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 게 짜장면이었다. 뒤이은 방송 일정이 빠듯해 점심은 배달 음식으로 정했다. 금세 허기를 채울 수 있는 메뉴로 그만한 게 없었다. 〈미각의 제국〉의 한 부분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요즘 짜장면은 너무 달다. 공장 춘장이 충분히 달게 나오는데도 주방에서 또 설탕을 첨가한다. 춘장의 큼큼한 발효 향과 돼지기름의 고소한 맛을 단맛이 가리고 있다.’ 단맛을 음미하며 슬쩍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의 그릇을 봤다. 젓가락질 속도가 훨씬 앞섰다. 그의 저서 중 한 대목을 떠올린 이유다. 맛을 비평할 일이 있을 때는 신중하지만 끼니마다 메뉴 선정이 까다로운 건 아니다. 스스로 미식가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냥 눈에 보이는, 앞에 닥치는 음식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져도 머리는 용량 부족’이라며.

먹을거리에 대한 비판의 칼날은 예리하다. 이날도 천일염을 비롯해 ‘갖은 양념’에 대한 날선 공격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근래 ‘문제적 인물’이 되었다. 이영돈 PD, 백종원 외식사업가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비롯해 쇠고기 등급제, 유기농 신화, 한식의 세계화 등 논쟁적인 화두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왔다. 최근에는 ‘설탕과의 전쟁’에 기꺼이 총을 들겠다며 동참을 선언했다.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사단법인 ‘끼니’에서 그를 만났다. 배경이 마침 주방이었다. 그 김에 이 질문부터 던졌다.


 

ⓒ시사IN 조남진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음식 문화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요리도 하나?
워낙 ‘말 같지도 않은’ 레시피가 많아서 해볼까 싶기도 하다. 음식은 재료가 가장 중요하다. 재료에서 맛의 포인트를 잡고, 입안에 들어갈 때 어떤 균형감으로 들어올지 예측하고 실현하는 게 요리다. 식재료가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극소화하는 행위이기도 하고. 요즘 레시피 보면 만능 양념 하나로 모든 요리를 맛있게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맛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데 지나지 않는다.

(이어서 한국 음식에 자주 등장하는 ‘갖은 양념’에 대한 토로가 시작됐다.)

직장 생활할 때부터 문제가 보였다. 〈전원생활〉이라는 잡지의 데스크 노릇을 할 때였다. 기자들이 받아온 요리 전문가들의 레시피를 보면 ‘갖은 양념을 한다’고 되어 있었다. 풀어오라고 했다. 재료에 맞는 양념이 있을 텐데 모든 것에 간장·고춧가루·참기름은 아니지 않나 싶었다. 갖은 양념으로 대충 버무려서 먹는 음식에는 분별이 없다. 분별이 없으면 미개하다. 문명은 얼마만큼 섬세하게 나누는가에 따라 선진과 미개로 구분된다. 우리 음식에 대해 미개하다고 말하면 민족감정을 건드리는 거라 잘 얘기하지 않지만 양념법에 문제가 있다는 건 요리사 대부분이 알 거다.

그런 생각은 못 해봤다.
큰일 날 일도 아니고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음식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있는 현상이다. 분별없음이 모든 일상에서 보인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내 기준이 없으니까 정치적 성향을 모르고 정당 고를 때도 오락가락한다. 평소 급진적인 이야기를 하고 술 마시며 재벌 욕하지만 투표할 때는 다른 선택을 하는 것처럼.

ⓒ황교익 제공일본 나고야 산골에서 황교익씨가 주민과 산천어를 잡으며 일본 음식을 취재하고 있다.

우중론처럼 들린다.
솔직해져야 한다. 우린 스스로 근대국가, 시민국가를 만들지 못했다. 우리보다 앞서 근대 시민국가를 만들었던 나라들을 들여다봐야 한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산업화 이후, 한국 음식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외국의 경우 농업사회의 음식과 산업사회의 음식은 다르다. 한국은 1960년대만 해도 농업사회였는데 순식간에 산업사회로 바뀌었다. 여성 노동도 당연해졌다. 그런데도 예전 조리법으로 요리해야 건강하다고 말한다. 집밥 열풍도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바른 전략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옛날 방식으로 먹자는 건데 밥·반찬·국 등 끼니 하나 차리려면 두 시간 걸린다. 그런 와중에 백종원씨가 등장해 초간단 레시피를 보여주었다. 그가 가진 미덕의 한 부분은 간단하다는 거다. 양념 중심으로. 어떤 재료든지 똑같은 맛을 내는 레시피를 보여준다. 한계가 있다.

설탕 이야기를 해보자. 한국 음식이 많이 달아졌다고 했는데 언제부터 느꼈나?
언제부턴지 외국 생활하다 들어온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한국 음식이 다 달다고 했다. 늘 먹다 보면 깨닫지 못하게 된다. 나도 외국은 짜게 먹으니까 달게 느껴질 수 있겠지, 정도의 의심만 했다. 자세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한 건 7년 전쯤이다. 어떤 방송에서 음식점 음식을 맛보고 비평하자고 제안해 일산의 한 나물집에 갔다. 평소엔 대강 먹지만 비평하는 거라 맛에 집중했다. 시금치·고사리·취나물이 놓여 있는데 달더라. MSG 안 넣는 곳으로 알려졌는데 설탕을 쓴 거다. 나물 무칠 때 설탕 넣는 건 듣도 보도 못한 거고 관습에서 벗어난 거라 0점을 줬다. 이후로 이 집 저 집 나물을 먹어보니 다 달아져 있었다. 쓴맛의 나물도 있는데 그걸 지우는 게 간장·된장·고추장이다. 그거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 MSG를 넣기도 하고. 그러고 나서 보니까 온통 음식이 단 거다. 한국 음식 어디에나 설탕이 들어가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조리법 책에도 빠짐없이 설탕이 등장한다. 왜 그럴까 생각하는 중이다. 단지 인간의 혀가 단맛을 좋아하니까, 설탕이 싸게 공급되니까 변한 거다, 이런 식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른 나라도 단 음식 먹는데 주식까지 달게 먹지는 않는다. 케이크, 아이스크림 같은 음식만 달게 먹는다.

ⓒ연합뉴스황교익씨가 지적하는 우리나라 설탕 사용의 문제점은 그 양이 아니라 ‘모든 음식에 넣는다’는 것이다.

이유가 뭘까?
들여다보니 매운 음식도 눈에 들어왔다. 매운 음식이 크게 번져나가기 시작한 게 1960~70년대다. 전후 스트레스 때문으로 추정되는데 쓴 소주에 매운 음식 먹으며 내 몸을 아프게 해서라도 쾌감을 얻으려고 했던 게 작동하지 않았을까 싶다. 한 가지 이유로는 한국 음식이 전반적으로 달아진 걸 해명하지 못한다. 음식이 문화인 이유는 그걸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누구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의 영향이라는 지적도 했던 것 같다.
방송의 영향이 아니라 방송이 극단으로 간 거다. 백종원씨 방송을 캡처해놓은 걸 봤는데 설탕 퍼붓는 장면들이 나오더라. “괜찮아유~” “설탕 넣으면 맛있어유” 이런 데 방점이 있었다. 단 음식을 많이 먹기 시작한 게 1980년대 후반인데 앞서 20년간 많이 먹게 만든 전반 작업이 있었다. 집집마다 사카린을 두고 먹다가 몸에 안 좋다는 인식이 퍼져 설탕으로 대체했다. 그러면서 단 음식에 대한 집중이 생겼다. 1980~90년대생들은 분유 세대다. 모유 수유율이 낮았다. 분유와 두유의 단맛에 길들여진 거다(설탕수저 세대). 이들부터 본격적으로 소아비만이니 당뇨병이니 하는 건강에 대한 염려를 많이 들었다. 이미 단 음식에 적응해 몸은 계속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주변에선 먹지 말라고 한다. 방송·신문 등에서도 전방위로 잔소리를 했다.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그때 백종원씨가 “괜찮아유” 이러면서 해방감을 주었다. 이들에겐 구세주인 거다. 지명도 있는 인사가 설탕을 두고 괜찮다고 하니까.  

백씨 스스로는 방송에서 설탕량이 과장됐다고 설명했다.
누누이 말하지만 지적하는 건 양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음식에 넣는다는 점이다. 그도 잘 알 거다. 나쁜 건 백종원씨가 아니다. 그는 사업가고, 음식 팔 때 설탕을 얼마나 넣든 제약은 없다. 소비자가 알아서 판단하는 거다. 방송이 문제다. 백씨가 그렇게 하는 걸 여과 없이 보여준다. 괜찮다고 하는 걸 정답처럼 보여주는 거다.

설탕과의 전쟁에 동참 의사를 밝혔는데 설탕세는 반대하더라.
내 목표는 설탕 줄이기가 아니라 한국 음식에서 단맛을 빼내는 거다. 정부가 가진 생각은 가공식품의 당을 줄이자는 건데 그러면 맛이 없다. 가공품에서 설탕을 줄이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더 먹으면 그만이다. 인간은 원래 단맛에 유혹될 수밖에 없다. 유혹되는 건 즐겨야 한다. 나도 긴 촬영 끝나면 사이다를 ‘원샷’한다. 너무너무 행복하다. 단 걸 제대로 쾌락의 음식으로 즐기려면 다른 음식이 달지 않아야 한다.

설탕뿐만 아니라 쇠고기 등급제, 한식의 세계화 등에 대해 남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음식은 문화라고 했다. 먹고 있는 것에 대해 들여다보면 정치·문화 전반에 대한 관찰이 필요하다. 관찰하면 한국 사회에 허구들, 거짓들이 너무 팽배해 있는 게 보인다. 그냥 두면 행복해질 수 없다. 그러니 지적할밖에.

지난해에는 천일염의 위생 문제를 파고들었다.
천일염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국가와 생산자, 학계, 언론이 공동으로 사기를 친 행위다. 2010년 〈미각의 제국〉을 낼 때만 해도 몰랐다. 소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염전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이게 아니네…’ 싶었다.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나를 속였다는 데 어마어마하게 화가 났다. 명색이 맛 칼럼니스트이고 전문적 식견을 가지고 대중을 향해 글 쓰는 저널리스트인데, 나까지 속은 거다. 내 글을 읽는 사람도 속이는 행위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는 걸 보면 어떤가?
다행이지 싶다. 전에도 관료·교수·언론은 알고 있었다. 천일염 다큐를 찍은 PD를 술자리에서 만났는데 그때 찍으면서 알았다고 했다. 장화 신고 들어가 긁는데 먹어야 하나 싶었다고. 식품회사 연구원들도 위생과 질 문제를 알지만 소비자들이 좋아하니까 썼다. 정확한 정보를 아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라고 하면 안 한다. 내가 떠들고 난 다음에야 말이 나왔다. 기다렸던 거다. 알고도 거짓말한 사람만큼 나쁜 게 알고도 말하지 않는 사람이다. 한국 사회가 이렇게 비겁한지 나도 겪으며 놀랐다.

한국 음식문화 판의 지형이 좀 변한 것 같다.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옛날엔 나 같이 식당 검증하는 쪽이 한 축이었고 식품영양학자나 요리사, 의사가 또 다른 부류였다. 음식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폭넓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음식에 대한 관(觀)이 없어서 아쉽다. 정보를 가지고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까지 이어져야 하는데 그게 약한 것 같다. 글쟁이의 기본은 관점이다. 내가 보는 인간이란 존재는 어떤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그런 관점이 없으면 글이 수없이 흔들리게 된다. 음식에 대한 글이라 하더라도 나의 관점과 인격이 들어 있어야 하는데 좀 약하다. 음식에 관한 문헌 추적자도 있고 현장 추적자도 있고 식당 추적자도 있고 저변은 넓어지는데, 이런 점이 강화되었으면 한다.

‘끼니’ 대표이다. 맛 칼럼니스트 과정을 운영 중인데 비슷한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이 많은가?
그렇다. 뭐부터 해야 할지 물어보는 이들에게 고등학교 농업 교과서를 보라고 한다. 작물이 어떻게 자라는가 하는 기본 원리부터 알아야 할 거 아닌가. 현장에 갔는데 용어를 모르면 생산자와 대화가 안 된다. 모종을 언제 내고 두둑이 몇 ㎝고 이런 얘기를 하는데 모종과 두둑이 뭔지 모르면 소용이 없다. 농업 교과서에 작물별 재배 요령이 실려 있다. 일반인에게 설명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공부해야 한다. 나도 봤다. 농사는 텃밭을 2년 가꿨는데 입으로 농사를 다 짓는다. 농민과 이야기해도 밀리지 않는다. 요리도 입으로 한다(웃음).

글쟁이의 정체성을 말하는 글도 봤는데, 최근엔 방송 활동에 더 주력하는 것 같다.
방송의 힘이 놀랍더라. 사람들이 글로 하는 논리적인 설명은 다소 귀찮아한다. 표정과 감정이 실린 방송이 더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확신이 서기도 했다. 백 번의 글보다 방송 하나가 더 파급력이 있으니까. 다만 글쟁이로서의 책무는 지녀야 하니까 끝없이 쓰려고 한다.

방송 출연이나 원고 요청이 올 때 거절하는 기준이 있나?
한의사나 의사들이 나와 건강에 좋은 음식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은 거절한다. 음식은 음식이지 약이 될 수 없다. 균형적인 식생활만 하면 된다. 몸이 이상하면 병원에 가야지 질병을 치유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건 곤란하다.

말투는 온화한데 내용이 격정적이다. 꾸짖는 말투가 불편하기도 하다.
인문학의 처음을 소크라테스로 본다. 대단한 무엇을 설파한 건 아니고 방법이 포인트다. 모르고 있다는 걸 끝없이 깨닫게 해주는 방식이다. 그게 인문학의 전통이다. 편안하게 괜찮다고 하는 건 종교다. 사람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강력한 단어로 뒤집어줘야 한다. 저널리스트로서 짧은 몇 마디 말로, 생각지 못했던 걸 되돌아보게 만드는 거다.

맛 칼럼니스트로서 정치도 강조한다.
우리 밥상에 올라가는 음식이 이 모양 이 꼴인 이유가 정치 때문이다. 단순하다. 정치가 바뀌어야 식탁이 바뀐다.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려면 음식에 대한 비용을 늘려야 한다. 다른 데 쓸 돈을 줄여야 하는데 사교육비·의료비·노후자금까지 쓸 곳이 너무 많다.

〈농민신문〉 기자 생활을 12년 했다. 그만둔 계기가 있다면.
마흔에 그만두었는데 모두 말렸다. 〈갈매기의 꿈〉을 쓴 작가(리처드 바크)가 이끼에 대한 우화를 남겼는데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물속 이끼들이 바위에 붙어 살아가고 있는데 어느 날 올려다보니 이끼 하나가 둥둥 떠가는 거다. 부러워서 어떻게 하면 올라갈 수 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손만 놔” 그러더라는 거다. 현실에 집착하고 있으면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물 위로 떠다니는 이끼도 급류에 휘말리다 우여곡절 끝에 위로 뜬 거다. 내가 읽은 최후의 처세술 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결심에 영향을 주었다.  

영향력이 커졌다. 고민의 지점도 달라질 것 같다.
지명도를 많이 확보한 상태다. 이걸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이 지점에서 여러 고민이 있다. 글쟁이로서만이 아니라 위치가 좀 바뀌었다. 1년 만의 일이다. 나를 어떻게 쓰면 사회적으로 훨씬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궁리 중이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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