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하고 놀까


‘냥줍’하기 전에 생각해야 할 일


꼭 같이 살지 않더라도

 

 

바야흐로 ‘테러방지법 시대’를 맞이해 고양이가 뜨고 있다.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 인터넷에 쓴 글이 문제가 됐을 경우, 고양이를 내세워서 변명하자는 게 누리꾼들의 묘안이라니까. “판사님(검사님), 이 글은 저희 집 고양이가 쓴 글입니다.” SNS에는 노트북 앞에서 골몰한 모습의 고양이 사진이 인기다. 무리도 아니다. 이 ‘고양이 드립’은 197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한 연설의 한 대목이다. “(박정희 후보 측에서) 우리 선거사무장인 정일형 박사 댁에 불을 질러놓고 범인을 조작할 수 없으니까 한다는 소리가 ‘고양이가 불을 질렀다’고 하더라.”

나는 앞으로 벌어질 사태(?)를 대비해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데, 이 고양이가 실은 길에서 살던 아이란 사실을 이야기하면 적잖은 이들이 이렇게 묻는다. “나도 고양이나 주워 올까? 집 근처에 매일 울어대는 길고양이가 있는데 마음이 쓰여서.” 물론 “고양이 재수 없어”라는 말보다는 이런 호의적인 반응이 안도가 되지만, 종종 고양이를 주워 오는 일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듯해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오늘은 길에서 만난 고양이를 ‘냥줍’(길고양이 주워오기)하기 전에 생각해야 할 일들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 원고를 담당하는 편집자가 냥줍을 고려하고 있어서 하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싱어송라이터 조동희씨가 드라마 <시그널> OST로 부른 ‘행복한 사람’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첫째, 고양이가 당신의 구조를 필요로 하는 상태인지 시간을 두고 냉정하게 관찰하자. 어미가 먹이를 구하러 가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혼자 남겨진 새끼 고양이를 버려진 것으로 착각하고 덥석 집어오는 이들이 많은데, 새끼 고양이의 처지에선 어미에게 배워야 할 최소한의 고양이 습성이나 사회화 교육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는 셈이다. 선의에서 한 일이지만 결과적으론 고양이 영아 납치나 다름없는 일이기에, 어미에게도 새끼에게도 당신에게도 모두 좋지 않은 결과로 남는다.

성묘(다 자란 고양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양이가 이미 자리를 잡고 살고 있으며, 학대나 위협에 시달리는 일 없이 지역 주민들과 조화롭게 지내고 있다면 꼭 데려와야 할 필요는 없다. 물론 길고양이의 평균수명은 집고양이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짧으니 어쨌든 데려오는 게 나은 일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이미 나름 잘 살고 있는 고양이를 지레 ‘불쌍하다’고 생각하며 데려오는 것 또한 고양이를 존중하지 않는 자의적인 판단이다. 무턱대고 집에 데려왔다가 적응하지 못한 고양이가 집을 나가는 사례도 많은데, 그런 경우 그 고양이가 예전에 터를 잡고 지내던 영역은 벌써 다른 고양이 차지가 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생각을 충분히 해야 한다.

둘째, 당신이 고양이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인지 잘 생각해보라. “고양이는 사람 손을 잘 안 타고 혼자서도 잘 노는 동물”이라는 말만 믿고 아무 각오 없이 고양이를 데려왔다간 크게 낭패를 본다. 개처럼 애착을 복종의 형태로 보여주지 않아서 그렇지, 고양이 또한 동거인의 관심과 애정이 없으면 심하게 외로움을 탄다. 말을 걸어주고 털을 빗겨주고 고양이용 장난감으로 놀아줘야 한다. 게다가 아무리 깔끔한 동물이라고 해도 혼자서 발톱을 깎거나 눈곱을 떼고 귀지를 청소하고 코딱지를 떼고 제 화장실을 치우는 건 불가능하지 않겠나? 그 모든 걸 사람이 해줘야 한다.

당신의 거주 영역도 예전 같을 순 없다. 아무리 열심히 청소를 해도 고양이 털이 온 집안에 날리는 건 피할 길이 없고, 고양이 화장실용 모래는 어떤 종류를 사용하든 어느 정도 먼지가 날릴 수밖에 없다. 당신이 만약 아토피나 천식, 비염 등의 알레르기성 질환을 앓고 있다면 고양이와의 동거는 높은 확률로 그 질병들을 악화시킬 것이다. 그런 경우에도 알레르기 약을 먹어가며 고양이와 동거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반려동물은 대개 동거인보다 먼저 죽는다

셋째, 당신은 고양이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지켜줄 자신이 있는가? 이것은 사실 거북이처럼 수명이 긴 종이 아닌 이상 그 어떤 동물과 살든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절대다수의 반려동물은 동거인보다 먼저 죽는다. 인간과 함께 사는 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15~18세다. 모든 동물이 그렇듯 고양이 또한 나이 먹으며 어릴 때의 귀여움을 조금씩 잃어가고, 노년이 되면 지병을 앓기 시작한다. 당신은 당신의 동거묘가 어린 시절의 아름다움을 잃고, 흰 머리가 나고, 다리를 절고, 백내장을 앓아 시력을 잃어가는 그 과정을 의연하게 함께해줄 각오가 되어 있나?

마음의 준비가 전부가 아니다. 동물병원을 다니다 보면 국민건강보험이 얼마나 위대한 정책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인간처럼 보편 보험이 없기에, 대부분의 동물병원 진료는 ‘생각보다 비싼’ 것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고양이 환자에게 문진을 해서 증상을 파악하고 그 부분만 골라서 검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단 의심 가는 검사란 검사는 다 해봐야 한다는 점에서, 동물병원 진료는 필연적으로 비쌀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요소를 충분히 생각하고 신중하게 판단한 뒤에도 결심이 확고하다면, 축하한다. 당신의 인생은 이제 고양이가 없던 시절을 떠올려 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급격하게 변할 것이다. 비록 이제 검은 모직 의류는 다 입었다 봐도 좋지만, 고양이는 그걸 감내할 수 있을 만큼 멋진 동물이다. 당신과 동거묘의 행복을 빈다.

기자명 중림동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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