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4차 핵실험과 로켓 발사 이후 햇볕정책이 동네북이 된 느낌이다. 새누리당의 김재원 의원은 “햇볕정책이 궁극적으로 북한의 핵실험을 도와주는 결과를 가져왔고, 햇볕정책을 통한 대북한 무상지원이 대륙간 탄도탄 실험을 하게 한 원인이 됐다”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같은 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햇볕정책을 통한 “평화의 빵이 공포의 무기로 돌아오는 악순환을 이제는 끊어야 한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총선 정국을 감안하면 ‘햇볕정책 책임론’ 공세는 있을 법도 하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지도부가 햇볕정책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는 북한 궤멸론을 편 데 이어 야권의 심장 격인 광주에서 “통일은 내밀한 역사적 순간, 새벽처럼 다가올 수 있다” “북한이 핵을 보유한 현 시점에서 과거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라는 주장을 폈다. 햇볕정책 폐기론은 국민의당 지도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안보는 보수’라는 태도를 취해온 안철수 대표도 그렇지만 이상돈 공동선대위원장은 아예 “김대중·노무현의 햇볕정책은 실패했다. 당은 대북정책을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이 햇볕정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이런 무용론을 제기하는 걸까. 김종인·이상돈 모두 얼마 전까지 박근혜 대통령 및 새누리당과 호흡을 맞추어온 인물 아닌가. 새누리당의 안보·대북 정책을 더민주와 국민의당 정책 기조로 이식하려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앞서는 이유다. “핵심 세력이 특별한 것 같지도 않고 확실하게 딱 정해진 정체성도 없던데 뭘…”이라는 김 대표의 발언에서 이런 우려를 엿볼 수 있다.

햇볕정책은 화해협력 정책의 별칭이다. 이 정책은 세 가지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첫째는 북한의 어떠한 무력도발도 용납하지 않는다. 둘째 우리도 북한을 흡수통일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남북 간 교류협력을 활성화해서 평화공존의 기틀을 마련하고 궁극적으로 사람과 물자가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사실상의 통일을 이룬다.

햇볕정책은 결코 소극적 유화정책이 아니다. 오히려 북한에 대한 전략적 공세주의를 그 특징으로 한다. ‘햇볕을 쏘여 여행자의 외투를 벗게 한다’는 이솝 우화의 함의를 넘어 북한이 조그만 틈새라도 보일 때 이를 기회로 햇볕처럼 파고들어 변화를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비와 구름은 한시적이지만 햇볕은 항상적이라 가능한 것이다. 또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화해협력 정책은 강력한 대북 군사 억지에 기초하고 있다. 이들은 1980년대 이후 어느 보수 정부보다도 많은 예산을 국방에 할애했다.

햇볕정책은 경제민주화 못지않게 중요한 야당의 정체성

화해협력 정책은 국제공조를 통해 한반도의 냉전 구조를 해체하고 고립과 압박이 아니라 관여와 포용으로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모든 현안 문제를 풀어 나간다는 것도 햇볕정책의 핵심 기조였다. 특히 햇볕정책에 따른 퍼주기 때문에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했다는 주장은 엄중한 사실 왜곡이다. 진보 정부 10년 동안 남북협력기금 총 8조원 가운데 4조3000억원가량은 김영삼 정부가 추진한 신포 경수로사업에 들어간 것이고, 2조7000억원은 식량·비료 등 인도적 지원 사업에 쓴 것이다. 그것도 차관 형식으로 남한의 잉여 미곡과 비료를 구입하는 데 사용된 예산이다. 그리고 7000억원은 개성과 금강산의 도로 및 철도 연결 사업에 쓰였고 나머지는 미집행 잔액으로 처리된 바 있다.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 현금이 북에 들어간 것은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이 모든 사업은 여야 합의에 따라 집행되었다.

게다가 햇볕정책이 일관성 있게 추진되었다면 남북관계는 크게 개선되고 북핵 문제도 지금처럼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햇볕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기간은 2000년 7개월, 2007년 3개월, 도합 10개월에 지나지 않는다. 조지 W. 부시라는 악재가 햇볕정책의 판을 깼는가 하면 이명박 정부 들어 박왕자 사건으로 전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10개월밖에 제대로 실행되지 않은 햇볕정책을 여당도 아닌 김대중·노무현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겠다는 야당의 지도급 인사들이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경제민주화’ 못지않게 중요한 야당의 정체성은 대북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이다. 화해와 협력을 통해 통일을 지향하고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는 최선의 대안이 햇볕정책인 것이다. 이를 무시하고 야당 지지자들로부터 표를 얻겠다는 것은 자가당착에 지나지 않는다.

기자명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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