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스봄이 되돌아보는 20세기는 어떤 세기였나? 그가 ‘극단의 세기’라고 부른 ‘단기 20세기’(1914∼1991)는 물질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고 인류의 역량이 우주로까지 뻗어나간 세기였지만 동시에 유사 이래 가장 피비린내 나는 시기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포함해서 전쟁으로 인해 직·간접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1억8700만명에 달하며 이 수치는 1913년을 기준으로 당시 세계 인구의 10%가 넘는다. 1914년 이래 세계 전체가 평화로웠던 적은 한순간도 없었다고 하니까 달리 ‘전쟁의 세기’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게다가 사정이 더 좋지 않은 것은 갈수록 민간인의 피해가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1차 대전의 사망자 중 민간인은 고작 5%였지만, 2차 세계대전에서는 66%까지 늘어나며, 요즘에는 아예 80~90%의 희생자가 민간인이라고 한다.
“미국을 재교육해야 한다”
그러한 포연과 살육 속에서도 20세기는 한편으로 인류사에 극적이면서도 갑작스러운 단절을 가져왔다. 20세기 중반에 이루어진 이 단절은 기술과 산업생산에서의 변화에 힘입은 것인데, 홉스봄이 지적하는 것은 네 가지이다. 첫째, 농민 계층의 쇠퇴와 몰락 둘째, 초거대 도시의 부상 셋째, 의사소통 수단의 기계화 넷째, 여성이 처한 상황의 변화. 우리의 경우를 보자면 모두가 지난 몇십년 동안에 이루어진 변화이다. 게다가 교육 기회 확대와 관련해 저자는 적정 연령층의 55%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나라 20개국 중 하나로 한국을 꼽는데, 사실 고등교육 확대는 한국사에서 유례없는 20세기의 성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급속한 세계화가 초래하는 지역 간 불균형과 불평등 외에 21세기가 당면한 문제점은 복수의 강대국이 균형을 이루는 국제 체제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체제에 의해서 냉전 시기의 균형이 가능했지만 소련의 붕괴 이후 미국은 유일의 패권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이 제국의 확립에는 필수적이지만 그 유지에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간과했다. 9·11 사태 이후 미국은 자신의 힘만을 믿는 과대망상주의에 빠져서 가공할 군사력을 과시한 것 외에는 국제적으로 고립을 자초하고 경제적 허약함만을 노출했다. 역사학자로서 홉스봄이 확신하는 것은 미국의 현재와 같은 위세가 역사적으로는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리라는 점이다. 때문에 “현재로서는 가장 몰두해야 할 일이 미국을 말리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미국을 교육하거나, 재교육하는 것”이라는 게 ‘폭력의 시대’를 염려하는 늙은 역사학자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