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정치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언로(言路)를 열어놓는 일일 테다. 어질고 훌륭한 통치자는 예외 없이 신하들이나 백성들의 말에 귀 기울였고 보다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썼지. 형식적으로나마 조선 왕조에는 백성들이 귀천을 떠나서 임금에게 직소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있었지. 네가 잘 아는 신문고 제도가 대표적이겠지만 ‘격쟁(擊錚)’이라는 것도 있었어.

격쟁이란 ‘조선시대 일반 백성이 궁궐 안으로 들어가거나 임금이 행차할 때 징이나 꽹과리를 치며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는 행위’였단다. 대충 어떤 건지 짐작하겠지? 정조 임금 같은 분은 수천 건에 달하는 상언(上言:글로 지은 호소문)과 격쟁을 처리했다고 해. 그런데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서 조선 전기의 왕 세조는 온양 온천에 요양하러 가다가 매우 황망한 사연을 접하게 돼.

천안삼거리에서 세조는 한 여인의 찢어지는 통곡 소리를 들어. 대체 이게 누구의 곡소리냐? 알아보니 곡성의 주인공은 버드나무 위에 올라가 있었어. 세조는 신하를 보내 이유를 묻게 해.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어. “이는 권세 있는 신하의 일이라 소인이 전하 앞에서 직접 아뢰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워낙 힘 좋은 신하와 관련된 일이라서 말단 신하 정도는 감히 그를 들먹일 수 없을 것이니 임금 앞에서 직접 고하겠다는 거였지. 세조는 이를 허락했어. “데려오라.”

세조 앞에 엎드린 여인은 피를 토하듯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털어놓았는데 세조는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말았어. 그녀는 과거 세조가 일으킨 쿠데타인 계유정난(癸酉靖難) 당시 김종서 등 조정 중신들을 제거할 때 큰 공을 세웠던 홍윤성이라는 공신의 숙모였단다. 그런데 이 숙모가 “조카 홍윤성이 제 남편을 죽여 그 뒤뜰에 묻었습니다”라고 고발한 거야.

ⓒ연합뉴스조선시대에는 왕이 행차할 때 백성이 징이나 꽹과리를 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격쟁’이 있었다. 위는 수원 화성행궁 앞에서 격쟁을 재연하는 모습.

죽었다는 숙부는 조카 홍윤성이 가난하던 시절 수십 년을 돌보아준 사람이었어. 계유정난 뒤 홍윤성이 출세를 하고 잘나가게 되자 숙부가 어떤 일로 부탁을 하려고 찾아갔는데 홍윤성은 그 대가로 땅 스무 마지기를 달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고, 숙부가 이에 분개하여 네가 이럴 수 있느냐며 호통을 치자 무지막지한 손으로 때려죽여서 마당에 파묻어버렸다는 거였어. 졸지에 패륜아에게 남편을 잃은 아내는 형조다 사헌부다 다 찾아다니며 고발해봤지만 아무도 정난공신 홍윤성을 고발하거나 탄핵할 엄두도 내지 못했고 마지막으로 임금의 길을 막고 호소했던 거야. 조사 결과 이는 사실로 밝혀졌지.

기록에 따르면 홍윤성은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인물이었어. 백성의 땅을 마음대로 빼앗고는 돌려달라고 울며 호소하자 돌로 때려죽이기도 했고, 자기 집 앞을 흐르는 물에 말을 씻기면 쫓아나가서 죽여버리기도 했다니까. 하지만 수십 년 먹여주고 돌보아준 숙부를 제 손으로 죽이고 마당에 묻어버린 건 정말 인간으로서 양심을 깡그리 포기한 살인귀였다고 할 수밖에 없어. 그런데 세조는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했을까? 동생부터 조카까지 거침없이 죽였던 실력을 여지없이 발휘했을까?

ⓒ하진영 페이스북이른바 ‘여대생 청부 살해 사건’의 피해자 오빠가 살인을 청부했던 윤길자씨가 모범수들이 수감되는 직업훈련 교도소로 가게 되자 1인 시위에 나섰다.

그러지 못했어. 짐짓 홍윤성을 죽이겠다고 설레발을 치긴 했지만 다른 공신들이 “공신의 죄는 한 단계 감하여 묻는 것입니다”라고 만류하고 나서자 홍윤성을 용서하고 만 거야. 하지만 그냥 넘기는 건 또 찜찜했던지 홍윤성의 하인들, 즉 조카에게 맞아죽은 숙부를 암매장했던 홍윤성의 하인들을 잡아들여 목을 날려버렸어. 하인들의 죄라면 오직 하나 ‘주인 잘못 만난 죄’뿐이었는데 말이야.

세조는 조선 왕조의 기틀을 다진 임금으로 평가되고 있어. 하지만 또 역으로 조선 왕조의 골수에 사무친 암덩어리를 이식한 인물이기도 해. 조선 왕조의 근간이 되는 〈경국대전(經國大典)〉을 편찬하는 데 힘쓴 왕이면서 자신을 도운 공신들에게는 법의 적용을 게을리하고 그들의 횡포와 범죄를 눈감아주었기 때문이야. 공신이니까. 나와 같이 큰일을 한 사람이니까. 저들하고 척을 지게 되면 좋을 것이 없으니까. 그 후 조선 왕조에서는 툭하면 공신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나라를 분탕질했지. 그들의 범죄는 웬만하면 면책됐어. ‘공신’이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함께한 남편이 수십 년 돌봐준 조카를 만나러 갔다가 맞아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숙모의 심경을 생각해본다. ‘미치고 팔짝 뛴다’는 말이 전혀 낯설지 않아. 그 가슴을 손톱으로 긁어 피가 흐르고 목이 쉬어 소리가 나지 않을 만큼 울부짖어도 모자랄 일 아니겠니. 애꿎은 홍윤성의 하인들만 목이 떨어지는 걸 보면서 숙모는 또 한 번 발을 굴렀을 거야. “전하. 윤성이는요? 저 악마는요?” 그러나 홍윤성은 그 뒤로도 잘 먹고 잘살다가 죽는단다.

살인 청부 사모님의 특별한 감옥살이

“참 옛날엔 별일이 많았구나.” 너는 한숨을 쉬겠지. 그러나 역사란 놈은 또 네게 이렇게 빈정거릴지도 몰라. “글쎄, 과연 옛날 일일까?” 그러면서 이 사건을 들이밀 거야. ‘여대생 공기총 살해 사건.’ 아마 너도 이 사건에 대해 대략의 이야기를 들었을 테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어. 자기 사위가 그의 사촌 여동생과 불륜 관계라는 망상을 가졌던 한 대기업 사모님이 하수인들을 시켜 여학생을 납치해 살해한 뒤 암매장했던 사건이었지. 이 문제의 사모님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도 남편의 돈과 힘, 그리고 부도덕한 의사의 도움으로 병원 특실에서 아늑한 감옥살이(?)를 즐기고 있었음이 폭로됐지. 이로 인해 세상은 물 끓듯 분노했어.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여기까지만 얘기해도 어금니가 부서져라 앙다물게 되는데 얼마 전 피해 여학생의 어머니가 슬픔 끝에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과 함께 살인을 사주한 그녀는 최신식으로 지어진 ‘직업훈련 교도소’에서 ‘직업훈련’도 받지 않으면서 지내고 있다는 뉴스가 또 한 번 세상 사람들의 뒤통수를 쳤단다. 아빠도 홍윤성의 숙모처럼 청와대 위 가로수에라도 올라가고 싶은 심경이 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 나라는 법도 없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극악한 죄인, 티 없이 맑게 살아가던 여성을 자기 사위와 바람났다고 믿고 죽여버린 범죄자가 법을 우롱하며 호의호식하며 지낸 것도 모자라 그것이 폭로된 뒤 감옥에 들어가서도 ‘재량’에 따라 편안하게 지내는 동안 희생자의 어머니는 슬픔에 굶주려 말라 죽어가야 했을까. 아무리 돈 있는 놈이 양반이고 돈 많은 놈이 공신(功臣)이라지만 여기는 높은 양반들이 툭하면 우겨대는 ‘법치국가’ 아니냔 말이야. 피해 여학생의 오빠는 오늘도 청부 살해를 한 ‘사모님’의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어. 그리고 회사 직원들이 그 오빠를 협박하고 있다는구나.

아빠는 회사 돈으로 아내의 탈법을 도왔던 그 회사 회장에게 촉구하고 싶어. 당신의 전 재산을 기울여 희생자 가족에게 보상하고 희생자 추모재단을 세워 사회에 환원하라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1인 시위라도 하고 싶다. 이렇게 쓴 팻말을 들고 말이야. “‘한탑’으로 이름을 바꾼 영남제분 회장 류원기씨. 당신은 그래야 한다!  당신은 당신의 재산으로라도 속죄해야 한다. 여기는 대한민국이다. 법치국가란 말이다. 피해자 가족에게 보상하고 피해자 추모재단 설립하라.”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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