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28)는 2015년 9월부터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측면 버튼을 만드는 ㅇ업체(경기 부천 소재)에서 일했다. 신제품 갤럭시S6와 갤럭시S6 엣지 테두리는 알루미늄이다. 공장의 컴퓨터수치제어기계(CNC)는 알루미늄을 깎아 부품을 만들며 끊임없이 알코올 용액을 끼얹는다. 마찰로 인한 열을 냉각시키고 기계의 윤활제 구실을 하면서 금속의 부식도 방지하기 위해서다. A씨는 기계가 가공한 알루미늄 버튼에서 에어건으로 알코올을 제거했다. 알코올이 눈과 피부에 튀고 공기 중으로 흩뿌려졌다. 보안경, 용액 침투를 막는 보안 장갑, 송기 마스크는 없었다.

2016년 1월15일 오후 9시, A씨는 야간근무 조로 출근하기 직전 구토를 했다. 업무를 마친 다음 날 오전 9시, 갑자기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도 상태는 마찬가지였다. 급히 응급실을 찾았다. 시신경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양쪽 눈의 시력을 거의 상실했다. 원인은 메탄올 급성중독이었다. A씨가 다닌 공장에서 사용한 알코올은 메탄올이었다.

메탄올은 무색무취의 액체로 알코올의 일종이다. 오랫동안 많은 양을 흡입·섭취·접촉할 경우 뇌 전반을 비롯한 중추신경계에 악영향을 주는 독성 물질이다. 특히 시신경을 공격한다. CNC 공정에서는 저독성 물질인 에탄올로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에탄올이 1㎏에 약 1200원인 데 비해 메탄올은 1㎏에 약 500원으로 훨씬 저렴하다.

ⓒ시사IN 신한슬3월2일 노동건강연대 등 시민단체가 서울 정부청사 앞에서 ‘불법 파견 노동자의 메탄올 중독’과 관련해 정부와 삼성·LG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열악한 작업환경도 문제였다. A씨의 메탄올 중독을 산재로 의심해 고용노동부에 처음 신고했던 이대 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김현주 교수는 “작업장에서 메탄올 증기를 흡입해 급성중독이 일어나는 경우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메탄올 ‘증기’ 흡입에 의한 중독이 문헌으로 보고된 것은 1960년대가 마지막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인하대 직업환경의학과 임종한 교수는 “메탄올은 대체물질이 있을 뿐 아니라, 적절한 환기와 보호구를 갖춰 노출 기준인 200ppm 이하로 철저히 관리하면 급성중독이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1월22일 산업안전공단 부천지사가 ㅇ업체의 작업환경을 조사한 결과, 노출 허용 기준의 10배에 달하는 메탄올이 검출됐다.

피해자는 더 있다. A씨와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B씨(28)도 1월22일 눈이 아프고 앞이 보이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 역시 메탄올 중독이었다. 시신경염으로 실명 위기에 처했다. 환자가 연속해서 발생하자 고용노동부가 ㅇ업체에 임시 건강진단을 명령했다. 이 과정에서 C씨(19) 역시 두통을 느끼고, 코피를 쏟고, 시야가 제한되는 등 급성 메탄올 중독 증상을 보였다. C씨는 실명에는 이르지 않았으나 혹시라도 증상이 악화될까 봐 불안에 떨고 있다.

한편 경기 부천의 ㄷ업체를 다니던 D씨(24)는 1월28일 근로복지공단에 메탄올 중독이 의심된다며 산재 신청을 했다. D씨 역시 스마트폰 부품 가공업체에서 일했다. 일을 시작한 지 8일 만에 수차례 구토를 했다. 동료가 일을 하러 가자고 깨웠지만 눈을 뜨지 못했다. 병원은 ‘메탄올로 인한 독성 뇌병증’을 의심했다. D씨의 왼쪽 눈은 실명되고 오른쪽 눈은 시력 손상을 입었다. ㄷ업체에서도 노출 허용 기준의 2배에 육박하는 메탄올이 측정되었다.

2월17일, 인천의 부품 가공업체에서 일하던 E씨(27)도 의식이 혼미해지고 앞이 보이지 않아 병원으로 응급 이송되었다. 이 업체는 심지어 2월3일 중부지방고용청의 메탄올 사용 관련 긴급 점검을 받았던 업체였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당시 사업주는 “지난해 말부터 절삭 용액을 에탄올로 교체했고 앞으로도 메탄올을 취급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감독관에게 진술했다. 그러나 2주 후 메탄올 중독 환자가 발생했다. 중부지방고용청 관계자는 “해당 업체에는 작업 중지 명령이 내려졌고 현재 수사 중이다”라고 말했다.

피해자 5명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20대였다. 모두 삼성전자 스마트폰 부품을 만드는 3차 하청업체에서 일했다(E씨가 일하던 업체에서는 LG전자 스마트폰 부품도 만들었다). 모두 인력 파견업체를 통해 고용된 파견 노동자였다. 제조업 직접 생산 공정 업무는 파견법상 파견 노동자 사용이 금지된 업무다. 단, 일시·간헐적인 사용은 허용하고 있다. 노동건강연대 박혜영 노무사는 “원청을 ‘갑’이라고 봤을 때 을(1차 하청)-병(2차 하청)-정(3차 하청)도 아닌 ‘무’에 해당하는 젊은 파견 노동자들이 연속적으로 시력을 잃었다. 한국 제조업의 복잡한 하청 사슬에서 가장 마지막 부분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하청 사슬의 마지막 단계로 갈수록 사업체 규모는 영세해진다. 한국노동연구원 안주엽 선임연구위원이 2013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 조사를 원·하청 연결망과 맞추어 하청업체의 사업체 규모를 파악한 결과, 3차 이상 하청업체는 10인 미만 사업체가 30.8%로 가장 많았다. 반면 1차 하청업체는 300인 이상 사업체가 21.7%로 가장 많았다. 시간당 임금도 적어진다. 같은 연구에서 원청 대비 하청기업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1차 하청업체 54%, 2차 하청업체 51%, 3차 하청업체 42% 순서로 낮았다.

반면 위험은 증가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5년 산업재해의 81.6%, 사망재해의 73.5%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났다. 그나마 정규직도 아닌 파견 노동자들은 더욱 위험하다. 한국노총은 3월2일 성명을 발표해 “해당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숙련되지 않은 채 현장에 투입되는 파견 노동자들이 산재 사고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서도 일부 노동자들은 화학물질에 관련된 안전 규정은커녕, 자신이 사용하는 화학물질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김현주 교수는 “(A씨 진단 이후 실시된) 임시 건강진단 과정에서 한 20세 노동자는 (메탄올이) 물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같은 업종에서 10년을 종사했지만 ‘그냥 알코올인 줄 알았다’고 말한 사람도 있다”라고 말했다.

원청의 안전보건 책임 강화한다고 나섰지만…

메탄올은 인체에 흡수된 뒤 쌓이지 않고 소멸된다. 만일 만성중독에 걸려 뒤늦게 신경 손상 증상이 발견될 경우 원인을 알 수 없다. 일터가 자주 바뀌는 파견 노동자의 경우 어디서 어떻게 중독됐는지 몰라 산재 신청을 못할 가능성이 높다. 직업환경의학전문의인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임상혁 소장은 “알려지지 않은 (메탄올 중독) 사례가 많을 것으로 추측한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메탄올 같은 위험한 물질의 제조·판매·취급·폐기 전 과정에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영세 사업장의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다섯 번째 환자가 발생한 업체처럼 비용을 줄이려 안전을 소홀히 하는 경우도 있고, 사업주조차 독성물질의 위험성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임상혁 소장은 “대기업엔 환경 관리를 전담으로 하는 부서와 전문가들이 있지만 영세 사업장은 환기설비조차 부담스럽다. 정부의 관리·감독과 지원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원청의 안전보건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기업의 자율적 조치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이라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3월10일 고용노동부는 메탄올 중독 재해를 계기로 ‘원·하청 안전보건 공생협력 프로그램’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모기업과 사내·외 하청업체가 협의를 통해 위험 요인을 개선하면 우수 사업장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2012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삼성전자를 비롯한 500대 대기업은 줄곧 참여 대상자였다. 민주노총은 같은 날 성명을 발표해 “실효성은 없고, 페이퍼로만 제출하고, 현장 개선은 없고, 결국 기업의 감독 면제로만 귀결된 정책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삼성전자는 2015년 7월 ‘삼성전자 협력사 행동규범 가이드’를 만들었다. ‘산업안전’ 항목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거래하는 1차 협력사, 1차 협력사와 거래하는 모든 하위 협력사, 인력 파견회사는 유해 인자에 노출되지 않도록 적절한 개인 보호장비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한 3개 하청업체에서 이 가이드라인은 무용지물이었다.

기자명 신한슬 기자 다른기사 보기 hs51@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