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까지는 전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차로 10분 정도 걸렸다. 수다스러운 택시 기사의 추천 맛집 리스트가 동날 때쯤이었다. 미터기를 끄며 기사가 말했다. “전주는 눈보다 입이 즐거운 도시예요.”

전주 서학동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몽유화원’은 눈도 꽤 즐거운 곳이다. 이곳 간판에는 ‘화가의 집’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수사가 아니다. 담장에는 벽화, 마당에 토르소, 방 안에는 유화까지. 숙소 전체가 일종의 전시관 같다. 여기저기 걸린 꽃 그림이 개량 한옥의 분위기를 독특하게 만들고 있다.

몽유화원은 사연 있는 게스트하우스다. 주인장이 ‘현역 화백’ 이희춘씨다. 8년 전에는 전주 한옥마을에서 작업했다. 그런데 한옥마을이 관광명소가 되면서 치솟은 임차료를 감당할 수 없었다. 2012년 이씨는 서학동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땅값이 훨씬 저렴한 데다 거리도 가까워 이사하기 편했다. 이희춘 화백이 서학동 작업실로 쓰던 건물이 몽유화원이다. 종종 동료 작가들의 작품들을 전시하기도 했다. 이후 알음알음으로 여러 분야 예술인들이 모여들면서 서학동은 ‘예술촌’이라 불렸다. 이 화백은 예술촌 촌장을 맡고 있다.

이희춘 화백이 작업실을 게스트하우스로 바꾼 것은 자의 반 타의 반에서였다. 미술 작업만으로는 벌이가 시원찮았다. 작업실 방 네 칸 가운데 하나를 빼서 민박집을 겸하기로 했다. 그런데 손님들이 자는 방 옆에서 작업을 하려니 피차 불편한 상황이 생겼다. 이 화백은 나머지 방들도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하고, 작업실은 가까운 곳에 새로 차렸다. 몽유화원 게스트하우스 곳곳에 남은 작품은 모두 이희춘 화백 본인의 것이다.

기자가 묵은 몽(夢)실은 2인실이었다. 방은 좁은 편이었으나 천장이 높아서 답답하지는 않았다. 바닥과 천장은 나무였다. 방문도 전통적이었다. 얇은 목재에 창호지를 발랐다. 벽에 걸린 그림 두 폭과 조화를 이뤄 묘한 운치를 자아냈다. 위생 상태도 좋았다. 침구와 수건이 정갈하게 개어져 있었다. 화장실에서도 불쾌한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단점은 소음이다. 문과 벽이 얇아 방음이 약했다. 밤늦게까지 옆방 아기의 울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거실에 있는 다른 손님들이 신경 쓰여, 통화를 하려면 밖에 나가야 했다.

게스트하우스 마당은 이희춘 화백 개인 미술관인 ‘선재미술관’ 후문과 연결돼 있다. 방문 당시에는 이 화백이 그린 화려한 꽃 그림들이 주로 전시돼 있었다. 선재미술관 정문으로 나오면 한산한 거리다. 건너편에는 다른 작가들의 작업실이 나란히 늘어서 있다. 전주천 방향으로 조금 나가면 ‘예술 체험’을 할 수 있는 공방이 많다. 한지공예, 도자기공예, 천연염색 등을 직접 해볼 수 있다. ‘서학동미술관’과 ‘서학동사진관’에서는 늘 전시가 열린다. 이 근방 카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간혹 배낭을 멘 외국인 관광객들이 골목에 들어가 벽화를 등지고 사진을 찍었다.

다리 하나 건너면 바로 전주 한옥마을

큰길로 나와 남천교를 건너면 바로 한옥마을이다. 다리 하나 건넜을 뿐인데 이쪽은 관광객으로 바글바글했다. 이름난 전주비빔밥집에 가보려 했으나 토요일 밤이라 그런지 자리가 없었다. 별수 없이 한산한 식당에 들어가 전주비빔밥을 시켰다. 평소 즐겨 먹는 메뉴가 아니었는데도 맛이 좋았다. 막걸리를 시키자 양념한 돼지고기를 서비스로 내줬는데, 비빔밥보다 양이 많았다.

애주가라면 한옥마을 ‘가맥’에 가볼 만하다. 가맥은 ‘가게 맥주’의 준말로, 슈퍼마켓에서 간단한 마른안주와 함께 맥주를 마시는 곳이다. 가장 유명한 곳은 ‘전일슈퍼’인데, 이 집만의 독특한 소스가 이름이 높다. 간판처럼 입구에 ‘슈퍼’가 있긴 하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영락없는 술집이다. 워낙 입소문이 난 곳이라 테이블이 많은데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아침 식사로는 토스트와 잼, 요플레를 준다. 이후에는 주인과 따로 마주칠 일이 없다. 퇴실 시간에 맞춰 짐을 챙겨 나오면 된다. 게스트하우스 바로 옆에 있는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전주에는 이름이 ‘○○회관’인 식당들이 있는데 대개 가정식 백반을 싼값에 파는 곳이다. 이 ‘회관’에서 6000원짜리 백반을 시키자 나물 11종과 동태찌개가 나왔다. 전주에서는 마지막 식사까지 즐거웠다. ●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이상원

주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서학3길 85-1

홈페이지 http://cafe.daum.net/mongyuguesthouse

체크인 오후 3시  체크아웃 오전 11시

조식 제공 식빵, 각종 잼, 요플레

주인장이 추천하는 곳 4월부터 매주 토요일 전주교대 앞에서 ‘토요문화장터’가 열린다. ‘예술마을’이라는 서학동 특유의 공동체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

20자평 한옥마을만으로 아쉽다면 서학동 예술마을로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