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시계로는 2월이 연말이고 삼일절이 새해 첫날이다. 수많은 사람이 떠나고 들어오고 옮아가고 보낸다. 교사들은 이른바 ‘문제아’를 만날까 봐, 부모들은 ‘나쁜’ 선생님을 만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시간이다. 그 와중에서 현 교육 시스템에 대한 절망과 교육 현실에 잘 적응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 동시에 일어나는 때다.

한국 교육이 문제투성이라는 것에 합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이면 족하지만 나와 내 가족의 이해관계가 걸릴 때의 선택과 판단은 제 논에 물대기이거나, 높이 매달린 포도를 대하는 여우의 체념에 가깝다.

개인의 조화로운 성장, 교육의 공공성, 혹은 국가의 교육 경쟁력 등 어느 조건을 대입해서 따지고 보아도 개혁해야 할 것들은 걸음마다 발부리에 차인다. 문제는 잘못된 것임을 알지만 익숙한 것들은 늘 알맞게 편안하다는 데 있다.

교육을 개혁하는 일은 정책이나 예산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교육이라고 이름 지어주었던 관행과 문화와의 싸움이다. 이 ‘교육적 폭력’은 이론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우리 속에 고정관념과 습관으로 집요하게 존재하는 내적 보수성이다. 이것은 독재 권력보다도 더 힘이 세다.

1980년대 전교생 100명 남짓한 작은 시골 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선배 교사와 크게 부딪친 일이 있었다. 시작은 이름표 때문이었다. 그때는 학년마다 다른 색깔로 아이들이 이름표를 차야 했고, 아침마다 등교하는 학생들의 이름표와 복장을 주번 선생님과 학생이 검사하던 시절이다. 이름표를 달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린 아이들이 교사에게 무차별 폭력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어느 날, 우리 서로 모르는 이름이 없는데 왜 이름표가 필요하며, 그게 그렇게 엄청난 체벌을 당해야 하는 일이냐고 큰 용기를 내어 따졌다. 그때 그 선배 교사의 기막혀하는 눈빛과 말투가 잊히지 않는다. 결론은 ‘학생이 이름표를 안 차면 어떻게 학생이냐?’는 것이다. 그분 생각 속에서 이름표는 그 기능과 역할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신성한 교육적 우상이었다. 이와 비슷한 갈등은 교직 생활 내내 반복되었다.

ⓒ박해성 그림

또 하나는 2009년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의 공청회 때 기억이다. 말미에 청중석에서 앳된 여고생이 마이크를 잡았다. 수업시간에 천부인권설을 주장한 사람을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존 로크라는 정치철학자의 이름을 답하지 못한 자기네 반 학생들이 매를 맞았다는 것이다. 천부인권의 뜻보다는 암기와 정답이 더 중요한 이상한 수업임에도 문제는 선생님과 아이들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때 그 교육의 어불성설, 지금 다 사라졌을까

주변에서 일어나는 온갖 교육적 현상들의 의미나 행위에 대해 되묻지 않고 무심코 지낼 때 일어나는 이러한 교육의 어불성설은 지금은 과연 다 사라졌을까?

땡볕 운동장 애국조회에서 발휘되던 아름다운 인내심, 귀 밑 3㎝의 단정한 두발,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웃어른의 뜻에 순응하는 예절 바른 학생과 교사, 매질을 아끼지 않는 교사의 교육적 열정과 이를 향한 칭송, 촌지와 치맛바람으로 상징되던 부모의 자식 사랑, 육성회비와 급식비를 성실하게 납부하던 의무교육 등 지금은 사라져가는, 한때 정당하게 드높았던 교육적 가치들은 지금 눈으로 보면 어떠한가?

사소하지 않은 관행들을 사소하게 넘겨버릴 때 우리 교육 또한 사소해지고 만다. 우리 주변에서 교육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수많은 관행과 폭력들을 직시해야 하는 시간이다. 3월 한 달에 학생을 휘어잡지 않으면 1년 내내 고생이라는 교사의 고정관념, 과도한 조바심과 불안감이 부르는 학부모들의 3월 ‘몰빵’ 사교육 등 아이들과 교육을 짓누르는 수많은 생각과 관행에 대해 ‘다시 보기’를 해야 할 때다.

다르게 보기는 당연히 불편하고 어렵다. 더 큰 질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교육적 혼란과 무질서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익숙하기 때문에 집요하게 존속하는 교육적 폭력을 낯설게 보는 힘, 그리고 모두의 아이를 함께 키우겠다는 ‘옆집 아줌마 아저씨’들의 저항과 다짐이 없는 한, 무소불위의 대한민국 교육문화 권력은 결코 칼자루를 놓지 않을 것이다.

기자명 안순억 (성남 운중초등학교 교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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