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얘 일베해요!” 시작부터 수업받기 싫은 기색을 보이던 아이가 기어이 강수를 던졌다. 아이들은 소란을 피울 생각에 들떠 있었다. 앞다퉈 서로를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유저로 가리켰다.

아이들은 ‘일베 드립’을 싫어할 것으로 보이는 선생들만 골렸다. 주로 남학생반 수업에 들어간 여선생들이었다. 한 선생은 “수업 중에 애들이 자꾸 ‘오뎅’ 얘기하고, ‘노무노무’ 그러는데 뭔지 나중에 알았잖아요”라며 기가 막혀 했다. 다른 선생은 “일베는 나쁜 거야”라고 한마디 했다가 “샘, 전교조예요?”라는 항의를 들었다. 간혹 같은 일베 유저로서 아이들과 함께 ‘민주화’ 드립을 쳤다는 어떤 선생의 일화도 전설처럼 들려왔다. 일베하는 아이들이 의외로 모범생이고 공부도 잘하는 친구들이더라는 소문도 따라왔다.

일베 ‘헤비 유저’로 지목당한 아이도 그랬다. 수업 태도 좋은 우등생이고 어른에게 순종적인 아이였다. 아이가 제 발로 교무실로 찾아와 “선생님, 제가 일베한다고 해서 충격받으셨어요?” 하고 물었다. “나는 잘 몰라. 그거 재미있어?” “배울 게 많아요. 교과서에서 안 가르쳐주는 것도 많이 알려주고요.” “그렇구나, 그런데 사람들은 왜 나쁘다고 할까?” “이상한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닌데요, 공부 잘하고 착한데 일베하는 애들도 많아요. 그런 애들은 착하게 일베하니까 괜찮은 거 아니에요?” “착하게 일베 하는 게 뭐야?” “역사 같은 것도 배우고, 정치 같은 거, 너무 심한 거는 안 보고….” 모르던 지식을 배우고 있으니 일베가 해가 되지 않는다는 해명이었다. 또래들은 모르고 어른들도 가르치지 않는 역사를 배운다는 걸 특별하게 여기는 듯했다.

한 아이의 특이 사례가 아니다. 경기도교육연구원에서 발간한 보고서 ‘중·고등학생의 맹목적 극단주의 성향에 대한 연구-일베 현상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성적이 ‘상’인 학생이 ‘일베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20.9%에 달한다. 이에 비해 성적이 ‘하’인 경우 같은 항목에 답한 학생이 8.9%에 불과하다. 성적 높은 아이들이 인정 욕구가 높은 경우도 많으니 자신만이 알고 있는 지식이 많을수록 특별하다고 느낄 법도 하다.

일베는 자극적인 소재로 몰입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 그럴싸한 출처를 붙여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고 설명해왔다. 아이가 부지런을 떨며 출처의 편향성을 지적해내고, 다양한 관점의 역사를 배우면 좋겠지만, 수험 생활에 치여 머리 식히려 하는 일에 그 정도의 정성을 기울일 리는 없다.

ⓒ박해성 그림

“일베를 하는 아이들이 아는 것도 많아 보이고, 학교에서 당당하게 말도 잘하니까” 멋져 보인다고 조심스럽게 털어놓는 아이들도 있었다. 일베하는 아이를 ‘저렇게 똑똑하니 일베도 할 수 있다’며 특별하게 보기도 한다. “일베하는 애가 샘을 말발로 발라버렸다”라면서 무용담을 전하기도 했다.

일베가 우등생의 상징이라고?

또래와 다른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으스대고 싶은 마음을 어찌 이해하지 못할까. ‘어른들이 나쁘게 생각하는 것을 알지만 해보면 나쁘지 않은 것’의 목록에서 만년 1등이던 ‘흡연’ 항목에 ‘일베’도 나란히 이름을 올린 것 같았다. 다만 흡연이 일진으로 가는 길, 즉 탈선의 상징이라면 일베는 우등생의 상징 정도가 될 터였다. 이들이 공동체가 걸어온 발자취를 존중하지 않는 지식을 갖는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다.

고등학교의 정규 교육과정에는 역사 교육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역사 교과서가 근현대사에 적은 양을 할애하고 있는 실정을 생각하면 암담해진다. 게다가 “이미 다 아는 것”을 다시 배운다고 할 때 아이들이 보이는 거부감, 그리고 일베보다 재미있지도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은 서사에 아이들의 흥미를 붙잡는 것 등이 또 다른 문제다.

일베 문제를 아이들의 한때의 유행이려니 하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하면 한없이 사소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식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청소년들에게는 어떤 지식도 사소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기자명 해달 (필명·대입 학원 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