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가 전방위로 위협받는다. 최근 몇 달간 정치 의사를 표현한 개인이 탄압을 받은 사례가 속출했다. 군대는 물론 비교적 ‘민주적인 공간’이라는 대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 아무개 중위(29)는 지난 7월9일부터 2주 넘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군기무사령부의 조사를 받고 있다. 기무사는 김 중위의 집을 압수 수색해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전태일 평전〉 등의 책을 가져갔다. 김 중위의 대학 후배들은, 기무사가 김 중위가 한때 민주노동당 당원이었던 사실과 대학 시절 학생회 간부를 맡은 전력을 들어 죄를 묻는다고 전했다.
김 중위의 가족과 후배들은 조사 시점이 묘하다고 했다. 3년간의 군 복무 중, 여러 차례 신원조회를 거쳤지만 과거를 문제 삼은 적이 없었다. ‘김 중위 모략수사 중단을 위한 대책위원회’ 측은 “김 중위가 최근 부대 내에서 광우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고, 7월7일 후배와의 전화 통화에서 촛불 양상이 어떤지 호기심을 나타냈다. 그 직후 조사가 시작됐다”라고 밝혔다.
지난 6월에는 개인 블로그에 〈제국주의론〉등을 인용한 글을 올린 전 아무개 하사가 기무사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과격불법촛불시위반대 시민연대’의 한 회원은 카페에 쓴 글에서 “기무사에 아는 사람이 자기 실적 올린다며, 인터넷 블로그나 카페 등에 좌익 사범이나 빨갱이 짓 하는 사람 있으면 가차 없이 자료를 캡처해서 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대학에서도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 지난 6월 충남 논산 금강대학교의 한 학생이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촛불집회 참가 여대생 군홧발 폭행 동영상’이 삭제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 학생은 곧 총장실에 불려가 “(장학금을 받아) 돈도 안 내고 다니면서 정치 선동이나 하냐”라며 꾸지람을
들었다.
‘스스로 입조심’하는 피해자
학생의 촛불집회 참석을 막은 학교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이유로 총학생회장이 탄핵되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 5월27일 경기 화성의 한국농업대학 임진모 총학생회장은 일부 교수가 재학생의 촛불집회 참석을 방해하고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 초청 강연회를 미루려 한다며 기자회견을 열고 단식을 시작했다. 다음 날인 5월28일, 7개 학과 대표들은 의원회의에서 총학생회장 탄핵 결정을 내렸다. 독단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곧 ‘양심선언’이 나왔다. 대의원회 유상우 의장은 6월3일 “학생회장 탄핵 과정에서 교수들의 부당한 압력과 회유가 있었다”라고 밝히고 의장직을 사퇴했다. 학교 측에서 대의원에게 탄핵에 관한 학칙을 설명해주고, 찬반 투표용지도 교학과에서 만든 걸 사용했다는 것이다. 당시 학생회에서 일한 한 학생은 “대의원 대부분이 20대 후반, 30대 나이로 교수들 회유에 쉽게 넘어갈 사람들은 아니었다”라면서도 외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했다. “학교에서 이명박 정부가 우리 학교를 안 좋게 본다는 얘기를 자주 해 모두 걱정이 많았다.”
군대와 대학에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한 당사자와 관계자 대다수는 취재 과정에서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보도로 인한 불이익을 두려워했다. 기사에 기관 이름을 명시하지 말라거나, 보도 자체를 접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다들 ‘스스로 입조심’을 하고 있었다.
취재 지원:변태섭·송은하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