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무서운 놈이 온다. 할리우드 영화 이야기가 아니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테러방지법(정식 명칭은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이다)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이후 이제 사이버테러방지법률안(정식 명칭은 ‘국가사이버테러방지 등을 위한 법률’)을 통과시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또다시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방송은 연일 북한의 해킹과 사이버 공격 실태를 국정원이 제공한 자료를 토대로 보도하기에 바쁘다. 마치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국내 사이버 안전망이 붕괴될 것처럼 위기감을 조성하는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국정원은 국가사이버안전대책회의를 열어 “북한이 정부 주요 인사 수십명의 스마트폰을 공격해 통화 내역과 문자 메시지, 음성 통화 내용을 절취했으며, 추가 공격 등 2차 피해도 우려된다”라고 밝혔다.

아무리 긴급하다고 해도 기본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을 제정할 때에는 충분한 검토와 토론, 여론 수렴을 거쳐야 한다. 더구나 국회의원 선거를 한 달 앞두고 갑자기 몰아붙이는 정부·여당의 움직임은 이 법의 제정 자체를 정략적 목적이나 정치적 계산의 산물로 만들어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즉 국내 정세를 안보 정국으로 만들어 선거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리거나 경제 상황 등에 대한 정부 비판을 모면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점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황교안 국무총리가 10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국회의 사이버테러방지법·노동개혁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2016.3.10

국회에 계류 중인 사이버테러방지법률안은 “사이버 테러”를 ‘외국이나 북한뿐만 아니라 해킹·범죄조직 및 이들과 연계되거나 후원을 받는 자 등이 국가안보 또는 공공의 안전을 위태롭게 할 목적으로 해킹·컴퓨터 바이러스·서비스 방해·전자기파 등 전자적 수단에 의하여 정보통신망을 공격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체의 크고 작은 사이버 공격이 모두 사이버 테러에 해당될 수 있다. 그리고 국가정보원 산하에 국가사이버안전센터를 설치해 공공·민간 부문 사이버 테러 관련 업무를 총괄토록 하고 있다. 민간 부문에는 통신사, 인터넷 포털, 쇼핑몰 등이 모두 포함된다. 사이버 테러 방지 및 위기관리 책임 기관으로 정부기관은 물론이고 네이버·다음카카오 등 인터넷 포털 등 민간 사업자까지 포함시켜 국가정보원의 관할하에 둔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감시활동이나 민간 정보통신망 사업자에 대한 정부의 데이터 접근을 제어할 방도는 없다. 전체적으로 민간의 정보통신망까지 국정원의 장악 아래 두겠다는 시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나아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들은 인터넷망·소프트웨어의 취약점을 국정원에 보고해야 한다. 보고를 하지 않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과실로 보고하지 않을 경우에도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국가보안법처럼 불고지죄를 규정한 것이다. 보고를 통해 국정원이 취약점을 파악하면 취약점 보완에 나설 것이고, 그럴 경우 인터넷망에 대한 포괄적인 온라인 감시가 가능해질 수 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선민네트워크 등 5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사이버테러방지법 제정촉구 국민운동연합 회원들이 10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사이버테러방지법 제정촉구 및 테러방지법 제정 방해자 낙선운동 출정식을 하고 있다. 2016.3.10

 

정치·사회·경제적 약자에게 더 필요한 표현의 자유

테러방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여당 의원들까지도 텔레그램에 가입하는 등 사이버 망명이 늘어나고 있다. 아무리 문제없다고 주장해도 불안하고 그 불안에는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 공간에는 경계선이 없다. 판사의 영장 발부가 전제되더라도 통제 기능에는 한계가 있다. 국정원의 막강한 권력과 전력 때문이다. 국정원은 지난 대선 때 인터넷 댓글을 달아 여론 조작을 자행했고 이와 관련한 전직 국정원장에 대한 재판은 현재 진행 중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국정원은 무조건 신뢰하고 나의 모든 정보를 전적으로 맡길 만한 기관이 되기에는 아직 멀었다.

이명박 정부 이후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크게 위축되었다는 사실은 나라 안팎에서 꾸준히 지적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정치·사회·경제적 약자에게 더 필요한 자유다. 주장하고 요구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권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시민들이 말과 글에 대해 자기 검열을 한다면 항의도 비판도 할 곳이 없다. 거리로 나서면 집시법이 기다리고 있고, 댓글 하나 달기도 겁날 것이다. 대나무 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라도 지를 것인가.

사이버 테러 대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사이버 테러보다 정부 비판에 대응하거나 민간 감시를 목표로 할 것 같은 내용의 법률을 아무런 거름 장치 없이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좀 더 깊은 논의와 독소조항 제거 같은 신중한 접근 없이 졸속으로 통과시킨다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은 무서울 정도로 후퇴할 것이다.

기자명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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