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보다 마음이 먼저 군산 여행을 시작했다. 군산으로 향하는 고속버스가 출발할 즈음, 장문의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숙박을 예약해둔 게스트하우스 이웃의 ‘이웃남’ 3인이 추천하는 군산의 명소와 맛집 목록이었다. 현지인이 별점까지 붙여 선별한 목록을 보다 보니 여행 전 구입한 가이드북이 무색했다.

건축물대장도 없는 적산(敵産)가옥. 1920~1930년께 지어진 집이라고 추정할 뿐이었다. 이런 적산가옥이 현재 군산에 170여 채 정도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스트하우스 이웃 역시 해방 후 일본인들이 자국으로 돌아가면서 남겨놓고 간 집 중 하나였다. 2011년 호원대 시각디자인 겸임교수로 부임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온 ‘이웃남’ 1호 이진우씨가 후배들과 돈을 모아 샀다. 80년 넘는 세월을 견딘 집은 찬찬히 뜯어보니 예뻤다. 가파르게 뻗은 지붕과 일자 처마, 대나무와 황토로 된 벽면 등 전형적인 일본식 주택이었다. 게다가 담장을 마주한 집은 영화 〈장군의 아들〉 〈타짜〉 〈바람의 파이터〉 등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히로쓰 가옥(신흥동 일본식 가옥·국가등록문화재 제183호)이었다.

ⓒ시사IN 장일호

이씨는 여행자들이 군산을 ‘거쳐 가는’ 도시 중 하나로만 여기는 게 안타까웠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해, 라이프스타일 잡지 〈매거진 군산〉(월간)을 창간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숙고 끝에, 사들인 집을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하기로 했다. 2015년 9월 게스트하우스 이웃이 문을 열었다. “여행자들이 군산에서 시간을 보내게 하고 싶었다. 사람들을 머물게 하려면 숙소가 있어야 했다.”

개업에 앞서 2015년 5월에는 마을기업인 펀빌리지 협동조합을 만드는 데 손을 보탰다. 이웃을 비롯한 게스트하우스 10여 곳을 비롯해 매장이 없는 가내수공업자나 영세사업자들이 모였다. 협동조합 사무실에서는 이들의 물건을 위탁 판매하고, 여행자의 짐을 500원에 보관해주기도 한다. 함께 ‘군산학’을 공부하는 것도 이들 몫이다. 펀빌리지 소속 게스트하우스가 공동으로 파티나 영화제를 열기도 한다. 이씨는 영화 〈타짜〉가 군산에서 촬영된 점에 착안해 ‘군산화투’를 기념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경암동 철길마을, 초원사진관 등 화투짝마다 군산이 담겨 있다.

예약한 방에 들어서자 열쇠 옆 꼼꼼하게 적혀 있는 입실 안내문의 한 문장이 눈길을 끌었다. “주무신 이불은 고생스럽게 개어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대로 놓고 가주세요.” 이 밖에도 군산을 머무르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세심한 배려가 곳곳에서 묻어난다. 짐을 풀고 게스트하우스를 나서는 길목, “다시 뵙기를 희망합니다”라고 적힌 간판을 여러 번 올려다봤다.

이웃에는 도미토리가 따로 없다. 개별난방이 되는 각 방에는 화장실이 딸려 있고, 각종 세면도구도 갖춰져 있다. 수건도 넉넉하게 1인당 두 장씩 비치돼 있었다. 손님들을 위한 깜짝 선물도 있다. 협탁 위에 놓인 상자를 열면 게스트하우스 이름인 ‘이웃’이 새겨진 머그컵이 들어 있다. 손님들이 군산의 기억을 오래 간직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기념품이다.

ⓒ시사IN 장일호

히로쓰 가옥이 보이는 야외 데크를 모두에게 개방하다

게스트하우스 내부에 사무실이 있지만 ‘이웃남’들은 손님에게 최대한 자취를 보이지 않는다. 입실할 때도 특별한 안내 절차가 없다. 퇴실할 때 호스트를 만나지 않고도 열쇠를 반납할 수 있도록 열쇠함이 마련돼 있다. 떠들썩함을 원하는 사람보다는 가족과 커플 단위 여행객들에게 어울리는 게스트하우스다. “최대한 편안하게 간섭 없이 쉬다 가셨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드물게 “게스트하우스답지 않다”라는 후기도 올라온다. 그런 내용들도 예약할 손님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갈무리해서 올려둔다.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하면서 가장 공을 많이 들인 공간은 밤 11시까지 이용할 수 있는 야외 데크다. 데크에서는 바로 옆집인 히로쓰 가옥 전체를 제대로 조망할 수 있다. 날씨가 맑을 때는 테이블 위에서 맥주나 차를 마시면서 쉬기 좋다. 종종 히로쓰 가옥에서 열리는 음악회나 영화 촬영 모습을 감상할 수도 있다.

야외 데크는 게스트하우스 손님뿐만 아니라 여행객에게도 개방해두었다. 이웃의 출입문 앞에 세워둔 배너에는 “히로쓰 가옥이 가장 예쁘게 보이는 야외 데크가 있습니다. 그 누구든 마음껏 올라가세요!”라고 적혀 있다. 군산 대부분의 관광지는 월요일에 문을 닫는데, 히로쓰 가옥도 그중 하나다. 이를 잘 모르는 외지인들이 아쉬워하며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결정한 일이다.

이웃이 위치한 신흥동(구영1길)은 원도심으로 불린다. 내항에서 중앙동, 월명동, 신흥동 일대까지가 일제강점기의 신도시였던 ‘군산 속의 일본인 마을’이었다. 그 덕분에 걸어서 충분히 주요 관광 포인트를 다닐 수 있다.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낙후 지역으로 전락했던 게 오히려 기회였다. 개발의 칼바람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9년 근대역사문화벨트 사업이 추진되면서 원도심 일대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다만 과하게 손을 댄 느낌 역시 떨쳐버릴 수 없다. 원도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군산을 찾은 여행객들이 꼭 들른다는 경암동 철길마을이 대표적이다. 〈소중한 날들의 꿈〉 〈천년학〉 〈홀리데이〉 등 여러 영화의 배경이 된 철길마을은 관광객들이 몰리자 ‘업자’들이 생기고, 철거가 진행되면서 옛 모습을 잃었다. ●

 

주소 전북 군산시 구영1길 11-2

홈페이지 blog.naver.com/chunulumi

체크인 오후 3시  체크아웃 오전 11시

조식 제공 토스트, 우유, 잼, 달걀, 음료수 등

주인장이 추천하는 곳 부산에 부산어묵이 있다면 군산에는 동양어묵(군산시 대명동 385-70, 063-445-9364)이 있다. 1000원부터 원하는 만큼 저울에 달아 판매한다.

20자평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남아 있는 ‘맨얼굴’의 군산을 만날 수 있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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