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시아에 더 이상 신기할 것이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때 카트만두를 만났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의 구시가는 거미줄처럼 복잡하고 좁다란 도로 양편으로 상가 건물이 빽빽이 늘어서 있다. 우리나라 구도심 골목을 닮았지만 카트만두 거리의 폭이 더 좁고 건물이 촘촘해서 수직 느낌이 훨씬 강하다. 2층 3층 창문에도 예쁜 공예품이나 옷가지를 전시해놓기 때문에 카트만두 구시가를 거닐 때에는 항상 멍하니 입을 벌린 채 45° 위쪽을 바라보는 모양새가 된다.

좁은 골목과 둥근 교차로를 차례로 지나 두르바르 광장(왕궁 광장)을 만나게 되면 갑자기 마음이 넓어지며 슬며시 미소가 떠오른다. 벽돌과 나무로 만들어 독특한 풍미를 내는 사원과 제단, 왕궁이 그다지 넓지 않은 광장을 꽉 차게 두르고 있어서 푸근한 느낌을 준다. 광장 출입 매표소가 있지만 아무도 표를 사지 않는 풍경에서 네팔 특유의 느긋함도 느낄 수 있다(안타깝게도 네팔 대지진으로 옛 풍경 일부가 사라졌다). 발걸음을 돌려 카트만두의 여행자 거리인 타멜 스트리트에 다다르면 골목 좌우로 빼곡히 들어선 전통의 여행자 식당과 빵집, 아웃도어 용품 가게가 여행의 흥분을 잔잔히 고조시킨다. 타멜 거리를 5분만 걸으면 네팔과 카트만두에서 여행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이해할 수 있고, 반세기 전 히피 여행자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거리의 역사가 눈앞에 펼쳐진다.

문화란 사회적 기능을 하는 유·무형의 요소다. 작은 생활용품에서 시작해 종교 의식과 교리, 건축과 미술 양식, 마을과 도시의 설계에 이르는 모든 문화적 유전자는 “이것의 기능은 무엇일까?”라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호기심은 이국 문화와 고국 문화 양쪽에 대한 통찰을 낳는다. 카트만두 두르바르 광장은 도시 공동체의 구성원이 강한 애착을 가지고 수시로 향유하는, 북적거리는 문화 중심지의 기능을 깨닫게 해주며, 동시에 우리나라의 여러 도시가 삭막하게 느껴지는 것이 공동체적 문화 공간이 없어서는 아닌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Wikipedia대지진이 일어나기 전 네팔 수도 카트만두의 두르바르 광장. 벽돌과 나무로 만든 사원이 넓지 않은 광장을 꽉 차게 두르고 있어서 푸근한 느낌을 준다.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공동체의 복지를 증진시키고 문명 진화를 촉진할 다양한 대안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인류는 항상 문화적 접촉과 교류를 통해 새로운 발명품, 새로운 지식과 이론, 새로운 사회제도를 창조해왔다. 피카소는 아프리카의 공예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입체파를 개창해 서구 회화에 혁명을 일으켰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는 민족적·문화적 다양성의 가치를 느낄 수 있고, 인도 펀자브에서는 근면과 봉사의 정신을 몸으로 경험할 수 있으며, 타이에서는 관용과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문화를 맛보고, 일본에서는 철저한 질서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를 경험할 수 있다. 심지어 여행지의 문화에서 장점을 읽을 수 없다면, 적어도 그곳 문화에서 안타깝게 여겨지는 부분을 통해 반면교사를 얻을 수는 있다! 여행지에서 맞닥뜨리는 이국적인 문화는 인간의 호기심과 창의성, 창조를 촉진하는 최고의 자극제이자 지적 엔터테인먼트다.

모두가 언제나 이국의 마을과 도시, 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두 가지 요소가 끼어들어 문화적 경험의 질을 좌우한다. 문화 충격과 진정성이다.

문화 충격이란 다른 문화권을 방문했을 때 “허걱! 남자가 치마를 입었다!” “이 사람들 ‘미안합니다’라는 말이 아예 없어?”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사방에 가리는 게 하나도 없는 벌판 위에서 어떻게 하라는 거지?”라는 식으로 충격을 받는 것을 뜻한다. 문화 충격은 새로운 문화 요소가 주는 당혹감, 적응해야 하는 부담감, 적응에 실패하고 있다는 무기력감 등이다.

문화 충격을 완화해 생경한 문화를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치료제는 대략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시간, 둘째는 문화 지능, 셋째는 여행자의 성격과 동기다. 먼저 시간. 고전적인 문화 충격 연구자들은 우리의 문화 충격 경험이 시간에 따라 네 단계로 전개된다고 말한다. 첫 단계에서 우리는 아직 낯선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간직하고 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낯선 문화에 대한 적대와 실망을 느끼고 고국 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하게 된다. 현지의 위생과 질서와 음식에 투덜거리는 여행자는 대충 이 단계에 와 있다. 하지만 여행 기간이 더 길다면 우리는 문화적 적응도가 향상되고 긴장감이 감소하는 세 번째 단계에 접어들 수 있다. 어떤 곳을 아예 석 달 이상 여행한다면, 현지 문화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획득하는 네 번째 단계를 체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시간은 문화 충격의 좋은 치료제라는 것이 고전적인 이론가들의 주장이다.

ⓒ연합뉴스라오스 루앙프라방의 아침 공양. 주민들이 승려들에게 밥이나 과일을 공양하는 의식이다.

반면 최근의 심리학자들은 단순한 시간 요인보다 ‘문화 지능’을 더 중시한다. 문화 지능이란 낯선 문화와 만날 때 어떤 지식과 행동이 필요한지 파악해서 익히고 실제로 적용하는 능력을 말한다. 문화 지능이 높은 사람은 “외국에 나가면 인사법이나 예절을 잘 알아야 해. 난 이번에 일본에 가니까 일본식 예절을 좀 연습해야겠어”라고 생각하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문화 지능을 갖는 법 ‘아는 만큼 보인다’

문화 지능 역시 현지에서 보내는 시간이 약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문화 지능은 우리가 여행에 나서기 전에 확보할 수 있는 자원이기도 하다. 간단한 회화를 익히고 현지 역사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을 읽고 친구들의 조언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우리의 문화 지능은 향상되고 문화 충격은 크게 줄어든다. 여행지에 흥미를 느껴서 공부하면 할수록 문화 충격은 기분 좋은 놀라움으로 바꿀 공산이 커진다.

몇몇 특수한 사람들은 여행을 오래 할 필요도 없고 여행지를 많이 공부할 필요도 없이, 타국의 문화를 그저 즐겁게 향유하기도 한다. 문화 충격에 관여하는 마지막 요인인 성격과 동기의 개인차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바로 개방성의 차이다.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고 다양성을 중시하며 이질적인 것에 관용을 보이는 특성 말이다. 개방성이 정말 높은 사람들은 이국 문화와 접촉하는 상황에서 남보다 훨씬 적은 노력으로도 훨씬 많은 만족을 느낄 수 있다.

문화 충격에 대한 최종적 정리는 이러하다. 개방성이 높은 사람은 마을과 도시에서 경험하는 낯선 문화에 주목하면 좋은 여행을 할 가능성이 높다. 개방성이 높은 사람이 문화 지능에도 신경을 쓰고 여행 기간도 길게 한다면 이 사람은 여행지와 집을 혼동할 정도로 여행지와 현지인에게 강한 애착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개방성이 낮다면 이국 문화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개방성이 낮더라도 여행을 꿈꾸고 견문과 지평을 넓히려는 욕망이 있다면, 문화 지능을 높이려 노력하고 여행 기간을 가능한 한 길게 잡도록 힘써보자. 누구 못지않은 최고의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우리가 낯선 문화를 체험할 때 느끼는 재미와 의미, 만족도에 중요한 기능을 하는 두 번째 요소는 ‘진정성’이다. 진정성은 한마디로 어떤 경험을 하면서 “이거 진짜네, 생생한데”라고 느끼는 것을 뜻한다. 반대로 “와 이거 완전 거짓부렁이잖아” 싶은 경우 만족도는 바닥을 치게 된다.

나는 함께 여행하던 미술 애호가의 손에 이끌려 라오스의 위앙짠(비엔티안)에서 골동품 가게를 둘러본 적이 있다. 그는 한 가게에서 정말 멋들어지게 생긴 100만원짜리 커다란 징을 발견했다. “이거 얼마나 오래됐어요?”라는 물음에 가게 종업원은 당황한 기색으로 징 뒷면을 흘끔 보더니 “200년 됐어요”라고 답했다. 거의 흡사한 징 세트가 다른 골동품 가게들에도 있었던 점 등 몇몇 정황이 나를 의심케 했고, 라오스에 대한 나의 부정적 이미지에 또 한 방 타격이 가해졌다.

미얀마의 인레 호수에서 수제 담배 공장 겸 가게에 들렀을 때다. 나와 일행은 미얀마 여성 다섯 명이 담배를 콩콩 찧는 모습을 구경하고 이어서 담배 호객을 잠깐 당한 뒤 타고 온 보트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그때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진 나는 가이드와 다시 담배 찧는 방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담배를 찧던 미얀마 여성 다섯 명은 그들이 앉아 있던 흔적조차 찾아보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자연스러운 현지 풍경을 가장한 ‘쇼 비즈니스’였다.

2013년 초 세 번째로 라오스 루앙프라방을 방문했을 때, 나는 드디어 이 도시의 명물인 아침 공양 의식을 볼 기회가 있었다. 루앙프라방 주민들이 동틀 녘에 길거리로 나와 길게 줄지어 앉아서, 일렬로 지나가는 승려들에게 밥이며 과일을 공양하는 의식이다. 하지만 그날 아침 내가 본 것은 거리에 나와 앉아 긴 열을 이룬 한국 사람들이었다. 관광객이 아닌 현지 주민은 스무 명 정도 있었는데, 대부분은 관광객에게 공양용 쌀이나 과일을 팔러 나왔다.

모든 우스꽝스럽고 실망스러운 해프닝에도 불구하고, 여행에서는 가짜 문화보다 진짜 문화를 만나는 경우가 훨씬 많다. 타이의 사원들은 지나치게 깔끔하게 리모델링되어 있지만, 타이의 사원 방문을 멋진 경험으로 만드는 것은 열심히 불공을 드리고 사원에 손수 금박을 입히는 타이 사람들이지 사원 자체의 역사와 고풍스러움이 아니다. 저녁이 되면 많은 현지인이 가족 단위로 찾아와 불공을 드리고 휴식을 즐기는 미얀마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 시크교도들이 하루에도 몇만 명씩 순례를 와서 사원에서 주는 공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신성한 스승들을 경배하는 인도 암리차르의 황금사원도 마찬가지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유명한 전통 공연인 레공 춤과 가믈란(울림이 아름다운 타악기를 중심으로 편성한 발리식 오케스트라) 연주는 관광객용 볼거리가 되어버린 지 오래지만, 길을 걷다 보면 골목 어귀에서 들려오곤 하는 동네 사람들의 가믈란 연주는 언제나 진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비문명’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

마지막으로 진정성과 관련된, 여행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 한 가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는 몇몇 아시아 국가에 대해 어떤 환상을 품고 있다. ‘비문명’에 대한 환상, 즉 ‘때 묻지 않은 장소’라는 환상이다. 이런 환상을 가진 사람들은 가난과 비문명의 풍경을 봐야 진정성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현지인이 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하거나 스마트폰을 쓰거나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 불편해하며, 헐벗은 아이의 눈에서 순수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나로서는, 잘살아보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순수한 가난뱅이로 만드는 짓 좀 그만했으면 좋겠고, 아이들한테 찔끔찔끔 적선해줘서 부모들이 더 잘 구걸해오라고 애들 얼굴 불로 지지는 일 좀 없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배포 크고 우람한 티베트인이나 정치에 민감하고 토론하기 좋아하는 미얀마 사람을 세상에 다시 없을 착하고 순한 사람들이라고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충 만든 환상에 넘어가지 말고 항상 열린 마음으로 직접 느껴보시라 권한다.

기자명 김명철 (심리학 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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