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6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북정책의 혁명적인 전환을 예고하는 국회 연설을 했다. “김정은 정권의 브레이크 없는 독주”를 막기 위해 “개성공단 폐쇄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더 강력한 대북 제재를 통해 북핵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답’을 찾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더 이상의 교류와 협력, 협상은 무의미하며 제재와 압박을 통한 북한 체제의 변화만이 한반도 끝장 게임(Korean end game)의 수순이라는 메시지다. 여당과 보수권에서는 쌍수 들고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면밀히 들여다보면 우려가 앞선다. 무능·무지·무책임·무대책에 대한 일말의 성찰도 없이 강경 일변도로 대북정책을 선회하는 건 더 큰 재앙을 예고하고 있어서다.

첫째, 정책적 무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연설 하나로 그동안 현 정부가 공들여왔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한반도 불신 증폭 프로세스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신냉전 구도로, 유라시아 구상은 립서비스로 끝나고 말 운명에 처했다. 게다가 보수·진보 모두에게 희망의 담론으로 부각되었던 통일대박론도 그 끝이 보인다. 박 대통령은 ‘통일대박론이 지금 상황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강변하지만 그걸 믿을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둘째, 현 정부의 무지도 문제다. 개성공단 폐쇄라는 극단적 조치를 취하면서도 북한 지도부가 공단 자금을 얼마나, 어떻게 핵 및 미사일 개발에 전용했는가에 대한 구체적 증거를 대지 못하고 있다. 심증만으로는 우리 국민이나 국제사회를 설득하기 어렵다. 이는 전형적인 정보 수집 실패 사례다.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이란 모델’을 이번 조치의 벤치마크로 삼았다고 한다. 이 또한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서방의 대이란 제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란 경제와 사회가 열려 있고 개방을 선호하는 중산층이 건실했을 뿐 아니라, 로하니 같은 온건파에게 희망을 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과 중산층도 존재하지 않고 온건파의 역할이 지극히 제한된 북한에 대한 제재는 원천적 한계가 있다. 더구나 강력한 제재가 북한 정권 변화를 가져온다는 보장이 없는데도 이에 기초해 대북정책을 편다는 것은 중차대한 정보 판단 실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013년 4월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이 멀쩡하게 돌아가던 개성공단 조업을 중단시키겠다고 한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라고 말했었다(위).

셋째, 현 정부의 무책임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과 정부·여당 인사들은 한목소리로 이번 사태를 햇볕정책 탓으로 돌렸다. 박 대통령은 “퍼주기가 핵과 미사일로 돌아왔다”라고 탄식했는가 하면 여당 지도부는 “햇볕정책이 북한 핵·미사일을 도와주었다”라고 매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파국은 지난 7년간 보수 정부의 정책이 야기한 결과다. 그런데도 그 책임을 아직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묻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9·11 이후 워싱턴에 비판적 이성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넷째, 무대책은 더 심각해 보인다. 개성공단 폐쇄는 미국·일본·유엔 등 국제사회의 공조를 끌어내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지만 우리에게는 마지막 카드였다. 문제는 이후다. 한·미·일 3국의 독자 제재, 그리고 유엔 차원에서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체제가 멀쩡히 존속하고 계속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시험을 강행할 경우 어쩔 셈인가. 사드 도입은 대안이 아니다. 아주 불안한 소극적 억지 수단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핵무장? 군사행동? 이 역시 대안이 될 수 없다. 결국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분탕질만 쳐놓고 차기 정부에 미루는 것 아닌가.

국민정서나 국제적 분위기로 보아 현 단계에서 강력한 제재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제재만으로는 북한의 비핵화도, 정권 교체도 이루기 어렵다. 제재는 협상을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과 대화의 끈은 남겨두었어야 했다. 화해와 협력, 대화와 협상 이외에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박 대통령은 현 국면을 심각한 국가 안보의 위기로 규정하고 국민의 단합을 호소했다. “우리 내부로 칼끝을 돌리고, 내부를 분열시키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동의하기 어려운 발언이다. 전쟁이 발생하면 우리는 단결해야 한다. 그러나 그 순간까지는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다. 그것만이 전쟁을 막는 최선의 민주적 대안이기 때문이다. 2003년 9·11 여파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에 비판적 이성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면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막을 수 있었다. 걷잡을 수 없는 분노, 맹목적 애국심, 집단주의적 사고가 그 잘못된 전쟁의 원인이었다.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기자명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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