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치던 문과 고등학생이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에 진학했다. 4년 동안 ‘삽질’을 하고 미국 미시간 대학 인류학과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해부학·운동역학·생물학·통계학 수업을 닥치는 대로 들었다. 주어진 문제를 자료를 통해 대답할 수 있는 것으로 재정의하는 ‘과학적 사고’를 훈련받았다. 2001년부터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인류 성차, 두뇌 용량 변화, 노년기 등을 연구했다. ‘한국인 고인류학 박사 1호’ 이상희 교수 얘기다.

그가 윤신영 〈과학동아〉 편집장과 함께 쓴 〈인류의 기원〉(사이언스북스 펴냄)은 인류 기원에 대한 궁금증을 쉽고 친근한 말투로 풀어낸다. 그러면서도 학계의 최신 논쟁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2015년 〈시사IN〉 선정 ‘올해의 책’ 과학 분야에 뽑히기도 했다. ‘인간다움’이 어느 때보다 화두인 지금,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여성 고인류학자의 눈에 비친 인류와 세계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방한한 이상희 교수를 3월22일 만났다.

ⓒ시사IN 신선영이상희 교수는 ‘인류 진화’ 하면 떠올리는 그림(사진)이 원시인에 대한 편견을 과학적 근거 없이 표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인류학이 뭔가? 화석을 통해서 우리가 어디서 왔고 왜 이런 모습으로 여기에 있는지 진화론적 관점에서 기원을 찾아 들어가는 학문이다. 뼈가 돌이 된 것이 화석인데, 통상 1만 년 전이 지나면 더 이상 화석이 아닌 뼈라고 얘기한다. 인류 계통과 침팬지 계통이 갈라진 지점(800만 년 전~500만 년 전)부터 시작해 1만 년 전까지의 인류 모습을 들여다보는 학문이다.

‘인류 진화’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그림이 있다. 사회 교과서 뒤에 실려 있던 기억이 난다. 엉거주춤하다 점점 일어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크로마뇽인으로 끝나는 인류 진화의 단계. 나도 달달 외웠다. 하지만 그런 식의 그림에는 문제가 있다. 인류학자들이 합의하는 진화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뜻이 아니고 변한다는 건데, 신체 건강한 흰색 피부의 남자가 되는 게 인류 진화의 목표처럼 그려지니까. 인류 진화 ‘단계’ 자체가 이미 지나간 개념이기도 하고. (취재를 위해 준비해간 그림을 가리키며) 처음 걸었을 때 이렇게 구부정하게 걷지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 번도.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이렇게 걸으면 잡아먹히기나 하지. 무릎은 구부렸을 수도 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중심을 잡은 거다. 그렇지만 초기 고인류를 구부정하게 그리는 건 과학적 태도라기보다 다분히 인종주의적이다. 원시인은 구부정하고 덜떨어지게 걸었을 것이다, 잘생긴 남자처럼 당당하게 걷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경우 입도 헤 벌리고 있다. 눈빛도 게슴츠레하고. 아니면 아래를 보거나. 우리가 가진 원시인에 대한 편견을 과학적 근거 없이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익숙한 그림에 편견이 배어 있다니 놀랍다. 인류 진화 그림의 또 하나의 문제는 남자들만 있다는 것이다. 출판사에 해가 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웃음) 〈인류의 기원〉 책에 실린 삽화를 보는데 여자가 거의 없더라. 아니, 인류 진화의 주역은 남자였던 거야? 내가 여태까지 몰랐나? 그런데 사실 출판사나 삽화가의 문제가 아닌 게, 모델 삼을 만한 그림이 없다. 생각이 거기까지 잘 미치지도 않거니와, 생각하려 해도 모델이 없다. 이 ‘안 보이는 여자’ 문제는 나중에 꼭 다루고 싶다. 사실 초기 인류 하면 떠올리는 사냥은 남자들의 행위라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자 사실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런 프레임 안에서는 ‘인류의 진화에서 주역은 남자였다’는 게 맞는 말이 된다. 민족지학적으로 보면 사냥은 대개 남자가 하고, 여자는 받아먹는다는 거잖나. ‘김치녀’ 개념이 벌써 거기서 나오는 거다. 다윈의 이른바 ‘사냥 가설’(사냥과 함께 큰 두뇌·작은 치아·직립보행·도구 사용이 패키지로 등장하면서 인류가 기원했다는 가설)이 암시하는 고대 초기 인류 모습이 바로 그거였다. 남자가 큰 머리와 뛰어난 도구를 사용해 고기를 가져오면 여자는 그걸 받아먹고 남자의 아이를 낳는다, 그 남자가 주기적으로 돌아오게끔 여자는 ‘꼬신다’, 그걸 위해서 여자는 자신의 배란기조차 모르는 한심한 존재가 됐다…. 일종의 성과 먹을거리의 맞바꿈. 기분 나쁜 이야기다. 되게 ‘안티 페미니스트’한 생각이다. 이 사냥 가설을 이어받은 게 ‘러브조이 가설’(남자와 여자가 성과 먹을거리를 매개로 짝을 맺게 되면서 성별 분업·핵가족·직립보행이 ‘패키지’로 등장했고 이것이 인간의 기원이라는 가설)이다. 사냥이 실제로 일어났던 것에 비해 과대 포장된 것은 현생 인류 남자들의 욕망이 투사되었기 때문이다. 1981년 러브조이 가설 논문에 어떤 표현이 나와서 사람들이 두고두고 비판했다.

ⓒ이희중고인류학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화석을 연구해 그 기원을 찾는 학문이다. 위는 연구실의 이상희 교수.

어떤 표현인가? 인간 여자는 배란기에만 가능한 다른 암컷과 달리 유일하게 ‘컨티뉴어슬리 리셉티브(continuously receptive)하다’, 즉 항상 성관계를 할 수 있다는 표현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난리가 났다. 아니, 세상에 그런 여자가 어디 있느냐고. 네 희망 사항이냐고(웃음). 여자는 ‘receptive’하다고 보는 눈 자체가 그렇지 않나. 받긴 뭘 받나. 씨받이인가, 우리가?(웃음) 논쟁이 격렬했다. 다행히 많은 여성주의 학자들이 분발해서 연구를 하게 됐고,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지난 30년 동안의 연구 결과 드러났다. 아직까지도 고인류학은 남자들의 세계다. 그래서 자꾸만 인류의 진화도 남자들의 세계로 그려진다. 다 엮여 있는 거다. 현재 사회하고.

고인류학의 가장 큰 질문이 인류가 어디서 왔냐는 건데, 아직도 합의되지 않고 논쟁 중인 게 많더라. 현생 인류, 그러니까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대답이 있다. 하나는 ‘다지역연계론’이다. 2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유럽, 아시아 등 각 대륙으로 뻗어나간 인류 집단이 서로 유전자를 섞으면서 한통속으로 지내왔다는 거다. 현생 인류의 조상이 하나가 아니라는 견해다. 다른 하나는 ‘단일기원론’이다. 아프리카에서 한번 나온 그 인류 집단이 전 세계로 퍼졌고, 기존의 각 지역 집단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거다. 사실 논쟁의 핵심은 네안데르탈인(지금은 사라진 현생 인류의 가장 가까운 친척 인류)이다. 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유럽인의 조상이냐, 아니냐? 아니라는 게 단일기원론의 관점이다. 1980년대 말부터 아프리카 단일기원론이 주류가 된다. 유전학 연구를 통해서 현생 인류가 나타난 지 얼마 안 됐고, 그 기원이 아프리카였다는 결론이 나면서다. 1997년에 네안데르탈인 화석에서 유전자를 추출해 분석을 해봤더니 또 현생 인류하고 너무 다르다는 결과가 나온다. 계속 단일기원론이 세를 얻었다. 그런데 2010년에 네안데르탈인 게놈 30억 개를 다 분석해봤더니 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인류와 피를 섞었고, 유럽인의 경우 유전자의 4%를 네안데르탈인에게서 받은 게 나타났다. 단일기원론이 틀렸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분기한 지 얼마 안 된 종은 섞이면서도 다른 종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는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섞였다’는 것만 합의됐고 둘이 같은 종인지에 대해서는 토론이 계속되고 있다.

어떤 견해인가? 나는 ‘종’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생각해볼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종도 그렇고 사실은 굉장히 동적인 개념이 많은데, 그걸 정적인 상자 안에 가두는 일을 우리가 플라톤 이후부터 해왔다. ‘이데아’라고 해서 어딘가에 어떤 완벽한 모델이 있고 우리 눈에 보이는 건 그냥 거기서 조금 벗어나는 거라는. 그게 인종이라고도 생각했고 종이라고도 생각했고, 엄마일 수도, 여자일 수도 있다. 그런 모든 개념의 완벽체가 있는데, 종이라는 개념 자체도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딱 들어맞지는 않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현생 인류의 기원이라는 문제 그 자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질문 자체가 대답이 없는 거다. 답이 있어야 문제잖나. 큰 문제가 있고, 조금씩 답할 수 있는 문제를 만들어서 깨나가는 게 과학의 과정이라면, 현생 인류의 기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것 자체가 현생 인류가 있는 것이지 않나. (물이 담긴 컵을 들어 보이며) 컵처럼. 그래야 시작이 있으니까. 그런데 현생 인류라는 것 자체가 기원이 있는 게 아닐 수도 있고, 종이 아닐 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생각하고 있다.

〈인류의 기원〉 공저자로서는 의외의 발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인간을 인간이라 하는 이유가 있지 않나? 그건 뒤에 갖다 붙이는 거지. 우리가 ‘인간만의 것’ 리스트 100개가 있다고 하면 인간이 아닌 생물체에게는 적용되면 안 되잖나. 예를 들면 ‘눈이 2개다’는 안 되고, ‘직립보행만 한다’ 정도? 그런데 그것도 안 되는 게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도 직립보행을 했다. 직립보행은 인류 계통의 것이지만 인간만의 것은 아니다. ‘인간은 무엇인가’라고 물어볼 때 문제는 그 ‘흑심’이 무엇이냐다. ‘인간’이라는 개념 정의를 세워서 누구를 배제하는 게 목적인 경우가 있다. 네안데르탈인이 대표적이다. 1970년대에 실제로 그런 시도가 있었다. ‘현생 인류의 조건’ 체크 리스트를 어떤 학자가 제시했다. 그래서 내 지도교수가 ‘그래? 이게 인간의 정의야?’ 하며 그 리스트를 적용해봤더니,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40% 정도가 인간이 아닌 걸로 판명이 났다. 굉장히 불미스러운 일이다. 인종주의다. 원주민은 인간이 아니라고 한 거니까. 19세기의 끔찍했던 일들이 다시 고개를 드는 거잖나. 지금 살고 있는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는 정의를 내리고 싶은 게 목적이라면 네안데르탈인도 배제할 수가 없다.

ⓒ위키피디아프랑스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유골과 이를 토대로 추정한 모습.

인간에 대한 이런저런 궁금증을 고인류학자 눈으로 풀어내고 싶었는데, 그것도 흑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인종 문제를 고인류학자는 어떻게 보나? 인종은 사실 고인류학보다는 형질인류학(고인류학이 속한 인류학의 한 분과로 인류의 생김새를 연구한다)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왜냐하면 우리가 억울하거든. 인종을 판별하는 여러 메커니즘 중에 생물학적 근거가 있는 게 하나도 없다. 다 문화적인 거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여러 형질이 있다. 피부색, 키, 눈동자 색, (혀를 말아 보이며) 혀를 동그랗게 말 수 있는 것, 칼귀냐 아니냐. 연속적인 형질도 있고, 불연속적인 형질도 있다. 그런 여러 특징 중에 몇 가지만 골라서 인종을 나눈다. ‘쌍가르마냐 아니냐’ 가지고 나누지는 않는다. 그 선택 자체는 통계학적이라거나 다수결에 의해서 한 게 아니라 그냥 느낌으로 한다. 문화적인 편견으로. 그런데 피부색은 연속성이 있다. 연속성이 있는 걸 불연속적으로 끊으려니 당연히 문제가 생긴다. 예전에 루이지애나 법에 그런 게 있었다. 64명의 조상 중에 한 명만 흑인이면 흑인이다. 64명까지 안 가더라도 어머니가 백인이고 아버지가 흑인이면 흑인이 된다. 오바마가 그렇다. 그렇지만 반반이다, 분명히. 반반이지만 흑인이라 보는 이유는 하얗지 않으면 다 흑인이니까. 까맣지 않으면 백인인 게 아니고. 무작위적인 게 아니라 다분히 의도적이고 차별적이고 착취적이다. 형질인류학자는 억울하다. 인종은 사회문화적인 건데 생물학적인 것처럼 포장하니까. ‘피부색이야’ ‘DNA야’ 이렇게.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도 진도가 더딘 것 같다. 굉장히 배타적이다. 백인 우월주의에 가깝다. 여태까지는 우리가 ‘한민족은 한 핏줄이야’ 같은 국가적인 스토리텔링을 해왔어도 큰 여파는 없었다. 힘이 없는 나라였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한국이 더 이상 구호를 받는 국가가 아니다. 권력을 가진 나라가 되고 있다. 그동안 있어도 못 본 척했던 소수자들이 이 국가 안에 점점 더 많이 생기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도 많이 오고, 조선족도 많이 오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인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지 그다지 큰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는 나이브한 생각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진화’ 개념을 아직 낯설어하는 이들도 있다. 나도 크리스천이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이게 내 신앙에 배치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내가 오늘 왜 이 자리에 있는가’가 질문이라면 그것에 대한 몇 가지 가능한 대답이 있다. 약속을 잡았잖나? 지하철도 제대로 제 시간에 돌아다녔고. 하나님이 역사했기 때문에, 창세기 이전부터 마련된 플랜이었기 때문에. 사십 몇 년 전에 우리 부모님께서 모종의 행위를 하셨기 때문에. 정자와 난자가 만나 발육을 해서, 세포증식을 해서 앞다리가 삐죽, 뒷다리가 삐죽 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지금 내 심장계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모든 대답이 다 정답 아니겠나? 그러니까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 부모님은 섹스를 한 게 아니야. 그렇게 택일할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진화론이 문제가 되는 건 여러 이야기가 있겠지만 알파고하고도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뭔지는 모르지만 인간은 특별하고 싶고, 그냥 우연히 어쩌다 이렇게 온 게 아니라 의미를 갖고 있고 싶은데, 진화했다고 하면 이건 아닌 거 같은 거야. 알파고가 이긴 거 같은. 알파고가 인간 지능의 특별한 걸 가져간 거 같은 거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그러니까 동물이라는 깨달음이 주는 일종의 해방감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인간은 동물이다. 우리가 동물인데 이렇게 사는 게 되게 신기하지 않나?(웃음)

지금 고인류학에선 뭐가 화두인가? 아무래도 현생 인류의 기원이다. 영원한 화두다. ‘그런 기원이 없다’라고 나를 비롯한 일련의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다. 꼭짓점이 없으니까. 그건 사실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받아들여지기까진 시간이 많이 걸릴 거다. 사람들은 깔끔하게 포장된 걸 원한다.

앞으로 계획은? 여태까지는 혼자 머리 굴려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을 해왔다. 이제는 학생들을 더 키울 수 있는 주제를 잡아서 같이 하고 싶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건, 동북아 쪽 현생 인류의 진화를 들여다보려고 폼을 잡고 있다(웃음).

한반도 인류에 대해선 잠정 가설이 있나? 나는 동남아에서 많이 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 시베리아에서 넘어오기보다는 해안선을 따라 내륙 쪽으로 사람들이 많이 움직였다. 한반도 인류 진화를 공부하려면 뼈로는 힘들다. 산성 토양이라 화석이 남아나질 않는다. 결국 현생 인류를 대상으로 유전학 조사를 해야 하는데 쉽진 않다. 지금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반도에 맨 처음 이주했던 사람이라는 보장은 없잖나. ‘단일민족’은 그냥 하는 얘기고,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언제부터 한반도에 살기 시작했는지, 맨 처음 한반도에 살기 시작했던 인류 조상과 어떤 관계인지를 입증 가능한 문제로 설계해야 할 거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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