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111 BHM 2005. 민병헌의 사진은 사진이 할 수 있는 최대치 목소리를 내면서 적막의 깊이, 허공의 장엄, 거리의 미학을 담는다.
민병헌의 사진은 심장에 말을 건다. 짙어가는 저녁의 빛깔 앞에 잠시 멈춰 서서 내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모를 때, 지금 불어오는 이 가을바람이 몇 년 전 그 길에서 불어오던 바람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 불편하게 눈을 찌르는 도시의 불빛들이 이미 수년 전부터 무채색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문득 심장에 닿는 그 차가운 느낌.

민병헌의 말 걸기는 그런 식이다. 서늘하거나 차갑게 질문을 건넨다. 하지만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아도 괜찮을 질문들이라 여겨지는 건, 그의 질문은 이미 질문의 형식을 넘어서,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의 사진은 이를테면 이런 흑백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눈발에 휩싸인 거대한 산과 그 산이 받아먹는 웅장한 눈발들. 안개에 잡아먹힌 강변과 더 먼 곳으로 시선을 향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결연한 안개들. 그의 사진들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것’에 말을 건다. 그는 자연의 내밀한 관계를 읽을 줄 아는 사진가이다.

최근 도서출판 호미에서 출간된 민병헌의 사진집 〈스노우랜드〉는 풍경의 축제다. 사진이 할 수 있는 최대치 목소리를 내면서 적막의 깊이, 허공의 장엄, 거리(距離)의 미학을 담았다.
그의 사진은 ‘가장 찍고 싶은 것이 가장 찍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했던 프랑스 사진가 베르나르 포콩의 말처럼, 가장 찍을 수 없는 것 앞에 서서 그것을 오래 응시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사진은 ‘인화지는 왜 하얀색인가?’ 하는 원초적이며 유아적인 질문에 답을 해준다. 그럼에도 사진작가가 그 흰색 앞에 삿됨이 없다는 사실이, 그 흰색 앞에서 계속해서 어떤 ‘자기 다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가 그의 사진을 좋아하고 흠모하는 이유이다.

공근혜 갤러리는 10월4일부터 28일까지 〈스노우랜드〉 연작 가운데 미발표작 10여 점과 1998년에 발표한 ‘안개’ 시리즈, 그리고 2000년부터 2003년에 발표한 ‘어둠’ 시리즈 가운데 대표작들만 모아 전시를 하고 있다.
그의 사진 앞에 서면 ‘사진이라기보다는 그림에 가깝고 그림이라기보다는 시에 가깝다’(오광수)는 말의 뜻을 확인할 수 있다. ‘마음을 비우고 사물을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유연성’(성완경)을 마주하며 ‘극적이지 않은 위엄’(카렌 신샤이머)이란 말의 의미도 짚어낼 수 있다. 그의 이번 전시를 통해 자연으로부터 추방된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었다. 세상은 자꾸 뭔가를 세우고 지으려 하는데, 자연은 자꾸 여백을 만들려고 애쓴다는 사실을 그의 사진은 일깨워준다.

전시장을 돌아 나오면서 수줍은 듯 중간 톤에 의지하는 그의 사진과 흐린 날처럼 중간 색을 중요시하는 그의 사진들을 떠올리면서, 앞으로도 그는 오래 ‘혼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인 삶을 지켜내려는 의지는 그의 사진 속에서 수줍다. 그는 아주 흐린 날에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고 했던가. 가닿을 수 없는 풍경에 낚싯바늘을 걸고 있는 사진들 앞에서 잠시 침묵하다가 갤러리를 빠져나오는 길, 흐린 하늘에 대고 고함을 치고 싶었다. 민병헌의 사진을 심장으로 읽은 날은 그랬다.

SL051 BHM 2005. 그의 사진 앞에 서면 ‘사진이라기보다 그림에 가깝고, 그림이라기보다 시에 가깝다’는 말(오광수) 뜻을 확인할 수 있다.

 

DF019 BHM 1998(위). DF040 BHM 1998(아래). 안개에 잡아먹힌 강변과 더 먼 곳으로 시선을 향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결연한 안개들. 그의 사진들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것에 말을 건다.
기자명 이병률 (시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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