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통화인 원화 가치가 요동치고 있다. 하루 단위로는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으나, 큰 흐름에서는 하향 추세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블룸버그 환율 자료(현물 종가 기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31일 1달러당 1175.06원이었던 원화 가치가 2월24일 현재 1233.90원으로 떨어졌다. 50여 일 만에 5% 하락한 것이다(오른쪽 표 참조).

지난 2월19일, 5년8개월(2010년 6월 이후) 만에 1230원대를 하향 돌파한 원화 가치는 사흘 뒤인 2월22일에는 한때 1239원까지 떨어졌다. 장세를 지켜보던 금융 당국이 “최근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과 변동성이 과도하다”라며 ‘구두(口頭) 개입’에 나서지 않았다면, 1240원대까지 갔을지도 모른다. 한국은행 보유 외환으로 원화를 사들여 그 가치를 올리는 ‘실제 개입’이 아니라 ‘앞으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신호로 일단 시장을 진정시켰다.

ⓒ연합뉴스원·달러 환율이 1230원대를 돌파해 5년7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2월19일 오전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들은 원화 가치가 정부 개입과 상관없이 한동안 하락할 것으로 내다본다. 한국 정부의 의지가 미치지 못하는 ‘큰 흐름’, 즉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이 상당 기간 심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의 통화가치는 세계경제가 불안할수록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글로벌 전주(錢主:각국의 연기금, 중앙은행, 대형 은행 등)들이 보유 자산을 비교적 안전한 미국(달러), 일본(엔), EU(유로) 등 경제대국의 통화로 보유하려 들기 때문이다. 이런 ‘전주’들이 한국 같은 나라에서 회수한 자금을 경제대국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통화들의 가치가 변동한다. 심지어 경제대국이 글로벌 위기를 유발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미국 금융기관들이 일으킨 2008년 가을의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는 7개월여 동안, 원화 가치는 달러화에 대해 거의 50% 절하되었다. 2008년 7월 초에 1달러당 990~1000원 선이었던 원화 가치가 이듬해(2009년) 3월8일에는 1555.05원까지 떨어졌던 것이다.

정치·경제 상황도 원화 가치 추락 가속화시켜

중국의 경제성장이 지속적으로 둔화되고 있다는 것도 원화 가치의 추가 하락이 예상되는 이유다. 한국의 대중(對中) 수출이 줄어들면서 경제 전반의 실적이 악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통화인 위안화도 계속 절하될 것이 확실하다. 원화 가치는 일정한 시차를 두고 위안화를 따라가는 추세다.

국제 유가의 하락 역시 글로벌 경제 차원에서 거대한 불안 요소다. 서부텍사스유(WTI) 가격의 경우, 2014년 6월 배럴당 106달러에서 2월23일 현재 31.87달러로 70% 정도 떨어져 있다. 유가 하락이 악재인 이유는, 글로벌 차원에서 디플레이션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유가는 물가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중동·러시아 등 산유국의 경우, 유가 하락에 따른 수익 감소 때문에 경기 둔화는 물론이고 경상수지·재정수지 등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해 전 세계로 전파될 위험을 무시할 수 없다. 더욱이 산유국들은 석유 매각 대금을 한국 같은 국가에 대규모로 투자해왔는데 이런 자금을 거두어들이면서 금융시장을 타격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도 원화가 절하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많다. 경제 전반적으로 전망이 어두우면 해당국의 통화가치가 내려가는 경향이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지난 1월 한국의 수출액은 모두 336억23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18.8%나 줄었다. 아시아나 남미의 다른 수출국들보다 감소 폭이 크다. 1월 수출액을 지난해 같은 시기와 비교할 때, 중국과 일본의 감소 폭은 각각 11.2%와 12.8%다. 남미 브라질과 칠레의 수출 실적도 크게 하락(각각 17.9%, 칠레 14.15%)했지만, 한국보다는 나은 편이다. 게다가 국내 제조업의 평균 가동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가 하면 가계부채가 1200조원을 넘어서는 등 한국 경제의 리스크가 계속 증대하고 있다. 이에 더해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개성공단 폐쇄 등으로 남북한 간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한국의 지정학적 위험 요인을 증폭시켜 원화 가치 추락을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2월 들어 환율과 금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분위기였다. 금리 인하는 고전적인 경기부양 정책이다. 대출의 비용을 줄여 투자와 소비를 촉진하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엔 금리 인하가 수출 실적을 올리기 위한 환율정책(금리를 내리면 국내에 들어와 있던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해당국의 통화가치를 내림)으로 사용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일본의 아베노믹스다.

한국은행은 그동안 현행 1.50%인 기준금리를 고수할 것이라는 신호를 타전해왔다. 그러나 수출 실적이 계속 악화되는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원화 가치를 절하시키는 방법으로 국내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방안도 계속 나왔다. 지난 2월16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소수 의견이긴 하지만 기준금리 인하가 거론되었다. 일부 민간 금융기관들은 고객들에게 3~4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가 인하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런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 자체가 자기실현적으로 원화 가치의 폭락을 부추긴 측면도 있다.

그러나 2월 중순 이후, 원화 가치의 불안정성이 증폭되면서 금리정책 역시 길을 잃은 상태다. 섣부르게 금리를 내렸다가 원화 가치가 폭락하고 이에 따라 외국인들이 한국 증시에서 대폭 이탈하면서 금융시장을 패닉 상태에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원화는 수출시장에서 주요 경쟁국인 일본의 엔화에 비해, 올해 들어 2월24일까지 13%나 떨어진 상태다. 금리를 내리지 않아도 통화가치가 하락 중인 것이다. 글로벌 차원에서 불황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원화 절하로는 수출 증대에서 큰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는 소리도 나온다.

중국 경제가 경착륙 리스크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거나 산유국들이 감산 합의를 통해 국제 유가 하락을 중단시키면 글로벌 불안정성이 완화되면서 원화 가치 역시 안정될 수 있다. 올해 서너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알려진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금리 인상 연기를 공식화하는 것도 청신호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 실적이 계속 악화되는 가운데 유가 하락이 지속되고, 연준이 금리 인상을 고집하는 최악의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원화 가치는 대외 요인만으로도 줄곧 떨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한국 정부는 금리를 하향 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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