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하고 놀까


할머니의 삶… 우리가 기억할게요


건축 예술로 느끼는 윤동주 정신

 

이야기가 마침내 영화가 되기까지 꼬박 14년이 걸렸다. 기획 후 투자자를 찾는 데만 11년이 걸렸다. 시민 7만5270명이 모은 12억원이 보태져 2014년에야 크랭크인할 수 있었다. 찍어놓고도 상영관을 찾을 수 없었다. 2016년 2월24일, 〈귀향〉이 드디어 개봉했다. 관객의 마음을 울린 이야기들이 입소문을 타고 전해져, 3월 말 현재 관객 수 350만을 넘어섰다.

〈귀향〉을 본 이들에게는 감상을 새롭게 하고, 영화를 보지 못한 이들도 담담하게 은유와 사료로써 ‘위안부’ 이야기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야기가 장소가 된 곳.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다. 이 공간이 만들어지는 과정 또한 영화 같았다.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은 2004년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건립위원회’를 발족했다.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이 겪었던 역사를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게 알리며, 전 세계 전시 상황에서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들과의 연대를 확산하기 위해서다. ‘위안부’ 할머니 17명이 모은 정부생활지원금이 초석이 되었다. 시민들도 건립 비용을 모으는 데 힘을 보탰다. 서울시는 서대문독립공원 안 부지를 기부했고, 건축가 이명주와 김희옥은 설계 기부를 약속했다. 첫 삽 뜨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박물관 건립이 갑작스레 중단됐다.

ⓒ연합뉴스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추모관에서 한 시민이 두 손을 모은 채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리고 있다.

광복회가, ‘위안부 박물관’은 순국선열을 기리는 서대문독립공원 안에 두기엔 부끄러운 역사이며 순국선열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이유로 건립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들과 정대협은 큰 상처를 입었고 그로부터 수년간 건립은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그러다 2011년, 기부금의 많은 부분을 할애해 서울 성미산 자락에 있는 주택을 매입했다. 신축이 아닌 리모델링 형식이었다. 2012년 어린이날 드디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찾아가는 길은 한적하고 조용하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발을 옮기다 벽화가 있어 여긴가, 싶었는데 대문이 보이지 않는다. 벽을 따라 오른쪽으로 꺾어 올라가니 작은 문패가 있다. 아무리 봐도 관계자나 들어가야 할 것 같은 검은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고 어두운 방이 나온다. 입장권을 사면 자원봉사자가 오디오가이드를 건네주며 전시 동선을 가르쳐준다. 입장권에 찍혀 있는 할머니들의 사진은 요일마다 바뀐다.

“죽기를 기다리죠? 우리는 절대 안 죽습니다”

도무지 관람객을 환영해주는 것 같지 않은 좁은 문, 작고 어두운 방, 깐깐한 관람법이 일견 불편하다. 게다가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느닷없이 집 밖으로 밀려난다. 머리 위에서는 포화 소리가 터지고, 그 소리를 뒤에 두고 자갈 깔린 좁은 길을 휘청이며 걸어 내려가 또다시 열기가 주저되는 철문 앞에 서게 된다.

잠시 망설이다 들어간 컴컴한 지하실 벽으로 영상이 하나 보인다. 아, 입장권에 그려진 할머니다.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더 좁은 공간으로 이끌려간다. 허리도 펼 수 없는 좁은 공간에 쭈그려 앉아 멍하니 몸에 스며드는 편치 않은 감각을 곱씹어본다.

다음 동선은 계단이다. 계단 옆 벽은 할머니들의 말이 새겨진 벽돌로 쌓았다. 한 걸음, 한 걸음 오를수록 할머니들의 분노와 회한은 희망을 담은 바람으로 바뀌고 시야도 밝게 열린다. 지금껏 느꼈던 장소에 대한 불편함은 이를 위해 설계된 듯하다. 평온한 일상을 살다 예상치 못한 운명으로 끌려들어간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생에 대한 간접체험이다.

이후에는 여느 박물관과 다르지 않은 형식의 전시가 이어진다. 막연히 알고 있던 사실들이 잠깐의 체험 이후 좀 더 명확해지고 촉각으로 다가온다. 할머니들이 싸워왔던 역사들을 짚다 보면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가장 마음에 남았던 전시물은 물건이 아닌 이야기였다. 작은 방 벽에 가로로 긴 줄을 긋고, 잘 알려진 역사적 사건과 할머니들의 개인사를 병치해 연표를 적어놓았다. 긴 세월, 이 많은 사건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 풀어낸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눈을 통해 바로 심장으로 꽂히는 기분이었다. ‘2006년 105명의 헌법소원심판 청구’라는 글자 곁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우리가 죽기를 기다리죠? 우리는 절대 안 죽습니다.”

그렇게 한국의 역사를 돌아보고 나면 전시는 이제 세계를 향한다. 아직도 일어나고 있는 전 세계의 전쟁과 그로 인해 일어나는 인권침해를 고발하며 평화와 인권을 이야기한다. 이곳의 이름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인 이유다. 무거워진 마음은 마지막 장소인 마당에서 잠시 말려보자. 따스한 햇살이, 마당 가득한 야생화들에게도 나에게도 평등하게 비춘다.

한 번 다녀온 적이 있는 분이라도 재관람을 권유한다. 입장권 속 얼굴이 달라지듯, 매일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가 바뀌기 때문이다. 건축에 숨어 있는 은유를 찾는 재미도 있을 것이고, 마음에 남는 전시물이며 글귀도 매번 달라질 테다. 꽃 피는 계절이다. 조용히 걷기 좋은 골목. 느닷없이 들이닥친 운명을 이겨낸 용기 있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만나러 가보자. ●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위치: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11길 20(성산동)

문의/안내:02-365-4016(정대협)

이용 시간 13:00~ 18:00. 휴관일:월요일·일요일

기자명 중림동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