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미국에 유학을 가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 수와 그 출신국의 교육 경쟁력은 별 상관이 없다.

‘글로벌 인재도 중국에 밀린다’(세계일보)  ‘서울대 글로벌 인재 빨간불’(국민일보), ‘중국에 추월… 어쩌다가’(SBS) ‘서울대, 미 박사 배출 1위 뺏겨’(서울신문)
지난 7월21일과 국내 언론이 쏟아낸 기사 제목이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이 2006년 미국 소재 대학에서 박사를 딴 사람의 출신 학부 대학을 조사해봤더니 중국 칭화 대학 출신이 571명으로 1위를 차지했고 서울대가 393명으로 4위를 기록했다. 2위는 베이징 대학(중국, 507명), 3위는 UC버클리 대학(미국, 427명)이었다.
 

 

이 내용이 7월21일 발표되자 국내 언론은 들끓었다. 과거 순위 조사에서 서울대는 중국 대학보다 앞섰기 때문이다. 그동안 서울대는 ‘미국 대학이 아니면서 미국 박사학위를 가장 많이 따는’ 대학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최근 2~3년간 중국 대학의 도약이 두드러져 2004년부터 중국 칭화 대학이 서울대를 앞질렀다.

이 자료를 분석한 국내 언론 보도를 읽으면 우리 교육에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교육은 암담한 상황으로 보인다”(세계일보)라든지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글로벌 인재’ 확보 전략 수립이 시급하다”(서울경제)라고 채찍질했다. 서울대 순위가 내려간 원인으로 서울대 입학정원 감소를 언급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 이공계 기피 현상 등에 무게중심을 뒀다. ‘연구인력에 대한 병역 혜택 감소’(한국경제)를 꼽은 경우도 있다.

과연 그럴까. 이 통계에는 함정이 있다. 과거 자료를 한번 더 찬찬히 따져보면 이번 조사 결과를 놓고 ‘글로벌 인재 양성’이라든지 ‘이공계 기피 현상’과 연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만약 이공계 기피 현상에 따라 서울대 출신 미국 박사학위 취득자가 줄었다면, 서울대 외에 다른 한국 대학에서도 같은 효과가 발생해야 한다. 하지만 연세대 학부 졸업생 가운데 2006년 미국 박사 취득자 수는 193명으로 12년 전인 1994년 203명에 비해 큰 차이가 없다.

한국 대학 전체 현황을 보면 ‘이공계 기피 현상 원인론’이 설득력 없음이 잘 드러난다. 1999년 미국 박사학위 취득자 가운데 한국 소재 대학 학부 출신은 1017명이었다. 올해 발표된 조사(2006년 취득자)에서 이 수치는 도리어 1219명으로 늘어났다. 한국 사회에 이공계 기피 현상이 퍼지는 것은 분명히 짚어야 할 문제이지만, 이것과 미국 박사학위 취득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럼 왜 서울대만 순위가 떨어진 걸까? 일부 언론이 간단히 언급한 것처럼, 가장 큰 원인은 서울대 정원 구조 변화다. 1995년 서울대 입학생은 5045명이었다. 1980년대에는 6000명에 달한 적도 있다. 하지만 입학정원이 꾸준히 줄어들자(2005년 3247명) 졸업생도 따라 감소해서 올해 2월 학부 졸업생(전기) 수는 3187명이었다. 반면 서울대 대학원은 강화됐다. 1990년도 서울대 박사 졸업생(전·후기)이 512명이었지만 2008년도 서울대 박사 졸업생(전·후기)은 991명에 이르렀다. 학부생은 주는데, 대학원생이 늘어나게 되면, 당연히 미국으로 박사를 따러 가는 사람도 줄어든다.

서울대 출신 미국 박사, 오히려 증가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서울대 출신 미국 학위 취득자가 줄어든 것도 아니다. 1994년 638명에 비하면 2006년 393명은 크게 줄어든 것이 맞다. 하지만 1999년~2005년에는 연평균 313명 정도였다. 최근에는 되레 늘어난 것이다.

물론 칭화 대학이나 베이징 대학과 같이 중국 대학 학부 출신자가 미국 대학원에 왕성하게 진출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중국 내부 사정과 관련이 깊다. 최근 몇 년간 중국 대학생 사이에 박사학위 취득 붐이 일어났다. 대학당 박사학위 취득자 수가 1995년 68명에서 2005년 425명으로 무려 7배나 늘어났다. 중국의 높은 교육 열기가 중국 내 박사뿐만 아니라 해외 대학 박사학위 취득으로 연결됐다고 볼 수 있다.
 

 

근본적으로 미국 박사학위 취득자 수를 대학경쟁력이나 국가 교육 수준의 지표로 삼는 전제 자체에 논리적 결함이 있다. 미국 대학 학위 취득자를 많이 배출하는 비(非)미국 대학을 보면 개발도상국(중국·인도·타이·터키)이거나 지리적 인접국(캐나다)이다. 중국 명문대의 정원은 3000명가량으로 서울대보다 적지만, 경제 개방을 한 지 20년 남짓한 중국 처지에서 선진 기술을 배울 필요가 있다.
일본 도쿄 대학이나 홍콩 대학, 교토 대학, 싱가포르 국립대학 등은 미국 박사학위 취득자 수가 적지만 세계 대학 평가 순위에서 오히려 서울대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받았다. 역설적으로 그 대학의 국제경쟁력이 올라갈수록 미국 대학 박사학위 취득자 수는 떨어진다. 미국 박사 학위 취득은 올림픽 금메달 경쟁이 아니다.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깝지도 않고, 1인당 GDP 2만 달러가 넘는 나라의 대학이면서, 세계 대학 순위 50위권에 속할 정도로 경쟁력을 갖춘 서울대가 여전히 미국 박사학위 취득자를 양성하는 ‘보육 대학’(feed school)로 남은 것은 오히려 기이한 경우다.

지난 10년간 미국 박사학위 취득자 누계 통계를 보면 서울대는 미국의 UC 버클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비미국 대학 가운데는 여전히 1위다. 서울대 출신이 미국 대학 박사학위를 얻으려는 이유 가운데는 미국 박사를 우대하는 학계의 풍토와 관련이 깊다.

서울대의 경우 교수진 대다수가 미국 박사학위 출신이다. 선진 기술 습득이라는 명분이 다소 떨어지는 사회과학 분야의 경우도 90% 정도가 미국 박사 출신이다. 반면 도쿄 대학은 미국 박사 출신 교수 비율이 2004년 기준 3.3%에 지나지 않았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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