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 다가오면 야당은 탈당과 창당, 합당 움직임으로 분주하다. 그리고 선거일 직전까지 후보 단일화를 위해 협상을 벌이곤 한다. 한국 정치의 후진적 양상을 드러내는 것으로, 선진국에서는 이해할 수도 없고 보기도 힘든 특이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정권교체를 기적으로 여기게 만들어버린 것은 이러한 야권 분열 탓이다.

야당 탓만은 아니다. 구조적인 원인이 더 크다. 즉 소선거구제, 결선투표가 없는 대통령 선거제도, 지역구도, 공정하지 않은 언론, 견고한 여권 성향의 유권자층 등이다. 또한 야권 성향 유권자의 투표율이 낮은 반면 여권 성향 유권자의 투표율은 높다. 야당에게 불리한 여건뿐이다.

이 가운데 소선거구제의 경우, 제1야당이 원하는 측면도 있다. 한 선거구에서 1명만이 당선되는 소선거구 제도에서는, 제3당 후보의 당선이 거의 불가능하다. 즉, 소선거구제는 제1야당에게 일종의 제도적 안전장치로 작동하게 된다. 이 제도는 야당의 분열을 유도하는 기능도 갖고 있다. 누가 당권을 쥐고 공천권을 행사하는지가, 해당 정당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당 정치인들은 당권과 공천권에 몰두하다가 여의치 않으면 정치 이념이나 정책 문제와는 상관없이 탈당을 서슴지 않는다.

야당 정치인의 경우, 이처럼 정치공학적 계산에 너무 바쁘다 보니 정책 수립에 투입할 시간이 많지 않다. 정치·경제·사회·외교·국방·교육·인구 감소·남북관계 등 절박한 현안들이 산적한데도, 정강·정책에 대한 토론과 보완은 대통령 선거공약집 만들 때나 필요할 뿐이다. 오히려 정체성을 희석해서 지지층을 확대하려고 계산하는 것처럼 보인다. 뜬금없이 ‘이승만 국부론’을 펼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국민의당에서는 벌써부터 ‘안철수 사당화’를 둘러싼 내분이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의 패권정치를 비판하고 탈당했지만 결국 국민의당 내부에서도 당권을 둘러싼 싸움이 불가피할 것이다. 또한 야권 전체로 봐도, 문재인 대 안철수의 반목으로 갈라진 데다, 패배가 뻔해도 상대 야당보다 우위에 서는 것을 목표로 삼기 쉬워 선거 연대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국민의당 출현이 부정적 역할만 한 것은 아니다. 정체에 빠져 있던 더불어민주당으로 하여금 새 인물을 영입하고 당 이미지를 쇄신하게 만들었다. 왜 진작, 그리고 상시적으로 이런 개혁을 추진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힘들지 않은 당 개명은 재빨리 처리한 데 비해 정작 중요한 당의 정책 개발과 인물 영입에는 눈을 감아왔다. 그 원인이 문재인 대표 능력의 한계 때문인지 친노의 패권정치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문제다. 또한 더불어민주당은 광주·호남 지역 유권자의 지역 국회의원 ‘물갈이’ 요구를 외면해 지지 기반을 잃을 위험에 스스로를 밀어넣었다. 어떻게 하든 호남인들이 야당을 지지할 것이라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직접 경험한 광주·호남 유권자의 정치적 지향점과 소망을 여타 지역과 대동소이한 것으로 판단한 과오가 있었다.

절박하고 산적한 현안을 해결할 수단은 그래도 정치뿐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여당은 대통령 지시가 떨어지면 일렬종대로 줄을 맞추어 선다. 불응하면 불이익 이상의 압박이 기다리고 있지만, 순응하면 공기업 임원 자리라도 하나 받는 반대급부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당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집권 10년을 제외하면 그 구성원들이 누릴 수 있는 권력의 총량이 항상 부족했다.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내부투쟁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지 못하면 실직자로 전락하게 된다. 이 행동양식이 체질화되었다.

이로 인해 야권 정치인들은 내부투쟁과 국회의원직 유지에만 골몰하게 되었다. 정말 정권교체가 가능하려면, 여당을 압도하는 정책적 대안 제시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만한 여유가 없는 것이다. 4월 총선에서 어느 당이 제1야당이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제1야당 역시 인재 영입이나 정책 개발은 뒤로 미루고, 대통령 선거전을 향해 다시 시작되는 이합집산에 휘말릴 것이다. 이런 수준의 야당 정치는 합리적 유권자를 야당 지지자로 만들지 못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4월 총선에서 야당은 승리보다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유권자들이 전략적 선택을 하더라도 승패의 격차가 미미한 과거의 사례로 볼 때 서울의 48개 선거구를 포함한 수도권에서 야권 후보 당선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절박하고 산적한 사회적 현안을 해결할 수단은 정치밖에 없다. 정치를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기자명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