이 되는 지점에 시인 김현승의 얼굴이 조각된 구릿빛 벤치가 놓여 있다. 그곳에 앉아 있자니 양림동이 담고 있는 근대의 기억이 웅성댄다. 1904년, 배유지(유진 벨) 선교사가 나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낮에는 까마귀가 하늘을 뒤덮고, 밤에는 승냥이떼가 출몰하던 풍장터인 이곳에 처음 자리 잡았던 시절부터 1994년 모든 선교사가 떠나기 전까지 그들이 펼쳤던 백년간의 숭고한 정신은 공간에 그대로 남았다.

게스트하우스는 이런 지점을 복원했다. 1층 5개, 2층 2개 총 7개 객실에 모두 선교사의 이름을 붙였다. 선교사들의 손때 묻은 창틀, 전화기 등 무엇 하나 버리지 않았고, 거실의 벽난로를 복구했다. 원래 방 구조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침

ⓒ정헌기 제공

대와 책상도 직접 짜넣었다.

방 안에는 입주 작가들의 작품을 배치해두었다. 책상용 무드등부터 벽에 걸린 그림까지 쏠쏠한 볼거리가 많다. 게다가 방 안으로 잔잔히 들려오는 새소리를 들으며 은단풍나무로 된 협탁에서 다도를 즐기는 것은 그 자체로 쉼이 된다.

꼭 필요한 부분은 현대적으로 구비했다. 바로 화장실과 주방, 테라스다. 게스트하우스의 상징과도 같은 1층의 주방은 ㄴ자 모양의 건물 외관에 ㄱ자로 통유리를 설치해 새로 만든 직사각형 모양의 공간이다. 아침 식사를 하러 나오면, 창밖에 가득 핀 노란 산수유와 나무 기둥을 타고 오르는 새끼 딱따구리들을 볼 수 있다.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꽃무릇이 군락을 이뤄 필 때도 또다시 장관이 펼쳐진다고 한다. 아침을 먹는 사람들은 한동안 창밖의 동화 같은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양림동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2층의 넓은 테라스도 압권이다. 낮에는 무성한 나무 사이로 푸른 하늘을 바라볼 수 있고, 밤에는 은은한 달빛을 맞으며 맥주 한잔을 즐길 수 있는 호젓한 공간이다. 가을이면 후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잘 익은 흑호두에 머리를 맞는 일도 있다고 한다. 테라스에는 12명은 족히 앉을 만한 넓은 테이블이 있어서 여행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즐길 수 있다. 2층에는 6인 정도가 사용할 수 있는 또 다른 테라스도 있다. 회색 벽돌로 빛나는 우월순 선교사 사택과 비탈길로 날아오는 온갖 새들을 바라볼 수 있는 아늑한 곳이다. 1팀 1객실을 주기 때문에 독립적 공간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다른 여행객들과 교류를 원한다면 테라스가 그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17 올해의 관광도시로 선정된 ‘광주 남구’

정원은 산책하기에 적합하다.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들은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새들의 수다 소리에 일찍 잠에서 깼다면 뒷동산 산책로를 걸어보자. 한 바퀴 돌고 오는 데 20여 분이 소요된다. 선교사들이 차고로 쓰던 창고도 다목적 예술공간으로 변모 중이라 볼거리는 더욱 풍부해질 듯하다.

“광주를 왜 가? 관광할 거면 차라리 순천엘 가.” 출발 전, 토박이들의 추천사를 기대했지만 전남 출신 지인들은 하나같이 다른 관광지를 권했다. “게스트하우스가 몇백 개는 될 텐데 굳이 광주까지 가서 그걸 봐야겠어?”라고 염려하는 친구도 있었다. 일리 있는 말이다. 단지 하룻밤 묵는 숙소를 찾자면 게스트하우스는 너무나 많다. 하지만 어디서 묵고 있느냐는 때때로 여행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 취향에 꼭 맞는 게스트하우스 하나는 그 자체로 관광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근사한 건축물에서 도심 속 자연을 즐길 기회는 광주에만 있다. 문체부는 ‘2017 올해의 관광도시’로 ‘광주 남구’를 선정했다. 더 유명해지기 전에 미리 방문해보기를 권한다. ●

 

주소 광주 제중로 47번길 20

홈페이지 www.horanggasy.kr

체크인 오후 3~7시  체크아웃 낮 12시 이전

조식 제공 식빵·달걀, 드립 커피·우유·주스

주인장이 추천하는 곳 1934년에 설립된 예술영화 전용관인 광주극장, 양림동 역사문화마을 속 잡동사니를 모아 예술공간으로 재탄생시킨 펭귄텃밭, 이장우·최승효 가옥(최승효 가옥은 개방 시기가 비정기적이니 사전에 확인 필요), 옛 전남도청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고자 지하로 건설한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예술가들의 작품과 공연을 관람하고, 다양한 먹을거리를 즐길 수 있는 대인예술야시장(매주 토요일 오후 7~11시), 근대 건축물이 잘 보전된 수피아여자 중·고등학교

20자평 근대와 현대, 자연과 도심의 조화로운 동행

 

기자명 차해나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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