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거(휴먼시아 거지)’라는 신조어가 있다. 초등학생들이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을 조롱하며 쓰는 말이다. 분양 아파트에 사는 이들과 임대로 들어온 이들이 같은 단지 내에서 구획을 갈라 생활하는 일은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한 갈등의 한 단면이다. 그러한 차별이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갈등으로만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친 서울 목동의 중산층 이상 거주지에도 비슷한 갈등이 있다.

목동 아파트에 거주하는 이들은 경제적으로 꽤 부유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식 한 명의 학원비로만 월 150만~ 200만원이 드는데 상당한 소득이 있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입시철에 따라 아파트 전셋값도 같이 변화하는 시장이라, 이곳에서 아이를 교육하고 집값을 감당하며 살아가려면 웬만큼 벌이가 충족되어도 녹록지 않을 것이다. 남들 눈에는 객관적으로 큰 부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하지만 몇몇 부모는 이런 말을 한다. “그 친구, 앞단지 살아요? 뒷단지 살아요?” 주민들은 앞단지는 행정구역상 목동, 뒷단지는 신정동에 속하기 때문에 편의상 단지를 이렇게 분류한다. ‘같은 돈이면 뒷단지에서 더 큰 평수’에 살 수 있다고들 하지만 양쪽 다 평당 금액은 상당하다. 사교육 시장에서 대개 앞단지는 소수 정예 수업과 많은 학원, 뒷단지는 대규모 강의 위주의 학원으로 대표되기 때문에 서로 갖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여기까지 보면 두 지역은 그냥 다를 뿐이다.

ⓒ박해성 그림

하지만 궁금증을 가장한 질문에는 종종 차별이 내재되어 있다. 특히 고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불안이 극에 달한 부모들에게는 ‘다름’을 넘어서는 반응이 나타난다. 어떤 부모는 종종 “우리 애는 뒷단지 애라…, 앞단지 애들한테 치이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다른 부모는 반복적으로 자신의 거주지가 ‘앞단지’라는 것을 강조하며 상대적으로 “집값도 비싸고, 학군도 더 좋은” 것을 자부심으로 드러낸다. 앞단지를 목동의 ‘성골’, 뒷단지를 ‘진골’ 정도 되는 것으로 묘사하는 말을 하는 이부터, 14단지 바깥의 지역에 사는 이들이 아파트에 ‘신목동’이라는 용어를 붙였다고 발끈하는 이들도 종종 보인다.

이미 목동이라는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로도 그들만의 리그에 사는 것일 텐데, 아이들은 근거리로 배정된 고등학교 덕분에 더더욱 비슷한 친구들하고만 교류하게 된다. 자신과 다른 경제적 형편에 있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고, 그들을 만나더라도 ‘목동 외부 사람’과 어우러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가치관이 제법 형성된 고2, 고3 아이들도 학원에서 타 학교 학생들을 만나면 “아아, 그쪽 애들은 목동 아니잖아요”라며 눈살을 찌푸리는 일이 흔히 발생한다. 마을 단위의 공동체는 전설 속에나 나오는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아이들에게 ‘우리’라는 단어는 더 이상 불특정 다수의 어우러짐을 뜻하지 않는다. 거주지는 격차를 드러내고, 여기에는 ‘우리’가 아닌 ‘나’와 ‘너’만 존재한다.

타인에 대한 혐오로 ‘부’를 증명하지 마세요

나보다 더 가진 사람과 가까워지고자 하는 욕망은 자연스럽다. 자신이 쌓아올린 부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 삶의 만족을 얻는 일도 윤리적으로 문제 될 것이 없다.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이니 세상에 그것을 뽐내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 법도 하다. 문제는 그것이 타인에 대한 혐오, 나와 다른 집단에 대한 무시로 나타날 때 발생한다. 다른 집단과의 차이를 통해서만 스스로를 증명받을 수 있는 이들은 실제 존재하는 것보다 차이를 더 극명하게 하고, 그 속에서 만족을 느낀다. 그들이 만들어낸 격차 앞에서 좌절하는 것은 늘 덜 가진 사람이 된다. 부모의 결핍은 자녀에게 고스란히 차별의 기억으로 남는다. 남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입증받는 어른들의 행동은 공허하고, 그들로 인해 영문도 모른 채 상처를 받는 아이들은 안쓰럽다.

집단 내에서 편익을 충분히 누리면서 집단 간 관계에서는 격차를 숨기고 배려하는 일이 어려울까. 덜 가진 이들에게 베풀라는 윤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출발선이 달라 결과도 다를 확률이 높은데, 굳이 자신보다 부족한 이 앞에 와서 더 가졌다는 인정 투쟁을 벌이는 조급증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기자명 해달 (필명·대입 학원 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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