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 연재에서 다룬 여행자의 성격, 목표, 자원, 각종 여행 요소를 대하는 태도 등이 모두 종합되는 장소가 바로 여행자의 숙소다. 다시 말하면 여행자는 자신의 성격, 목표, 자원, 각종 여행 요소에 대한 태도 등을 종합하여 완벽한 숙소를 찾으려 한다.

강렬한 액티비티(activity)를 즐기는 감각추구형 여행자는 그 액티비티 중심의 숙소를 선택하곤 한다. 스쿠버다이빙을 목적으로 타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여러 섬을 여행하는 사람은 다이빙 숍과 결합되어 비용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결합형 숙소를 선택하는 식이다. 액티비티 위주 여행자들은 숙소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 하더라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숙소는 잠자는 곳이지 거기에 돈 써서 뭐하나요? 아껴서 다이빙 한 번이라도 더 나가야죠.” 그 때문에 서핑이나 다이빙, 트레킹 명소를 찾는 여행자들은 수준이 위태로워 보이는 숙소에 며칠씩 체류하기도 한다. 걱정 마시라. 이들은 지금 누구보다 행복한 여행을 하고 있으니까.

중국 호도협의 중도객잔 화장실은 세상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화장실로 불린다.

나는 호텔 레스토랑이나 바보다는 고유한 매력을 자랑하는 여러 게스트하우스의 공용 공간을 좋아한다. 특히 중국 쿤밍의 험프 게스트하우스, 스리랑카 캔디의 올드 엠파이어, 인도 자이푸르의 펄 팰리스 호텔 등은 포근하면서도 개방적인 분위기와 좋은 전망으로 성격과 취향을 불문하고 모든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공용 공간을 갖추고 있다.

좀 더 작은 숙소의 공용 공간은 특유의 오붓한 분위기로 내향적인 여행자들의 취향에 더 어울린다. 단, 외향적이고 내향적이고를 떠나서 공용 공간의 소음이 객실까지 미치는지는 항상 확인해야 하는데, 나는 이걸 깜빡했다가 크리스마스이브에 방화 충동을 느꼈던 적이 있다. 공용 공간 운용 때문에 정작 숙박 서비스가 부실해지는지도 확인해야 하는데, 나는 이걸 또 깜빡했다가 인도 우다이푸르의 어떤 유명 숙소에서 휴지 한 두루마리를 받으려고 옥상 식당 손님들이 뜸해질 때까지 반나절을 무작정 기다려야 했던 경험도 있다.

개방성이 낮아 해외여행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거나 영어 구사가 어려울 경우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액티비티-숙박 결합형 숙소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 네팔 포카라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며 한국말을 잘하는 가이드를 제공하는 트레킹업 겸 숙박업소가 많은데, 이런 곳에 묵을 경우 내 집처럼 친숙한 분위기에서 액티비티도 즐기고 한국 사람들과의 사교 활동도 마음껏 할 수 있다.

하지만 오가는 소주잔 속에서는 한국에서 탈출했다는 느낌을 받기가 힘든 법이다.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고 새로운 사람과 만나고 싶은 외향적이고 개방적인 사람의 경우에는 한인 숙소를 찾아다니기보다 외국인들 틈바구니에서 좌충우돌하며 영어를 익혀나가는 편이 훨씬 좋을 것이다. 또한 한인 숙소에서는 한국인 게스트끼리 모여서 노는 것이 반강제적 문화로 정착된 경우가 많다. 따라서 내향적인 사람의 경우 이런 곳을 피하는 편이 만족스러운 여행을 하기에 좀 더 유리하다. 내향적이며 개방적인 사람은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서 탈출하려는 욕망으로 여행에 나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중국 쿤밍의 험프 게스트하우스처럼 포근하면서 개방적인 공용 공간을 지닌 숙소는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저예산 여행자의 억장이 무너지는 순간

개방성이 높은 사람은 새로운 환경에 도전해 새로운 학습과 체험 기회를 포착하는 성향이 있다. 그들은 각종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고 현지 문화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방갈로, 게스트하우스, 리조트, 호텔 등 다양한 숙소 형태를 가리지 않고 시도하는 편이다. 반대로 개방성이 낮은 사람은 새로운 환경이 오히려 공포, 혐오, 분노 등의 부정적 정서를 부를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안전하고 깨끗하며 서비스 좋은 호텔과 리조트를 선호하게 된다.

개방성 높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숙소 유형에는 홈스테이도 포함된다. 도시에서, 오아시스 부락과 고기잡이 섬 마을에서, 광활한 논밭 한가운데나 산지 능선에서 즐기는 홈스테이는 현지 사람들의 진정성 넘치는 삶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홈스테이는 또한 다른 게스트 없이 호젓하게 현지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다는 매력 때문에 특히 개방적이며 내향적인 사람에게 좋은 숙박 방식이다.

개방성 높은 사람은 다양한 수준의 숙소를 찾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소에 있는 독특한 숙소에 묵는 것을 즐긴다. 개방성 높은 사람은 콘크리트 호텔 방을 싫어하는 대신 절벽 위의 숙소, 물 위에 떠 있는 숙소, 사원과 수도원, 목조 숙소와 대나무 방갈로, 동식물과 함께하는 에코 리조트 등을 즐긴다. 개방성이 높은 사람은 벌레가 많고 비위생적일지는 모

르나 세상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화장실이라 불렸던 중국 호도협의 중도객잔 화장실을 마음에 들어 할 것이다. 이들은 불편하고 짜증이 날지언정 꼭 스리나가르 달 호수 위의 하우스보트에서 하룻밤을 자보고 싶어 할 것이다. 인도 오르차의 호텔 시슈마할, 또는 〈라푼젤〉의 배경이 되었다는 트렌델부르크의 부르크 호텔 등 고성 내부를 개조한 호텔도 아주 재미있을 것이다.

어떤 여행지에서는 우리의 취향이나 의도와 관계없이 예산이 숙소를 결정하기도 한다. 중국은 다른 물가에 비해 숙박료가 높은 대신 대부분의 여행자 숙소에서 잘 갖춰놓은 저가 도미토리를 제공한다. 저예산으로 중국을 여행하려면 도미토리를 이용하는 방법 외에는 딱히 좋은 수가 없다. 도미토리는 낯선 사람 여럿과 함께 방을 나눠 쓰는 숙박 형태인지라 내향인 여행자에게는 상당히 불편할 수 있다.

반대로 어떤 여행지는 숙소 형태가 한 가지로 결정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우붓에서 그 유명한 계단식 논(사얀 라이스 테라스) 경치를 감상하며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는 상당히 비싼 리조트에 묵을 수밖에 없다. 저예산 여행자의 억장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나는 철저히 저예산 여행을 지향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계단식 논 풍경이 보이는 우붓의 숙소에 많은 돈을 지불했던 일을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

여행을 자주 다닌 사람이라면 어떤 곳의 냄새만으로도 좋은 숙소를 찾아낼 수 있고(“어째 저쪽으로 돌아가면 좋은 숙소가 있을 것 같은데… 냄새가 나”), 한눈에 들어오는 인상과 분위기만으로도 어떤 숙소가 좋은 곳인지 나쁜 곳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 각종 예약 사이트를 활용해 숙소를 찾는 재주나 숙소 사진을 보고 숙소의 전체 구조 및 분위기를 추리하는 능력도 갈수록 늘어난다. 그러니 좌절하거나 남에게 기댈 필요는 없다. 숙소를 자기 손으로 선택하여 이곳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여행의 여러 활동 중 매우 큰 성취감과 만족감, 행복감을 주는 일이다.

기자명 김명철 (심리학 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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