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 (FILM2.0 편집위원·영화평론가)
딸아이가 급히 입원해 수술을 해야 했던 터, 지난 3주간 우리 가족은 서울시내 한 유명 대학병원 입원실을 집 삼아 지냈다. 뭐 병원 입원실이라는 게 VIP용 초특급 병실이 아닌 이상 불편하고 불만스럽기 이루 말할 수 없는 곳이긴 하지만, 흥미롭게도 내 딸이 입원했던 병원에서 우리가 느낀 ‘불편 제1호’는 입원실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먼저 우리에게 다가온 문제는 바로 이것, 의사와 간호사, 곧 의료체계 내에서 각기 다른 구역과 직종으로 나뉘어 있는 분야 간 의사소통 불능이었다.

같은 조직에서 일하는 그들이라면 의사가 이렇게 말한 게 저쪽 방 간호사 귀에도 쏙쏙 들어가야 하고, 간호사가 이렇게 말한 게 건너 건너쪽 방 의사 귀에도 쏙쏙 들어가야 할 것을, 이 병원은 도무지 그렇지가 못했으니 명색이 환자 가족인 내가 이 의사가 말한 걸 저 간호사에게 말하고, 저 간호사가 말한 걸 이 의사에게 말하는 메신저 노릇까지 톡톡히 해내야 했던 것이다. 게다가 입원실에서는 의사와 간호사 간 알력이 환자 앞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졌으니, 의사가 “김 간호사님, 거즈 좀 더 가져올래요?”라고 말하면 간호사 왈 “제가 지시받은 거즈의 양은 지금 이것이 맞습니다. 더 필요하시면 직접 가져다 쓰세요” 하는 식이었다.

문제는 ‘틈’이었다. 제각각 제 조직의 자존심과 권위를 먼저 지키려는 뜻이야 꼭 나쁘다 할 것만은 아니지만, 그러다 점점 벌어지는 틈에 누군가 빠져 허우적댄다면 대체 그 사태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담당의사 방에서 처치실로, 처치실에서 엑스레이 촬영실로, 또 촬영실에서 병동으로 딸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동안 우리 가족은 도대체 내 딸이 얼마만큼 약물을 투여받아야 하는 건지, 이걸 먼저 하는 건지 저걸 먼저 하는 건지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었으며, 간호사는 자기들끼리 우왕좌왕하느라 바빴다. 그러느라 지체되고 서로 눈 흘긴 시간도 적지 않았으니, 그들 사이의 빈틈이 메워진 어느 날 이곳을 찾았더라면 우리도 기분 좋고, 그들도 사이 좋고, 환자도 더 많이 치유될 천국이 거기에 있었으리라.그러고 보니 요놈의 틈이란 것은 영화라는 매체에서도 기본 본능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따지고 보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도 틈에 관한 영화니, 극중 송강호·정우성·이병헌이 맡은 세 남자 캐릭터는 서로의 빈틈을 찾아 총질을 해대고, 급기야 이 빈틈 찾기 내러티브와 클라이맥스 이미지는 영화 전체의 대주제가 되어 관객을 향해 날아간다.

ⓒ난나 그림
점점 더 많은 틈을 만드는 대한민국 정부

한 아낙네가 베트남 전쟁 당시 최악의 전장에서 전투 중이던 남편을 향해 달려간다는 내용의 〈님은 먼 곳에〉 역시 도무지 뚫고 지나갈 수 없던 베트남 곳곳을 ‘위문 밴드’라는 틈새 송곳을 활용해 비집어 들어가며 그 참상을 바라보고, 〈크로싱〉은 북한과 몽골·중국 그리고 남북 간 빈틈에 관한 영화이며, 안티 영웅의 대명사 〈핸콕〉의 핸콕은 자기 마음의 틈새를 메우고, 〈원티드〉의 휘어져 발사되는 총알은 사각지대에 놓인 타깃과 권총 간 틈새를 보완하는 데서 그 기본 아이디어를 얻어낸 작품이다.틈이 있는 곳에 천국도 있고 지옥도 있다. 틈을 어떻게 메울 것이냐, 그 틈은 점점 더 벌어질 틈인가, 아니면 곧 메울 수 있는 틈인가. 문제는 그것이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도, 경제 파탄 위기도, 일본의 독도 영유권 문제도 나에게는 다 틈으로 보인다. 점점 더 많은 틈을 보이는 데만 급급한 듯한 대한민국 정부. 대체 이 많은 틈은 다 누가 메워줄 것인가.

기자명 이지훈 (FILM2.0 편집위원·영화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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