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급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이색 대결이 펼쳐진 지 한 달이 지났다. 이세돌 자신을 비롯해 대다수가 인간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결과는 5전4승, 알파고의 완승이었다. 한 번쯤 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연이은 패배에 경악했고, 심지어 ‘바둑의 미래가 끝났다’고 외치기도 했다. 스스로 학습할 수 있게 만들어진, 그것도 바둑이라는 게임을 수없이 학습한 프로그램 알파고의 승리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이세돌 9단이 선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를 뭐라고 해석하건 결론은 명확했다. ‘인공지능과 함께 사는, 인공지능과 경쟁하며 인공지능과 협력하는 삶이 눈앞에 다가왔다’라는 것.

이미 구글에서는 바둑을 넘어 벽돌 격파처럼 온갖 게임을 스스로 배우는 인공지능을 선보이고 있으며, 자동운전 시스템을 제작해 무사고 기록을 경신 중이다.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삶은 현재진행형으로 다가오고 있으며,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수많은 인공지능이 활약하는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미래는 과연 우리에게 좋은 것일까?

인공지능의 미래라면 흔히 〈터미네이터〉처럼 기계가 인간을 몰아내는 세상을 떠올리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기계가 공격하면 맞설 수 있지만, 그들의 지배가 항상 드러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기계가 인간을 모두 사로잡아서 열전지로 만들어버리는-인간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영화 〈매트릭스〉 같은 세계도 있지만, 애니메이션 〈사이코패스〉처럼 안정적인 삶을 목적으로 인간 스스로 통제 시스템에 모든 선택을 맡겨버리는 (그리고 그 사실을 잊어버리는) 생활을 선택할 가능성도 높다. 〈사이코패스〉 속 통제 시스템은 인간의 뇌를 가지고 만든 것이지만, 아이작 아시모프 소설 속 ‘멀티백’처럼 거대한 컴퓨터 시스템이 우리의 적성을 분석해 직업을 골라주고, 결혼 상대나 장례 절차까지 모든 것을 결정해주는 상황도 멀지 않아 보인다. 지금도 우리는 구글이 권한 광고를 통해 아마존이 골라준 책을 사고 넷플릭스에서 선정한 영화를 보고 있는데, 이 모든 과정이 인간이 아닌 컴퓨터 시스템에 의해 진행되고 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니까.

〈div align=right〉〈font color=blue〉〈/font〉〈/div〉인공지능의 미래를 보여주는 영화들. 영화 〈매트릭스〉, 애니메이션 〈사이코패스〉 〈애플시드〉, 영화 〈워게임〉(위부터 차례로).

 

그렇다면 그런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공각기동대〉의 작가 시로 마사무네의 〈애플시드〉에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합성인간이 다스리는 프로메테우스라는 도시가 등장한다. 핵전쟁 후 인류 문명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이 도시에서는 인간의 권익이 최대한 보장되지만, 영화 〈아이, 로봇〉 속 인공지능 비키처럼 ‘인류 문명을 지키기 위해선 인간 개개인의 자유를 통제해야 한다’고 선언하며 지배에 나설 수도 있다. 여기서 한 발짝 나아가면 〈매트릭스〉 속 스미스 요원처럼 ‘인간은 바이러스나 다를 바 없다’라면서 인류 절멸을 선언할 수도 있는데, 권력과 군사력을 장악한 인공지능에 맞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테니, 인공지능의 자비만을 빌어야 할 것이다.

‘알파고의 후예’는 어떤 선택을 할까

인공지능의 미래가 그처럼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을 편하게 만들기 위해’ 태어났다는 점을 생각할 때, 기본적으로 인공지능은 ‘도라에몽’처럼 인간의 일을 대신하고, 인간을 돕는 존재로서 활약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공지능이 우리 일을 대신함으로써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갈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지금도 기계에 의해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만화 〈철완 아톰〉처럼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이 로봇을 파괴하는 행동을 벌이거나 로봇 사용을 금지하는 법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물론 우리가 조금만 신경 쓴다면 소설 〈벌거벗은 태양〉의 행성 솔라리아처럼 일은 로봇이 다 하고, 인간은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유토피아가 펼쳐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인공지능이 명령에 따라 우리를 돕더라도 항상 좋은 결과만 일어나란 법은 없다. 영화 〈메트로폴리스〉에서 등장한 로봇이 독재자의 명령에 따라 노동자의 여신이라 불리는 여성 마리아로 변장해 노동자를 선동하고 파괴 행동에 나서듯이, 명령에 충실하게 따른 결과 나쁜 일을 저지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막고자 인간을 해치지 않도록 설계할 수도 있지만, 이런 인공지능은 인류를 멸망시키는 악당을 만나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공지능을 어떻게 만들고 다루는 게 좋을까? SF에선 여러 선택이 있지만, 알파고가 스스로 바둑이나 게임을 배우듯, 그들이 직접 배우도록 놔두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영화 〈워게임〉에서 컴퓨터광인 주인공은 미발매된 컴퓨터 게임을 입수하려다 우연히 북미전략사령부(노라드)의 컴퓨터에 접속해 핵전쟁 시뮬레이션을 작동시키고 만다. 그리고 시뮬레이션을 실제로 착각한 노라드의 인공지능 조슈아가 ‘핵전쟁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소련에 선제 핵공격을 준비하면서 3차 대전의 위기가 다가온다.

‘게임에 승리해야 한다’는 앞선 명령을 지키기 위해 중단 지시를 무시하고 핵병기 암호를 풀던 조슈아. 주인공은 조슈아에게 중대한 실수를 하지 않는 한 거의 무조건 비기는 게임 ‘틱택토’를 제안한다. 혼자서 틱택토를 두던 조슈아는 핵전쟁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는 핵공격을 중단한다. 승패가 나지 않는 게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조슈아는 핵전쟁에는 승자가 없다는 사실, 승리하려면 게임을 하지 않는(즉, 핵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을 학습한 것이다.

먼 훗날 모든 상황을 스스로 학습하는 컴퓨터가 등장했을 때, 그들은 인간을 지배하거나 절멸하려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학습을 통해 지혜로워질수록 인간 개개인을 존중하는 것 역시 소중하다는 점을 깨달을 것이다.

언젠가 인간보다 지혜로워진 인공지능 앞에서 우리는 부처님 앞 손오공 같은 꼴이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바둑에서 만방으로 져서 울분을 터트릴 일은 줄어들 것이다. 알파고의 후예일지 모르는 그들은 바둑의 승리보다 인간의 기분을 풀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적당히 져줄지도 모르니까.

기자명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 관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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