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사진기자단10월2일,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지난 10월2일 노란색으로 칠한 군사분계선을 넘어 육로로 평양에 도착했다. 대통령이 분단선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반세기 넘게 굳게 닫혔던 금단의 문이 열렸다는 것은 한반도 분단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2000년 정상회담을 계기로 점과 점으로 연결된 서울과 평양이 이번에는 선으로 이어짐으로서 남북의 끊겼던 혈맥이 다시 통하게 되었다. 2000년 남북 정상 간 포옹으로 적대감과 불신으로 무장했던 마음의 문이 열렸고, 2007년 정상회담으로 중화기로 대치한 분단선의 문이 열렸다.

군사분계선을 넘기 직전 노 대통령은 “이 선이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민족을 갈라놓았고 이 때문에 우리 국민은, 우리 민족은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라고 하면서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게 되면 금단의 선도 지워지고 분단의 장벽도 허물어질 것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인적 교류가 장벽 붕괴로 이어진다는 독일의 교훈을 떠올렸던 것이다. 과연 지금과 같은 분단 상황에서 노 대통령의 염원처럼 자신이 넘어간 분단선을 통해 남북한 사이에 혈류가 흐르게 되리라는 것이 생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분단선 개방은 일회성인가

한반도 군사분계선은 역사의 산물로서 20세기가 남긴 마지막 부(負)의 유산이다. 그것은 군사 대치선이자 민족 분단선이며, 사실상 남북한의 국경선이기도 하다. 군사, 이념, 정치가 중첩되어 있는 만큼 여러 주역이 개입해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 주변국의 안보이익이 걸려 있고, 북한에 채찍을 든 미국과 빵을 주려는 한국이 갈등을 빚고 있다.

그런가 하면 남한 내부에서는 친북과 반미의 대립이 격렬하다. 이처럼 분단선에 내장된 상충요소들로 인해서 남북 관계는 일진일퇴하면서도 꾸준히 발전해왔다. 서해상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났을 때도 개성공단 건설과 금강산 관광사업은 활발히 진행되었다. 대립과 협력이 혼재한 군사분계선이 노 대통령의 육로 방북을 계기로 그 실체가 드러나면서 분단 극복의 새로운 과제로 대두했다

북한은 지금 7가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에너지, 운송, 농업개발 및 식량 확보, 교육·의료·보건, 경제개혁, 국제무역, 외국기업 투자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 에너지와 운송은 경제개발에 필수 요건인 인프라 시설이고, 식량과 교육·의료는 민생 문제이며, 나머지는 체제 개혁에 관련한 것이다. 즉 산업인프라 시설, 민생 문제, 경제개혁을 통한 교역 및 외국기업 유치가 북한이 당면한 최대 문제이다. 게다가 산업인프라 시설과 민생 문제는 전적으로 외부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크다. 특히 에너지와 운송 문제는 6자회담 진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10월2일 낮, 평양 시민들이 노무현 대통령과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탄 무개차를 향해 꽃술을 흔들며 열렬히 환호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이 노 대통령의 육로 방북 문을 열어준 배경과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우선 자신들의 당면한 경제문제 해결이 급했을 것이다. 따라서 정상회담을 경제협력의 발판으로 삼으려 했을 것임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노 대통령도 경제협력에다 무게를 두고 실용과 실천을 중시하겠다고 거듭 강조한 바 있다. 따라서 육로 개방은 경제협력에 대한 북한 나름의 계산된 대응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일회용 이벤트로 끝날지 아니면 남한 경제협력의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필요할 때마다 내놓을 정치적 결단일지는 현재로서 판단하기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남북 관계에서 처음으로 경제지원에 연계되어 육로가 개방되고, 그로 인해 분단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0·4 남북 정상선언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8개 항으로 된 정상선언은 남북관계 상호 존중,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 경제협력, 사회문화 교류, 인도적 협력, 국제무대에서의 협력 등 6개의 실제 문제와 통일문제, 정전체제 종식 등 두 개의 기본 문제를 담고 있다. 실제 문제는 인도적 문제 해결과 평화 기반 구축을 위한 실천적 과제이고, 기본 문제는 가치 및 이념의 문제로서 어느 쪽도 양보하기 어려운 원칙의 문제이다.

흔들리는 경협의 초점

실제 문제 해결의 핵심은 경제협력으로서 북한의 철도와 고속도로 보수를 포함해 서울-백두산 직항로 개설에 합의했다. 뿐만 아니라 농업, 의료보건 등 분야에서 협력 사업을 진행해나가기로 했고, 투자와 교역을 촉진시키기 위한 제도 개선에도 합의했다. 10·4 정상선언은 전반에 걸쳐 산업인프라 시설, 민생 문제, 교역과 투자를 위한 제도 개선 등 북한의 당면 문제 해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경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구를 찾은 셈이다.

10·4 정상선언을 통해 제시된 남북경협은 그 규모나 범위에서 북한 경제 재생 프로그램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 문제를 앞세울 경우 실제 문제에 접근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재정이 앞설 경우 자칫 퍼주기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 대안으로 민간자본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경제성과 현실성을 따지는 기업들은 선뜻 나서려 하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그동안 즐겨 쓰던 북한의 개방개혁 유도라는 명분도 북한 측의 반발을 삼으로써 더 이상 입에 올릴 수 없게 되었다. 경협의 목적을 실용과 현실에 기초해서 다시 점검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서독의 분단 극복 정책 기조는 인도적 문제 해결이었다. 이를 위해 막대한 경제 지원을 통해 동독의 국경 개방을 유도함으로써 이산가족 상호 방문을 확대하는 데 전력을 쏟았다. 정치·군사 긴장이 체제 유지의 생명줄이었던 동독에 국경 개방은 바로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그럴수록 서독은 동독의 국경 개방 폭을 넓혀왔다.

서독 마르크 화로 동독 국경 허물어

분단 이후 서독으로 넘어온 약 300만명 이산가족의 상봉을 위해 서독은 이들의 동독 입국 비자수수료, 동독 통과 고속도로 이용료 등을 일괄해서 매년 20억 마르크씩 동독에 지불했다. 1989년까지 지불금액은 무려 124억 마르크에 달했다. 동독은 서독 여행자의 급증에 불안했지만, 통과도로 이용료 등이 주요 수입원이어서 서독인의 동독 방문을 적극 막지 못했다. 그대신 동독은 주민의 서독 방문을 엄격히 통제하고,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 경우에만 여행을 허가했다. 친지 방문을 정치 거래상품으로 삼고 서독의 경제지원을 받아내는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Reuters=Newsis동독인들이 1989년 11월10일 베를린 장벽을 넘어가고 있다. 그 직전 동독 당국은 국경 개방을 선언했다.
80년대 초반 동서독을 무대로 미·소 간 중거리 미사일 배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서도 서독은 동독에다 20억 마르크 상당의 금융을 제공했다. 그 대가로 동독인의 서독 방문 허가가 크게 완화되었다. 동독인의 서독 방문이 급증하는 데 불안을 느꼈지만, 동독 정권은 열린 국경을 다시 닫을 수도, 그렇다고 국경을 완전 개방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주민의 여행자유화 압력이 거세지는 가운데 1989년 수만의 동독인이 헝가리, 체코 국경을 넘어 탈출했고, 이것이 베를린 장벽 붕괴의 도화선이 되었다.

서독과 동독은 주고받는 사이였다. 서독은 마르크를, 동독은 그 대가로 여행 규제를 완화했다. 단기적으로는 동독이 이익을 얻었지만, 장기적으로는 동독의 국경을 개방하게 함으로써 서독의 ‘접근을 통한 변화’ 정책이 성공을 거두었다. 서독의 경제 지원이 이산가족의 왕래를 촉진했고, 그에 따른 국경 개방이 동독 정권의 몰락을 불렀던 것이다. 민족 대신 이데올로기를 선택했던 동독은 경제난을 견디다 못해 결국 이념을 포기하고 다시 민족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경협의 1차 목적은 북한의 개혁 개방 유도가 아니라 분단 고통을 줄이는 데 모아져야 한다. 이산가족의 자유로운 왕래가 실현되고, 국군 포로나 납북자 가족도 더 이상 고통을 겪지 않도록 경협 방향을 조정해나갈 필요가 있다. 두 정상은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전면 교류에 합의했지만, 지금처럼 제3국을 경유한 왕래라면 그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통일 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위해서라도 금단의 문은 열려야 한다. 체제 위협을 우려하는 북한을 생각하면 우선은 노 대통령이 열어 놓은 장벽의 틈새를 이용해 왕래하는 사람들이 차츰차츰 늘어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작은 걸음이지만 접근을 통한 변화가 분단 극복의 왕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험난한 길이라 해도 경협을 통한 국경 개방은 반드시 실현해 나가야 할 과제이다.

기자명 이인석(인천상공회의소 부회장. 전 청와대 경제비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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