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지난 6월30일 참여연대 사무실을 둘러싼 경찰.

전세 역전. 순식간이었다. ‘민주주의 축제’ ‘촛불 혁명’ ‘국민 MT’ ‘상큼·발랄·유쾌·통쾌 신나는 시위’를 말하던 게 엊그제인데, 어느덧 세상은 ‘폭력’ ‘압수’ ‘소환’ ‘금지’ ‘체포’ 같은 어두운 단어로 가득하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이진선 간사(25)는 그날 그 ‘충격’만 생각하면 아직도 소름이 돋는다. 그녀는 얼마 전 자신의 블로그에 “세상이 무섭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명박이 무섭다. 그리고 경찰이 무섭다”라고 썼다. 지난 6월30일 새벽,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사무실에 대한 경찰의 전격 압수 수색이 있은 직후였다. 촛불집회를 주도했다는 혐의였다. 1994년 창립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공포감, 일상 활동의 위축으로 이어져

“그날 사무실에서 당직을 서는데, 경찰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기 직전까지도 믿을 수 없었다.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참여연대는 과격한 운동을 해온 단체가 아니다. 시민과 소통하면서, 즐겁고 발랄하게, 정책 대안을 가지고 활동해온 시민단체일 뿐이다. 그런 단체를 압수 수색하고, 관계자(박원석 사무처장과 안진걸 팀장)를 구속·수배하다니 지금이 대체 어느 시대인가. 정말 충격적이었고, 공포감마저 들었다.”

그러나 시작일 뿐이었다. 공포는 일시적인 감정의 흔들림을 넘어 일상 활동의 ‘위축’으로까지 이어졌다. “압수 수색 이후 참여연대 내에서는 주변에 사복 경찰이 감시하니 조심하라는 지침이 떨어졌다. 사석에서 밥과 술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고, 동료와 편안하게 이야기도 나누지 못한다. 사무실이 청와대 근처라, 정권 비판 문구를 함부로 붙이지도 못한다. 언제 누가 또 잡혀갈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퍼졌다. 현 시국에서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건지 무기력감이 든다. 최근 정부의 대응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폭력적이다.”

조그마한 불씨도 남겨두지 않을 태세다. ‘촛불’의 무차별 진압에 앞장선 경찰뿐만이 아니다. 소환·압수 수색·출국 금지 등 일반인에겐 낯설기만 한 수사 수단을 동원해 조·중·동 광고 중단운동에 관련된 누리꾼을 탄압하고, 듣도 보도 못한 ‘오역죄’를 물어 MBC 〈PD수첩〉을 단죄하려는 검찰과, 심의와 검열, 인터넷 관련 법 개정을 통해 언론과 누리꾼에 재갈을 물리려는 방송통신위원회·방송통신심의위원회 모두 빈틈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박상훈 박사(정치학·후마니타스 대표)는 최근 이명박 정부의 대대적인 공세에 대해 “촛불집회가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리고 여기서 밀리면, 조금이라도 권위를 회복하지 못하면, 5년 내내 식물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조기 ‘진지 회복’을 목표로 전방위로, 곳곳에 참호를 파기 시작했다”라고 해석한다.

‘예고된 폭력’에 떠는 시민

효과는 컸다. 주요 운동단체 지도부의 손발을 꽁꽁 묶었고, 수만~수십만을 오르내리던 촛불집회 참석자 수는 어느새 수백~수천명 단위로 폭삭 주저앉았다. 물론 시위가 석 달 가까이 지속되면서 피로가 쌓인 탓이 크다. 하지만 ‘무서워서’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후배와 함께 집회에 나갈 계획을 세웠다가 취소한 대학생 이은규씨(22)의 경우가 그렇다. 그녀는 “전경이 시위대를 폭행하면서 후배들이 겁을 먹었다. 그래서 함께 나가는 게 무산됐고, 나 역시 더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 자리에 있었다면 우리가 맞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라며 ‘예고된 폭력’에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시사IN 윤무영촛불집회 도중 물대포에 맞은 시민을 부축하는 모습.

올해 대학에 갓 입학한 표정연씨(20)는 더욱 몸서리쳐지는 경험을 했다. “시위를 하러 시청에 간 것은 아니었는데, 우연히 시위대의 한복판까지 들어가게 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사복 경찰로 보이는 사람들이 마구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얼굴이 알려지고, 그것 때문에 나에게 불이익을 올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물대포나 소화기 등 무력이 아니라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으로 위축되었다. 특히 함께 나간 친구는, 아버지가 공무원이었기에 더욱 신경이 쓰여 집회에 참여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김영순씨(57)는 실제 폭행을 당했다. 지난 5월31일 물대포를 맞고 기절했을 때만 해도 끄떡없던 그녀였지만, 6월29일 프레스센터 근처에서 경찰의 진압봉에 머리와 팔을 두들겨 맞고 난 뒤 사정이 달라졌다. “그전에는 아무래도 내가 나이가 있으니까 전경이 조심조심하고 그랬다. 하지만 그날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나를 마구 때렸고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병원에 가보니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날 뻔했다고 했다. 너무 놀랐다. 그 후 무서워서 집회에 잘 나가지 못한다. 나가더라도 뒤에서 구호만 외치고 일찍 집에 들어온다.”

검찰과 방송통신위원회, 그리고 조·중·동이 앞장선 누리꾼과 언론에 대한 위협은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억누르기에 충분했다. 조·중·동 광고 중단운동으로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은 이정기씨(29,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 운영진)는 “요즘 올라오는 글을 보면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껴서인지 예전보다 조·중·동 ‘비판’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검찰의 조사 대상이 된 한 회원은 심하게 놀라서 문제의 소지가 전혀 없는 글까지 다 지웠다고 한다”라며 최근 인터넷의 위축된 분위기를 전했다.

비판은 줄고, 문제 없는 글까지 삭제

〈어느 신문지국장의 죽음〉이라는 영화를 통해 조·중·동의 횡포를 고발한 김은경 감독(31)도 “조·중·동의 탄압을 받을까 봐 솔직히 걱정된다”라고 토로한다. “누구나 불안감을 느낄 거다. 하도 어이없는 일이 많이 일어나니, 아무리 운동권 출신이라고 해도, 익숙하다 해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언론인의 고민도 적지 않다. 최용수 KBS PD는 “앞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프로그램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겠나. 인터뷰를 해줄 사람조차 없어질 것이다”라며 〈PD수첩〉에 취재 원본을 요구한 검찰의 행태를 어이없어했다.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결과가 문제가 아니라 수사에 들어간 것 자체가 프로그램 제작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제작자뿐 아니라 회사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라며 언론 자유의 침해와 자기 검열의 일상화를 염려했다.
 

ⓒ뉴시스지난 7월18일 조·중·동 광고 중단운동을 벌인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이정기씨(오른쪽 뒷모습)가 카페 회원의 격려를 받고 있다.

강경한 논조를 유지하는 한겨레의 기자 역시 예외는 아닌 듯하다. 한 기자는 “현 정부가 상식에 어긋나는 공격을 퍼붓는데도 의외로 사회문제로 부각이 안 돼 고립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라며 ‘만일의 사태’도 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동료와 농반 진반 이야기를 나눈 것이지만, 한겨레나 경향도 압수 수색 같은 얼토당토않은 일을 겪을 수 있다고 본다. 〈PD수첩〉이나 참여연대의 경우를 보니 현실과 먼 이야기 같지도 않더라. 내가 어느 시대를 사는 건지 좀 혼란스럽기는 한데, 어쨌든 정부 비판 기사 등을 쓸 때는 긴장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위축’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싶지는 않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만은 분명하다.”

민주주의 원상회복 가능한가

하지만 ‘공안 정국’을 방불케 하는 최근의 분위기가 과연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정치학)는 “정부는 언론과 인터넷만 장악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듯한데,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라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이미 민주정부 10년을 비롯해 긴긴 민주화 시대를 거치면서 국민의 의식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왔다. 요즘 주춤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지만, 70일 이상 지속된 투쟁 과정에서 잠시 동안 ‘숨고르기’를 할 뿐이다. 결코 순응하는 것이 아니며, 언젠가 다시 저항이 폭발할 것이다.”

조 교수는 집시법·국가보안법·사립학교법·신문법 등 각종 법·제도의 개악으로 민주주의가 구조적으로 후퇴할 수도 있겠지만, 일시적일 뿐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2010년 지방선거·2012년 총선 등 심판의 순간은 반드시 돌아온다. 그를 통해 민주주의의 원상회복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지난 7월22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주최한 ‘최근 언론에 대한 검찰 과잉 수사의 문제점’ 긴급 토론회장에는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 카페 회원(아이디 ‘소금’)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이 직접 만든 손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그는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에 카페 홍보 도우미를 자원했다”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위축이라니? 오히려 화가 나서 자발적으로 더 나서게 됐다. 나 같은 분이 아주 많을 거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라며 죽어가는 촛불을 밟고 또 밟는 이명박 정부의 시도가 성공할지, 아니면 더 거대한 촛불을 부르는 자충수가 될지 조만간 판가름이 날 듯하다.

취재 지원:송은하 인턴 기자

기자명 고동우·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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