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타이완 깃발로 중국을 흔들다


‘귀신섬’ 청년들이 만들어낸 총통


케이팝이 빠진 민족주의의 함정

 

2016년 1월14일, 총통·입법원 동시선거를 이틀 앞둔 타이베이 분위기는 차분했다. 선거 전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한몫했다. 조사기관마다 다소 차이는 있었지만,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후보의 압승이 예상됐다. 선거 1주일 전, 9개 기관의 마지막 여론조사 평균치는 차이잉원 지지도가 44.09%로 나타나, 19.98%에 그친 국민당 주리룬(朱立倫) 후보를 24.11%포인트 차로 멀찌감치 따돌렸다. 친민당 쑹추위(宋楚瑜) 후보가 완주 의사를 밝혀, 선거 판도를 흔들 마지막 변수인 국민·친민 후보 단일화 가능성도 사라졌다. 돌발 변수가 있다면 ‘쯔위 사건’ 정도였다.

따라서 총통 선거와 동시에 치러지는 입법원(立法院) 선거에 모든 관심이 쏠렸다. ‘견제할 수 있는 힘을 달라’며 지지를 호소하는 국민당과 ‘과반 의석을 주어 제대로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민진당의 선거 구호가 맞붙었다. 친민당, 신당, 타이완 단결연맹 등 군소 정당과 더불어 시대역량, 민국당 등 신생 정당도 가세해 지지를 호소했다. 어느 정당이 원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어느 정당이 원내에 진입할지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개표 결과 차이잉원은 689만4767표(56.12%)를 얻어 381만3365표(31.04%)에 그친 주리룬을 더블스코어에 가깝게 이기며 타이완의 첫 여성 총통이 되었다.

중앙선거위원회의 당선 공식 발표와 동시에 타이완 〈빈과일보(蘋果日報·핑궈르바오)〉는 ‘첫 화인(華人) 여총통 차이잉원 광승(狂勝)’ ‘민진당 완전 집정(執政)’이라는 표제의 호외판을 배포했다. 당선 직후 ‘총통 당선자’ 신분으로 내·외신 기자회견장에 선 차이잉원은 ‘국가 단결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강조하며, ‘분열된 국론 통합’을 주문했다. 같은 시각 국민당 중앙당사에서는 주리룬이 “선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당 주석직에서 사퇴한다”라고 밝혔다. 그가 거듭 고개 숙이며 반복한 말은 ‘두이부치(對不起:죄송합니다)’와 ‘책임’이었다.

ⓒAP Photo1월16일 타이베이에서 차이잉원 타이완 총통 당선자가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상대 진영 분열 속에 단독 과반 의석 확보

‘이변은 없었다’로 요약되는 총통 선거 결과였지만, 민진당은 예상보다 많이 얻었고 국민당은 많이 잃은 것으로 평가된다. 국민당은 22개 광역지방자치단체 가운데 동부 화롄(花蓮)·타이둥(臺東)현, 중국 접경 지역인 진먼(金門)·롄장(連江)현 등 4개 현을 제외한 6개 직할시, 9개 현, 3개 시에서 모두 패했다. 입법원 선거에서도 국민당은 64석에서 35석으로 줄어든 반면, 민진당은 40석에서 68석으로 늘어나, 창당 30년 만에 첫 단독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현직 신베이(新北) 시장 주리룬은 신베이 시에서도 차이잉원에게 20.79% 차이로 패했고, 입법원 선거에서도 져서 국민당 의석이 종전 10석에서 2석으로 줄어들었다. 그가 ‘두이부치’와 ‘책임’을 거듭 말하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다.

익명을 요구한 타이완 중앙부처의 한 공무원은 선거 결과를 두고 “국민당은 단결해서 선거를 치르지 않았다. 선거운동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 주리룬은 시장직 사퇴라도 하는 결기를 보였어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았다. 민진당이 잘해서라기보다 국민당이 너무 못해서 진 선거다”라고 평했다.

사실 국민당이 옐로카드를 받은 것은 2014년 지방선거부터다. 국민당은 22개 광역지방자치단체장 중 6석을 얻는 데 그친 반면, 민진당은 13석을 얻었고, 3석은 무소속 후보에게 돌아갔다. 그중 수도 타이베이 시장을 무소속 커원저(柯文哲)에게 내준 것은 이번 선거 패배를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당시 6대 직할시장 중 주리룬만이 힘겹게 승리해 체면치레를 했을 뿐이다.

ⓒAFP주리룬을 비롯한 국민당 관계자들이 선거 참패와 관련해 지지자들에게 허리 굽혀 사과하고 있다.

유례없는 지방선거 대패 후 국민당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마잉주 주석을 비롯해 당 지도부가 일괄 사퇴했다. 차기 총통·입법원 선거를 지휘해야 할 집권당 주석직은 아무도 원치 않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결국 국민당 참패 속에서 유일하게 광역단체장 연임에 성공한 ‘선거의 왕자’ 주리룬이 ‘등 떠밀려’ 주석이 되었다.

그런데 패배의 먹구름이 짙게 깔린 국민당에서 아무도 총통 선거에 나서려 하지 않았다. 주리룬은 ‘신베이 시민들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며 몸을 사렸다. 우둔이(吳敦義) 부총통, 왕진핑(王金平) 입법원장도 손사래를 쳤다. 하오룽빈(郝龍斌)은 타이베이 시장 선거 대패로 정치 생명에 치명상을 입고 차기 대권주자 대열에서 멀어졌다.

‘집권당 총통 후보 부재’의 혼란 속에서 차이잉원에 맞설 후보로 나선 인물은 8선 관록의 훙슈주(洪秀柱) 입법원 부원장이었다. 그녀는 ‘국민당 남자들’이 뒤로 나앉을 때, 당을 구하기 위해 출사표를 던졌다. 홍슈주는 당 부주석 자리에 있었지만, 당내 비주류였다. 집안 배경과 ‘가방끈’을 중요시하는 타이완의 정치 풍토도 입지를 좁혔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중간급 사립대학인 중국문화대학과 미국 트루먼 주립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후 학교 ‘훈도(訓導)’로 일하다 정계에 입문한 그녀는 국민당 주류와 주 지지층의 외면을 받았다. 더욱이 상대 후보는 이른바 ‘엄친딸’.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국립 타이완 대학과 미국 코넬 대학을 거쳐 런던 정치경제대학(LSE)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차이잉원과 그녀는 선명하게 대비되었다. 홍슈주는 질 게 뻔히 보이는 선거에서 ‘버리는 카드’로 치부되었다. 실제 후보 선출 뒤 지지율 답보 상태가 지속되었고, 차이잉원의 압승은 시간문제로 비쳐졌다. 초조해진 국민당은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선거를 3개월 앞둔 2015년 10월17일 주리룬으로 ‘선수 교체’를 단행한 것이다. 국민당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내우 속에서 외환도 생겼다. 친민당 주석 쑹추위가 선거전에 뛰어든 것이다. 친민당 창당 전 국민당의 비서장 등을 역임한 그의 출마는 국민당 지지표 분산을 불렀다. 차이잉원의 당선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AP Photo1월14일 차이잉원의 선거 구호 ‘Light Up Taiwan’이 적힌 카드를 들고 환호하는 지지자들.

상대 진영의 분열 속에서 손쉽게 당선되고, 보너스로 첫 입법원 과반 의석까지 얻은 차이잉원은 4년 전 현 마잉주(馬英九) 총통에게 6%포인트 차이로, 6년 전 주리룬에게 5%포인트 차이로 패배한 것을 설욕했고, 5월 총통부 입성을 앞두고 있다. 이런 그녀에게서 8년 전 마잉주의 모습이 묘하게 겹친다. 천수이볜(陳水扁)의 민진당 8년 집권 기간에 경제성장률은 추락했고, 양안관계를 비롯한 대외 관계 악화 속에서 타이완의 처지는 더욱 외로워졌다. 설상가상으로 천수이볜과 일가족, 측근들의 부정부패까지 더해져 민진당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이 심각했다. 2008년 3월 국민당의 마잉주는 ‘타이완판 잃어버린 8년 심판’을 외치며 58.45% 득표를 얻어 압승했다. 같은 해 1월 총선에서 국민당은 원내 과반을 훨씬 넘긴 81석(친민당, 신당 연합공천 포함)을 얻어 입법부를 장악한 상태였다. 국민들은 타이완을 구해줄 ‘히어로’를 원하고 있었고, 준수한 외모에 하버드 로스쿨 박사, 법무부장, 타이베이 시장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커리어에 소탈한 매력까지 더한 마잉주가 적임자로 비쳐졌다.

그러나 마잉주의 ‘행복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집권 1년여 뒤인 2009년 여름 타이완을 강타한 태풍 모라꼿에 소극 대응했다는 이유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내세운 경제회생은 쉽지 않았고,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으로 대표되는 양안관계 개선 문제도 ‘지나치게 친중국적’이라는 질타를 받았다. 2012년 가까스로 재선에 성공했지만, 남은 4년은 더욱 힘들었다. 급기야 2014년 양안 간 서비스·무역개방협정 체결에 항의하는 학생시위대가 입법원을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러다 ‘마잉주와 국민당 심판’을 원하는 여론이 압도적인 지지로 차이잉원을 선택한 것이다.

차이잉원의 압도적 승리 배경에 대해 한인희 건국대 KU중국연구원 원장은 이런 분석을 내놓았다. “국민당은 집권 기간 부동산 가격 상승을 방치했고, 이는 20~30대의 민심 이반을 낳았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도 문제다. 그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고 중국도 조급함을 드러내었기에, 자칫 타이완이 중국에 흡수되는 것 아니냐는 타이완 국민들의 우려를 낳았다.”

실제로 오늘날의 타이완 국민, 그중에서도 ‘딸기족(草莓族)’이라 불리는 젊은 세대가 처한 현실은 암담하다. 수년 전 타이완판 ‘88만원 세대’인 ‘2만2000원 세대’라 불리던 이들은 이제는 ‘헬조선’에 비견되는 ‘귀도(鬼島:귀신섬) 타이완’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현실에 분노하고 있다. ‘중국인’이 아닌 ‘타이완인’으로서 의식이 강한 이들은 마잉주 정부의 대중국 정책에도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이번 선거에서 차이잉원과 민진당 그리고 2014년 ‘해바라기 운동’을 주도한 학생운동 리더들이 만든 신생 정당 ‘시대역량’에 표를 던졌다. 그 결과 민진당은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했고, 시대역량은 5석을 얻으며 원내 제3당으로 도약했다. ‘귀도 타이완’을 구해줄 새로운 주인공으로 차이잉원을 택한 것이다. 다만 4개월 뒤 ‘당선자’ 꼬리표를 뗄 그녀가 마주할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대중국 무역 의존도 40%, 양안관계 난제

우선 경제 문제다.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은 타이완 경제의 회생은 누가 총통이 되든 쉽지 않은 문제다. 마잉주 정부의 몰락을 불러온 경제 문제는 차이잉원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겨준 주요인이 되었지만, 언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 모른다. 타이완의 생존과 직결된 양안관계도 변수다. 이른바 ‘천수이볜 학습효과’로 후보 시절 양안관계 ‘현상 유지’를 표방하며 모호한 태도를 취해온 차이잉원은 총통으로 취임하는 순간부터 명확한 입장 표명과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대중국 무역 의존도가 40%에 달하는 현실에서 어떤 선택도 쉽지 않다.

민진당 당내 문제도 만만치 않다. 파벌은 민진당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왔다. 차이잉원은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당 주석과 총통이 되었지만, 당내 입지는 취약한 편이다. 벌써부터 라이칭더(賴慶德) 타이난(臺南) 시장 등은 ‘행정수도 이전’을 요구하며, 당선자를 머리 아프게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차이잉원 당선자가 해결해야 할 난제는 산적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타이완 국민들이 지나치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는 점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첫 여성 총통 차이잉원은 ‘귀도 타이완’을 구원할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기자명 타이베이·최창근 (저술가·한국외대 박사과정)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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