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가 오후 4시16분을 가리켰다. 양경언 문학평론가가 입을 열었다. “4시16분이 되었으니,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장소를 많이 타는 자리인데 오늘은 가족 같은 분위기네요. 눈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3월26일 토요일 오후. 햇살은 따가워도 아직 공기가 찼다. 서울 은평구 녹번동 청년허브에 30여 명이 모였다. 낭독이 시작됐다. 덤덤한 목소리,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가 차례로 이어졌다. 어떤 소리는 울음에 막혀 침묵이 길었다.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명을 기억하기 위해 시민과 작가들이 여는 ‘304 낭독회’ 열아홉 번째 시간이었다.

자리에 참석한 양경언 문학평론가, 김현·안희연 시인은 그간의 낭독회에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낭독자가 아니라 ‘일꾼’으로서다. 펑크 날 경우에 대비한 ‘5분 대기조’이기도 하다. 양 평론가는 ‘304 낭독회의 허참’으로 불린다. 주로 사회를 본다. 김현 시인은 매회 발행되는 낭독회 소책자를 모으는 ‘아카이빙’ 담당이다. 안희연 시인은 곳곳에 리플릿을 발송한다. 애초 역할을 나눈 건 아니다. 여건이 되는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박시하 시인이 책자 디자인을 하는 등 조금씩 힘을 보탰다. 작가 36명이 ‘단체 카톡방’에서 실무를 논의한다.

시작은 2014년 가을이었다.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6·9 작가선언(2009년 작가 188명이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며 벌인 시국선언) 당시 형성된 느슨한 네트워크가 기반이었다. 한 시인은 자는데 물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나의 언어가 세월호 참사를 만드는 데 동조한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을 비롯해 온갖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상황도 재난이었다. 희생자 가족을 모욕하는 말과 행동이 이어졌다. 뭔가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절박함이 있었다. 회의가 거듭됐다. 다양한 제안이 나왔다. 누군가 말했다. “싸움이 길게 갈 것 같다. 진상 규명이 된다고 해도 사건에 대한 기억은 계속해서 가지고 가야 한다. 말에는 이야기를 옮기고 전승하며, 기억을 유지시킬 수 있도록 하는 속성이 있다. 말에서 출발할 수 있지 않겠나.” 그렇게 낭독회 형식이 됐다. 304명의 희생자 각각을 304회에 걸쳐 호명하자는 행사의 취지에도 낭독이 어울렸다.

ⓒ시사IN 윤무영안희연 시인, 김현 시인, 양경언 문학평론가(왼쪽부터)는 ‘304 낭독회’에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2014년 9월2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처음 모였다. 작가와 작가의 지인들, 지나던 시민들이 둥그렇게 서서 작가들이 써온 문장 306개를 읽었다. 누군가 고심해서 쓴 문장을 읽으며 작가와 시민의 경계가 무너졌다. 참석한 사람들에게는 강렬한 경험이었다. ‘재난 현장’의 낭독회가 처음은 아니다. 김현 시인은 홍대 앞 두리반에서 ‘불킨낭독회’를 해봤다. “폐허에 가까운 공간을 문학적으로 채우자는 제안에서 시작했다. 보통 투쟁 현장에 가면 강하게 구호를 외치거나 서로 어깨 걸고 그런 형식이었는데 새로웠다. 시를 낭독하고 여기서 어떤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지 조근조근 이야기했다. 문학하는 사람으로서 좋은 경험이었다.”

초반엔 듣기만 해도 힘들었다. 글이 사건과 너무 가까웠다. 안희연 시인은 “다들 죄책감에 밀착되어 있어서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갔다. 시간이 좀 지나면서 거리가 생기고, 더 담대해야 오래 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가짐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세월호에서 시작해 체르노빌·아우슈비츠에 관한 이야기, 사건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 외국 시인의 시로 내용이 점차 확장됐다. 여전히 흐느끼는 사람들이 있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다. 듣는 것도 훈련이라면 ‘들을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것도 과정이었다.

낭독자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단원고 교감 선생님의 동료 교사가 있었다. 그가 교감 선생님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왔다. 다른 곳에서 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때 양경언 평론가는 특정한 사람에게만 발언권이 있는 게 아니라 사건과 관련해 각자 나름 할 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글의 시작은 대체로 세월호 참사 당시 본인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회상이다. 그는 “개인의 내밀한 상태로 들어가 전하는 이야기다. 몇십 년 후 여기서의 기록이 보도나 연구에서 나오지 않은, 삶의 현장에서만 구할 수 있는 세월호에 대한 기억이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304 낭독회’는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열린다. 위는 2014년 12월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낭독회.

“생각보다 글이 그렇게 무력하지 않구나”

김현 시인에게는 낭독회라는 형식이 다소 무력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투쟁하고 구호를 외쳐야 하는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최근엔 생각이 좀 바뀌었다. 이 ‘무력한’ 방식이 어떤 의미로는 가장 ‘힘 있는’ 방식일 수도 있다. 싸움에서 승리하든 아니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사람들의 망각이 그만큼 빠르다. 낭독회는 304회를 채우려면 25년이 걸린다.  

지난 2월엔 ‘싸이 카페’로 알려진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낭독회를 열었다. 건물주와 세입자의 문제지만 세월호 참사와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소는 매번 달라진다. 특히 야외에서 낭독할 때는 소음과 섞인다. 보수 단체의 구호와 종교 단체의 외침 등 상대해야 할 소리가 많다. 그럴 때마다 세월호 참사는 현재진행형의 일이 된다.

현장의 경험이 작가의 몸을 통과하면서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날’ 이후 글쓰기의 무력함을 체감한 문인들이 많다. 안희연 시인도 그중 하나다. 낭독회에 참석해 읽고 쓰고 공유하는 과정을 경험하며 다시 글을 써나갈 수 있었다. “목소리로 발화되고, 청자가 있고, 쓴 글이 공유되는 걸 목격하면서 감정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글이 그렇게 무력하지 않구나. 말하고 들어야 하는구나 하는 자의식이 생겼다.”

젊은 작가들에 대한 편견에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김현 시인은 “사회에 관심이 없고 폐쇄적이고 자폐적인 시를 쓴다고 하는데, 그들이 나와서 낭독회를 준비하고 있다. 작품과는 별개로 시민으로서 참여한다. 둘의 분리가 잘 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양경언 평론가 역시 “아름다움을 구사하는 데에만 골몰한 작가들이라는 시선이 있는데 부당하게 평가되는 부분이다. 작품을 보면 현장에서의 경험들이 고스란히 섞이면서 새로운 미학적 지형을 만들어가고 있는 게 보인다. 그런 발언을 하는 쪽에 서는 비평가가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현장의 개념을 어떤 식으로 확장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일꾼’들은 마음을 졸인다. ‘자리가 썰렁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임박하면 어김없이 자리가 채워진다. 수장이 없어서 유령집단 같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방식 때문에 모두가 각자 주체다. 얼마 전 김금희 소설가가 말했다. “몇십 년 뒤 생존 학생들이 우리처럼 30대가 되면 그때 본인의 이야기를 낭독회 자리에 와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세월호 참사가 어떻게 마무리되더라도 자리는 이어질 것 같다. 여전히 재난은 발생할 터이고, 그럴 때도 이야기할 자리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참가자들 대부분 웃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데, 무겁기만 할 필요는 없다고 작가들은 말한다.

낭독회는 항상 ‘함께 읽는 글’로 끝난다. ‘오늘은 4월16일입니다’로 시작해 ‘끝날 때까지 끝내지 않겠습니다’로 마무리되는 글이다. 4월30일 4시16분. 스무 번째 낭독회가 열린다. 이제 284번 남았다(낭독회 참가를 원하는 사람은 communavec@gmail.com으로 신청하거나 facebook.com/304recital을 참고하면 된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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