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 결과는 드라마틱했다. 새누리당이 역대 최악의 수준으로 무너졌고,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으로 올라섰으며, 국민의당은 확실한 제3당으로 자리매김했다. 유권자는 두 야당에 표를 몰아줬지만, 그 표심이 무엇을 뜻하는지 해석은 여전히 분분하다. 야권은 이번 총선 민심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이철희와 이상돈. 둘은 각각 더민주의 전략기획본부장과 국민의당 선대위원장을 맡아 이번 총선을 지휘했다. 두 사람 모두 그동안 정당 외곽에서 비평자의 위치에 있다가 20대 총선에서 처음 비례대표로 배지를 달았다. 이철희 당선자는 총선 직후 더민주의 전략기획위원장을 맡았고, 이상돈 당선자 역시 당의 주요 보직을 맡을 것으로 점쳐진다. 두 당의 ‘초선 사령탑’에게 이번 총선 평가와 향후 정국 전망을 물었다. 총선 후 일주일이 지난 4월20일 〈시사IN〉 편집국에서 두 사람이 만났다.

ⓒ시사IN 신선영이철희
대다수 유권자는 두 사람(문재인·안철수)을 다 좋아하거나 아니면 둘 다 싫어할 거다. 이 둘을 모두 좋아하게 만드는 쪽으로 끌고 가는 게 정당의 몫이다.
이상돈
당 안팎에서 안철수 대표가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있었는데, 총선 이후 그런 의문이 해소됐다. 다시 합쳐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잦아드는 분위기다.

사회:20대 총선은 여러 면에서 충격이었다. 두 분은 이번 총선 결과 어떻게 보셨나.

이상돈(상):거대 야당부터 하시죠(웃음).

이철희(철):이번 총선 승자는 국민의당이라던데요?(웃음) 선거 결과 보고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더라. ‘이런 게 집단 지성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누리당을 혼냈고, 더민주에게는 기대를 나타내면서도 회초리를 들었다. 국민의당에게도 잘해보라면서도 조금 더 지켜보겠다는 신호를 줬다. 절묘했다.

:이번에 여야 간 세력 균형이 뒤바뀐 건 결국 새누리당이 너무 못해서다. 유권자의 심판이다. 선거 직전에 어느 언론에서 ‘소비자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하는 건 정당의 도리가 아니다’라면서 야권 연대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결과를 보라. 언론을 비롯해 정치권의 흐름을 읽는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허망한가를 잘 보여줬다.

:정치인들이 의외로 유권자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늘 ‘유권자는 바보가 아니다(Voters are not fools)’라고 했지만, 실제로 선거 전략을 짤 때 보면 유권자를 굉장히 어린 애로 본다. 그걸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안철수 대표의 말이 맞았다”

사회:선거 이후에도 논쟁이 계속되는 게 ‘국민의당 효과’가 어떻게 나타났느냐다. 수도권에서 국민의당이 새누리당 표를 잠식해서 더민주가 승리한 건가, 반대로 더민주의 표를 가져가는 바람에 새누리당을 도와준 건가.

:지역구마다 다르다. 이를테면 더민주 후보가 호남 출신이냐 아니냐에 따라 달랐다. 국민의당은 총선 후보자를 모집할 때 정당 지지도가 바닥이었다. 지역구에서 2위권에 들어갈 만한 후보가 별로 없었다. 가장 많은 유형이 지역에 기반을 둔 토착 후보였다. 그 후보들이 1번 표를 잠식한 걸로 본다. 경기도 안산의 부좌현, 김영환 의원처럼 경쟁력이 있는 후보는 야권 표를 많이 가져갔다. 새누리당 의원이 당선된 전남 순천, 전북 전주을에서도 야권 표를 많이 가져갔다. 더하기 빼기 하면 새누리당 표를 가져간 게 많을 것이다.

:선거구별로 보면 다르겠지만, 집합적 투표 결과를 보면 안철수 대표의 말이 맞았다. 국민의당이 새누리당 표를 잠식하면서 야권 확장을 이뤄냈다. 야권 분열로 새누리당 지지층이 방심한 효과도 분명 있을 것이다. 1대1로 붙었을 때 야권이 더 크게 이겼으리라는 건 가설일 뿐이다. 1대1 대결과 3자 대결은 표심이 다르게 나타난다.

사회:유권자들이 응징 투표를 한 건가?

:유권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참을 만큼 참았다. 해도 해도 너무하니까 대구까지 흔들렸다. 영남 지역 국민의당 후보들은 벽보만 붙이고 선거운동은 거의 안 했는데도 10% 이상 받았다. 정당 투표에서도 20% 정도 얻었다.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면서도 2번은 찍기 싫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확인됐다. 그럼에도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같은 분은 야권 연대를 안 하면 큰일 날 것처럼 이야기하지 않았나. 진보 언론도 날마다 큰일 난다고 사설 쓰고 칼럼 쓰고. 난 이번 선거가 진보의 한계를 백일하에 드러낸 것이라고 본다.

:이건 좀 방어를 해야겠다(웃음). 2번은 무조건 찍기 싫다는 정서가 지배적이었으면 수도권에서 더민주가 82석이나 얻는 건 불가능했다. 수도권 지역구 투표에서 더민주에 몰아준 것이나, 3번에게 정당 투표를 몰아준 것이나 모두 유권자의 전략 투표다. 이런 두 가지 흐름이 야권 전체의 숙제가 된 것이다. 다만 진보와 야권이 단일화 맹신에 빠져 있던 건 반성할 필요가 있다.

ⓒ연합뉴스이철희 더민주 당선자(왼쪽)는 ‘선거법 제약을 과감히 풀어야 한다’며 법제사법위원회를 희망했다.

:단일화하기 싫다는 사람더러 억지로 하라고 해도 되는 건가(웃음)?

:옛날에도 억지로 했다(웃음). 그런데 이번에 당 대 당 차원의 단일화는 없었어도 개별 선거구 차원의 단일화는 있었다. 단일화는 소수파인 야권이 쓸 수 있는 전략이다. 이걸 유일한 전략이라고 착각하는 게 문제다.

“범보수가 비토하는 후보는 대선 힘들어”

사회:두 분 다 선거를 지휘하는 위치에 있었는데, 민심의 흐름을 왜 감지하지 못했을까?

:그걸 왜 몰랐겠나. 박근혜 정부의 실정으로 인한 민심 이반이 너무 확실히 보였는데. 물론 이 정도 결과까지는 예상 못했지만, 새누리당 180석은 결코 안 나온다고 봤다. 특히 박 대통령 당선을 위해 적극 노력한 사람들이 다 돌아섰다. 왜냐. 그렇게 고생해서 대통령을 만들어놨더니 청와대에서 차 한잔 마셔본 적 없잖나.

:청와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차를 마시죠(웃음). 나는 선거의 펀더멘털(기본조건)상 이번 총선은 야권이 질 수 없는 선거라고 봤다. 민심은 들끓고 있었지만, 그걸 담아내는 그릇이 쪼개져서 우려했던 거다. 선거 막판에 김종인 대표가 경제 실정 심판을 일관되게 들고나오니까 표심이 잡혔던 것 같다. 막판에 기자들이 선거 예측 물어보면 ‘110석+알파’라고 말했다.

사회:두 분 다 당이 어려울 때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4년 후면 내 나이가 70이다. 기성 정치의 문법으로 뭔가 하고 싶지는 않더라.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안철수 대표가 여러 번 부탁하기도 했고. 더민주를 지켜보면서 저 당으로는 어렵다고 봤다. 우리나라에서는 범보수층에서 적극적으로 비토하는 후보나 정당은 집권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나는 국민의당이 해볼 만하다고 봤다.

:나는 당에 들어오기 전부터 문·안·박 연대가 해법이라고 외쳤다. 그동안 야권은 대선주자들 갈등 때문에 망했다. 대권주자가 화합하면 잘 풀리고, 갈등하면 진다. 나는 문·안·박 연대를 주장하는 연장선상에서 정치를 하려고 한다. 나로서는 사실 정치보다는 방송이 낫다. 돈벌이도 괜찮고, 박수도 폼 나게 받고. 그런데 아내가 ‘당신 정치 안 하면 후회할 것 같다’고 조언하더라. 그 말 듣고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들어가서는 후회를 좀 했다.

“새누리당이 한국 정치의 변수가 됐다”

사회:어떤 점에서 후회했나.

:기자들이 왜 안철수 대표 쪽으로 가지 않았느냐고 묻기에 ‘나는 사람보다 정당이다’라고 답했다. 더민주를 고쳐 쓰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들어가 보니 공천 갈등 배후로 찍히고, 요즘은 공천 5적으로까지 불리고(웃음). 정당의 민낯을 본 기분이랄까. 어쨌든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건 좋으나, 그런 목소리를 상생의 방식으로 풀어내지 못하는 건 문제다.

ⓒ연합뉴스이상돈 국민의당 당선자(왼쪽)는 환경노동위원회에서 ‘4대강 문제’ 등에 집중할 계획이다.

:우린 새로 생겨서 민낯을 볼 것도 없었다(웃음). 확실히 새누리당과는 비교되더라. 그쪽은 과거 공화당 때부터 짜인 당료 시스템에 편승해 쭉 간다. 욕을 먹지만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그래도 1987년 이후에 야당의 본류가 바뀌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최근 안철수 대표와 부산·대구에 다녀왔는데 엄청난 환영을 받았다. 드디어 호남과 영남 양쪽에서 고루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 나왔다. 이런 상전벽해 같은 변화가 이뤄진 건 결국 두 거대 정당이 엉망이어서 그런 거다. 지금 새누리당은 욕망만 남았다. 가장 경쟁력 없는 집단만 당내에 남아 있다. 새누리당이 한국 정치의 (상수가 아니라) 변수가 되어버렸다. 더민주는 친노 세력이 집권할 수 없다는 게 드러났고.

사회:호남 유권자의 선택은 어떻게 보나?

:호남이 제3지대가 되었다. 친박과 친노의 정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대가 열린 것이다. 호남을 기반으로 다음 선거에서는 우리 당이 영남에서도 해볼 만하다고 본다.

:호남이 더민주를 쭉 밀어온 것 같지만, 과거 열린우리당처럼 지지와 철회가 엇갈리기도 했다. 우리는 이런 경쟁 체제가 나쁘지 않다고 본다. 우리 당이 호남 몰표에 안주하면서 더 나빠진 측면도 있다. 실제로 우리 딴에는 선거 때 ‘3번 찍으면 1번 된다’라는 캠페인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게 유권자를 협박하는 건 옳지도 않고 효과도 없을 거라고 봤다. 1등과 경쟁해야지, 왜 2등 전략을 취하나. 그래도 순간순간 그런 유혹에 빠지기 쉬운데, 문재인 전 대표와 김종인 대표의 역할이 컸다. 경제 실정 심판이라는 초기 프레임을 끝까지 가져간 유일한 선거였다.

“문재인 대 안철수 구도로 내년 대선 힘들어”

사회:문재인 지지자와 안철수 지지자의 갈등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닫는 것 같다.

:이미 강을 건넜다. 화해할 수 없다. 그동안 당 안팎에서 안철수 대표가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있었는데, 총선 이후 그런 의문이 해소됐다. 다시 합쳐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잦아드는 분위기다.

:화해까지는 아니어도 공조는 될 거라고 본다. 지금 안철수 지지자와 문재인 지지자가 서로 맹렬히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대다수 유권자는 두 사람을 다 좋아하거나 아니면 둘 다 싫어할 거다. 두 사람 다 좋아하게 만드는 쪽으로 끌고 가는 게 정당의 몫이다. 김종인 대표에게 안철수 대표에 대해 언급하지 마시라고 하면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다더라. 그래도 언론에서 자꾸 물어보니까 한두 말씀 하시는 거다. 그게 김종인 대표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내년 대선이 문재인이냐 안철수냐 하는 게임의 논리로 가면 서로 무척 힘들어질 것이다.

사회:야권의 공조가 아름답게 될까?

:민생 문제가 크다. 보수 정권 8년 동안 쌓여온 적폐를 해소해야 하니까. 총선 끝나자마자 지금까지 입 닫아왔던 문제들이 터져 나오고 있지 않나. 그렇게 되면 이 정부가 국정을 이끌어가기 어려워진다. 유권자들이 정권 교체의 길을 만들어준 것이다.

:정권 교체라고 할 때 입법부가 10%라면, 행정부가 90%다. 여소야대 국회가 되었다고 국가 전체를 움직이려고 하면 버겁다. 예컨대 여야가 국회법 개정안을 만들었지만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하면 안 되지 않나. 소탐대실하지 말아야 한다. 정권 교체는 이제 시작이다.

:어쨌든 한 시대는 끝났다.

:박근혜 시대가 끝난 거죠?(웃음)

사회:두 분은 이번에 처음으로 배지를 달았는데, 국회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나?

:환경노동위원회로 가야지. 4대강 문제도 있고. 지금 환노위가 너무 노동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기업들이 질색한다. 그러니까 새누리당 의원들이 환노위를 기피하는 거다.

:법제사법위원회에 들어가서 선거법에 갇혀 있는 우리 정치를 풀어주고 싶다. 상시적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선거법 제약을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 그래야 정말로 공천권이 국민에게 돌아간다. 또 하나, 권력기관과 사정기관의 정치 개입을 막아야 한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