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디플레이션 공포


무엇을 할 것인가
 

“노동자 임금 올려 디플레이션 해결하자”
 

통화정책의 최종 버전, 마이너스 금리
 

통화정책 지고 재정정책 뜰까
 

‘헬리콥터 머니’가 주목받는 이유

 

노동자 임금이 오르면, 자본 측의 이윤이 감소할 수 있다. 자본 측에서는 이윤 폭을 유지하기 위해 생산품 가격을 올린다. 가격이 오르면, 노동자들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 이렇게 임금 인상과 가격 상승의 ‘악순환’이 지속되는 상황을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물가는 오르지 않아도 골치지만, 너무 올라도 경제를 망친다. 서방의 선진 자본주의국 정부들은 인플레이션이 심각했던 제2차 세계대전 직후(영국)나 1970년대 초(미국), 행정력을 동원해서 임금 및 생산품 가격 인상을 제한했다. 소득(노동자의 임금 및 자본 측의 이윤)을 억제해서 경제를 안정화시키는 이 방법은 ‘소득정책(incomes policy)’이라고 불렸다. 어떻게 보면 시장 원리에 역행하는 정부 개입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글로벌 경제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물가 수준의 하락으로 인한 경기침체)이다. 가장 심각한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1990년대 초반의 거품 붕괴 이후 20여 년 동안이나 디플레이션에 시달렸다. 이런 가운데 일본 경제의 대안으로 강력한 소득정책이 제안되고 있다.

ⓒEPA경제학자들은 디플레이션도 소득정책으로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위는 일본의 한 자동차 공장.

소득정책은 당초 인플레이션에 대한 처방이었다. 디플레이션에도 적용 가능할까?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세계적 경제학자 올리비에 블랑샤르와 애덤 포센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소장은 〈파이낸셜 타임스〉(2015년 12월2일)에 게재한 공동 기고문에서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다만 이전의 소득정책을 ‘거꾸로’ 세우는 방법을 통해서다.

인플레이션율 높이면 정부 부채도 줄어든다?

블랑샤르와 포센은 일본 정부에 올해 내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5~10% 올리라고 제안한다. 그러나 이는 부자 기업의 이윤을 빈곤한 노동자들에게 이전시키는 소득분배 정책이 아니다. 오히려 기업은 이윤 폭을 유지하기 위해 임금 인상분만큼 생산품의 가격을 올려야 한다. 물가가 오르면 노동자는 다시 임금 인상을 요구할 것이고, 이런 ‘선순환’에 따라 5~10% 수준의 물가인상률을 달성할 수 있다. 이전 시대의 소득정책은 임금 인상→가격 인상→임금 인상의 ‘악순환’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블랑샤르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예전의 ‘악순환’을 의도적으로 조장해서라도 높은 수준의 물가인상률을 달성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물가를 올리기 위해 발버둥 쳐왔다. 양적완화로 통화량을 종전의 2~3배로 늘리면서 물가인상률을 2%까지 올리려 했다. 그러나 성과는 미미하다. 급기야 강력한 정부 개입을 통한 소득정책으로 물가를 대폭 올리자는(수년 동안 5~10%의 인플레이션율) 제안이 등장한 것이다.

이에 성공하면 일본 경제는 몇 가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우선 지난 20여 년 동안 지속된 디플레이션을 일거에 극복하면서 경기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게다가 인플레이션은 채권자에겐 불리하지만 채무자에게 이익이다. 세계 최고의 빚쟁이인 일본 정부의 채무(국가 부채) 역시 인플레이션을 통해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다. 블랑샤르 등은 이후 수년간 일본의 인플레이션율을 5~10%로 높이면 일본 정부의 부채 역시 8~10%(GDP 대비)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블랑샤르가 제안한 소득정책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일본의 재정안정성인 셈이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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