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이 〈시사IN〉 독자들 손을 거쳐 온라인으로까지 옮겨지는 데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호흡이 짧은 시의성 주제를 칼럼에 담으면 온라인에 올라갈 즈음 처참한 뒷북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현 시점에서 선거를 주제로 칼럼을 쓰는 것은 분명히 모험이다. 이 칼럼이 독자들에게 전달될 시점엔 아마도 개표 결과에 따른 희비가 엇갈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와 관련해 할 얘기가 너무 많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냥 쓰기로 했다.

언론 매체에 글을 게재해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한정된 지면에 세상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한없이 신중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상파 방송이나 종합편성채널의 뉴스라면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이 엄청난 책임과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방송을 내보내는 권한은 엄격한 허가 및 승인 절차를 거쳐 극소수에게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방송에 자신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기자들은 국민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방송사와 소속 기자들이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감당한 자세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방송사 뉴스들은 전쟁 위험을 가시화하고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를 선동하는 데 동원되었다. 한국여성민우회의 모니터링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과 종합편성채널의 뉴스는 유권자들의 관심 따위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KBS·MBC·SBS가 3월9일부터 15일 사이에 보도한 뉴스를 빈도 기준으로 분류해보면, 이세돌 9단과 알파고 대국→북한→총선 순서였다. 심지어 북한 뉴스는 그 시점에서 한 달 남짓 남은 총선 관련 보도보다 훨씬 많았다. 방송사들은 3월9일과 10일 이틀 동안 북한 뉴스를 무려 14건 쏟아냈는데, 총선 관련 기사는 3건에 불과했다. 그래도 지상파 방송은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새누리당을 내놓고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대신 북한의 전쟁 위협을 강조함으로써 보수의 결집을 도모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KBS 〈뉴스9〉를 시청하다 보면 마치 〈남북의 창〉(KBS의 북한 소식 전문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곤 한다. 시작과 동시에 전쟁 위협을 강조하는 뉴스를 연이어 내보내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희뿌연 화면과 함께 쏟아지는 북한 뉴스는 공영방송 뉴스를 20년 전쯤으로 돌려놓았다.

반면 종합편성채널은 선거 중독 수준이었다. 이를 한 줄로 요약하면, ‘오늘’은 있고 ‘내일’은 없는 뉴스다. 이대로라면 종편은 정부·여당과 생사를 함께할 수밖에 없다. 지상파가 56건 총선 보도를 하는 동안 종합편성채널은 관련 뉴스 263건을 사회로 쏘아댔다. 공정성과 관련한 페널티가 강화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닐 텐데, JTBC를 제외한 모든 채널이 ‘노골적 편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정치인은 모조리 나쁜 X’ 반복하는 종편 방송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종편에서는 양비론에 따른 정치혐오 조장과 새누리당 후보 띄우기가 더욱 기승을 부렸다. 웬만한 사람은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내에 존재하는 계파를 모두 꿸 수 있을 만큼 각 당의 공천 갈등이 거듭 강조되었다. ‘정치인은 모조리 나쁜 X’이라는 공식도 지겹게 반복되었다. 후보를 검증하거나, 정당 정책을 비교해서 시비를 가리는 보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대표성이 퇴행하는 것을 감시하기는커녕 비례대표처럼 이들의 공간을 그나마 보호해온 제도까지 무의미한 것으로 전락시키는 데 앞장섰다.

상당수 국가들에는 영향력이 큰 주류 언론을 견제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언론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강제하는 장치가 있다. 언론 또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객관주의 저널리즘’이라는 가치를 표방한다. 우리나라도 그랬다. 형식적이나마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을 마련해왔다. 그런데 종합편성채널 도입 이후 우리 언론들은 형식적 중립성의 틀조차 부정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 주류 언론은 자극적이고 편파적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에 따른 반사이익 때문일 것이다. 이런 언론이 가공해서 제공하는 파편적 현실들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세상을 왜곡시키고 있다. 결국 우리는 고민할 수밖에 없다. 살 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의 막강한 권한을 제어해야 한다. 언론으로 하여금 합당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도록 만들려면, 아직 남아 있는 대통령 선거를 잘 치러야 할 것이다.

기자명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