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라는 영화감독이 있어.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를 주로 만드는 분인데 이분의 영화에는 “왠지 찜찜하다”는 평이 따라. 그 찜찜함의 이유는 다름 아니라 아빠를 비롯한 어른들이 다 가지고 있지만 평소엔 숨기고 사는 얄팍한 마음, 음흉한 욕심, 유치한 속셈 등을 기가 막히게 끄집어내 펼쳐 보이기 때문이야. 이분의 영화 가운데 유명한 대사 하나가 있어. “우리, 인간 되기도 어렵지만 괴물은 되지 말자.”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이 말을 누구로부터 듣기도 하고 누구에겐가 쏘아붙이기도 해. 쉽게 말하면 그는, 또는 우리는 인간과 괴물 그 사이에서 어중간하게 서 있는 존재지. 괴물이 될 수도 있고 인간이 될 수도 있는.

격동의 한국 현대사에서 이른바 ‘결정적인 순간’은 열 명의 손가락을 모두 동원해도 모자랄 만큼 많았지만 그 가운데 생각할수록 뼈아프고 곱씹을수록 입맛이 쓴 사건 하나를 들자면 아빠는 ‘반민특위(反民特委)’의 와해를 들고 싶어. 반민특위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준말이야.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앞잡이로 동포를 때려잡았던 사람들, 일제와 손을 잡고 동포들을 괴롭히고 착취해서 그 돈으로 배 두드리며 산 사람들, ‘천황 폐하 만세’ 부르면서 애꿎은 조선 청년들을 전선으로 내몬 사람들을 단죄하고자 만든 특별 기구였지. 식민지를 겪은 나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고, 여러 명의 ‘친일파’가 끌려와서 반민특위 법정에 서게 된단다. 그런데 이 사실을 몹시도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어.

ⓒ위키백과1949년 반민특위 재판 모습. 반민특위는 친일파를 단죄하기 위해 만든 특별 기구였으나 1949년 6월6일 경찰의 습격을 받기까지 했다.

일단 친일파들에게야 당연히 반민특위가 눈엣가시였겠지. 그리고 친일파들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이자 우군으로 삼고 있던 이승만 대통령도 반민특위와 각을 세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민특위의 친일파 척결 작업은 성큼성큼 진행됐지. 일제강점기에 백화점 주인이었던 박흥식도 잡혀왔고, ‘조선이 낳은 천재’로 찬양되던 작가로 2·8 독립선언문을 썼던 춘원 이광수도 끌려왔어. 그 가운데 가장 악질의 친일파라면 아마 노덕술이라는 사람일 거야. 친일 경찰의 핵심이었고 너도 봤던 영화 〈암살〉에 등장하는 밀양 사람 약산 김원봉을 빨갱이로 몰아 체포했던 사람이야. 이 사람은 당시 대한민국 고위층의 비호를 받으며 숨어 있다가 반민특위에 덜미가 잡히지. 그런데 노덕술 체포 작전 다음 날 전혀 뜻밖의 ‘위인’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단다. 이름은 백민태.

이 사람의 행적은 사실 분명하지 않아. 일제 때 중국에서 항일투쟁에 가담했다는 백민태는 주로 암살과 파괴 등의 전문가였던 것 같아. 해방된 뒤에는 정치 깡패의 원조라 할 김두한과도 친교가 있었다. 우익들이 좌익으로 몰았던 몽양 여운형의 집을 폭파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지. 요즘 말로 ‘일베 출신 테러리스트’라면 이해가 가겠지? 친일 경찰들은, 빨갱이라면 이를 갈고 사람 죽이는 솜씨도 탁월한 백민태를 자신들의 음모에 끌어들이게 돼. “자네 나라를 위해 큰일 한번 하게.” 수도청, 즉 오늘날 서울시경찰청 수사과장 최란수가 백민태에게 속삭인 말은 산전수전 다 겪은 백민태조차 귀를 의심케 만들었단다.

반민특위법 막으려던 경찰의 악질적인 제안

“반민특위법을 강경하게 주장하는 국회의원 가운데 가장 악질적인(?) 의원 3인을 납치해서 사퇴서를 3통 쓰게 한 후 대통령과 국회의장과 언론사에게 보내고 그들을 38선 모처로 끌고 오기만 하면 돼. 우리가 손을 써서 처치한 다음 월북하다가 적발돼 총살당한 걸로 꾸밀 거야.”

경찰로부터 돈을 받아 쓰며 경찰의 하수인 노릇을 해왔던, 가끔 경찰이 손대기 어려운 은밀하고 지저분한 일도 했을 백민태지만 고민에 휩싸이게 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과연 내가 이 일을 해도 되는가. 아무리 경찰에서 돈 빌어먹고 사는 처지라 해도 한때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싸운 내가 친일파 경찰들을 위해서 이런 짓까지 해야 하는가. 결국 백민태는 양심을 선택해. 친일파 경찰들의 음모를 폭로해버린 거야.

ⓒ위키백과친일 경찰의 대명사였던 노덕술. 고위층의 비호를 받던 그는 반민특위에 덜미가 잡혔다.

법정에서 백민태는 자신에게 ‘배신자’라고 욕설을 퍼붓는 경찰에게 이렇게 대답해. “감정이란 단 한 가지 있죠. 그건 당신에게 신세를 졌다는 감정입니다.” 그러나 곧 낯빛을 바꿔서 호통을 쳐. “우리의 나라가 기반을 튼튼히 하려는 때 이런 일을 한다는 건 민족을 배반하는 짓이니 왜놈들에게 상장을 받기보다 민족에게서 죄를 받는 걸 영광으로 아시오.” 경찰의 돈을 받으며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고 살던 ‘괴물’이 찬연하고도 존엄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지. 백민태가 “인생 뭐 있어. 돈이나 두둑이 받아서 잘 먹고 잘살면 되지”라고 눈을 감았다면, “저 사람들은 빨갱이들이라니까!” 하면서 스스로를 합리화했다면 그는 국회의원들을 납치해서 38선으로 끌고 올라갔을 거야. 즉 괴물이 될 수 있었던 거지.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는 인간으로 남아. “나는 내 나름대로 민족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이 ‘인간’의 일격을 받은 ‘괴물’들은 백민태 같은 이들을 제치고 직접 행동에 나섰어. 1949년 6월6일 경찰 병력이 반민특위를 공격했고 반민특위는 재기 불능의 타격을 입었단다. 괴물들의 승리였지. 그러나 우리는 괴물들의 승전가 속에 묻혀버리기 쉬운 한 인간의 양심의 외침을 기억해야 해. 더 이상 추할 수 없고 더 악해질 데도 없고 그보다 더 비겁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지만 차마 그런 괴물이 되기는 싫어서 힘겹고 외로운 인간의 길을 택한 이들도 있었다는 사실과 함께 말이야.

그런데 2016년 벽두부터 아빠는 처음에는 꽤 괜찮은 ‘인간’의 범주에 들었다가 전혀 딴판의 길로 접어들어버린 이 얘기에 쓰디쓴 입맛을 다셔야 했구나. 한때 사람 목숨을 무시로 빼앗은 사이비 종교 집단에 맞서서 카메라를 돌렸고, 누구도 감히 손대기 싫어하는 아이템을 서슴없이 선택해 사회에 경종을 울렸던 용감한 PD가 있었어. “인간이 존재하고 사회가 존재하는 한 시사 고발 프로그램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라고 기염을 토할 때 그는 정말로 본받고 싶은 PD였고 멋있는 ‘인간’이었어. 근데 그러던 분이 지상파 방송사 간부가 돼서 “노동조합 파업의 후견인인데, 후견인은 증거가 남지를 않는다. 그런데 가만 놔두면 안 되겠다 싶어가지고 (증거도 없이) 해고를 시킨 것이다”라면서, 자기 후배들을 증거도 없이 잘랐다고 무용담을 늘어놓고 다니게 될 줄 누가 알았겠니. 놀랍게도 한때 “시사 고발 프로그램이 놓아서는 안 되는 조건은 바로 공정하고 엄정한 증거입니다”라고 강조하던 바로 그 입으로 말이야.

이런 부당 해고의 희생양이 된 후배들이 도대체 왜 나를 잘랐느냐고 물을 때 몇 해 전만 해도 거리낌 없이 사회의 타락을 규탄하던 그의 유장한 입은 굳게 닫히고 말았단다. 그가 그렇게 변한 세월 동안 그에게 시사 고발 프로그램 PD로 명성을 안겨준 프로그램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프로그램으로 전락했고 “그 프로그램만은 믿을 수 있다”라고 했던 대중의 신뢰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구나.

권력이라는 이름의 좀비에 물린 것인지 황금으로 된 메두사와 키스한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 왕년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돌아와 세상 앞에 선 그분의 모습을 보며 아빠는 그저 힘없이 홍상수 감독님의 명제를 되씹을 뿐이야. “인간 되기도 힘들지만 괴물은 되지 말아야겠다.” 이 쉬워 보이는 명제가 현실에서는 가장 어려운 명제인지도 모르겠다만.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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