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하고 놀까


그 음악은 모두 ‘빵’에서 태어났다


4분45초 엔딩송에 눌러 담은 메시지

 

홍대 앞 다복길(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29길). 정식 도로명이 생기기 전부터, 이곳을 오가던 사람들은 이 길을 ‘빵 골목’이라고 불렀다. 2004년 이곳으로 옮겨온 ‘모던록 라이브클럽 빵’(이하 빵)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이화여대 후문 앞에 처음 문을 연 1994년부터 22년째, 그리고 홍대 앞에서만 12년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음악계의 숨은 성지다.

2015년 12월1일. 빵은 또 한 번 역사적인 족적을 남겼다. 빵에서 공연하며 성장한 여러 밴드의 컴필레이션 앨범 〈빵 컴필레이션 Vol. 4〉(빵 컴필 4집)를 발매했다. 총 46개 팀이 CD 3장 분량을 쏟아냈다.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익숙한 이름이 보인다. ‘코가손’처럼 최근 떠오르는 신예 밴드부터, ‘미내리’ ‘치즈스테레오’ ‘그림자궁전’ ‘한음파’ 등 10년 남짓 홍대 앞에서 사랑받은 밴드들이 참여했다. 음원 사이트에서 싱글 하나 찾기 어려운 새 이름도 보인다. 공통점은 하나. 모두 빵에서 태어나거나, 빵을 기반 삼아 성장해온 밴드이다.

빵은 홍대 앞 대표적인 인큐베이터다. 음악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빵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 오디션 기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개성과 스타일이 뚜렷한 음악을 좋아합니다.” 빵을 운영하는 김영등 대표는 이 기준을 10년 넘게 지켜오고 있다. 부지런히 새 피를 수혈하고, 그들이 커뮤니티를 이루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하루 4~5팀씩,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주 4회 공연이 이어진다. 매달 ‘콜트콜텍 노동자 수요문화제’가 열리는 날을 제외하면, 공연은 끊이지 않는다. 빵 컴필은 그 과정을 꾹꾹 눌러 담은 결과물이다.

ⓒYou Tube 갈무리 2015년 12월5일 <빵 컴필레이션 Vol. 4> 발매 기념 공연이 서울 마포구 ‘모던록 라이브클럽 빵’에서 열렸다.

앨범 하나 만든 게 뭐 그리 대수냐 물을 수 있다. 하지만 대중음악계에서 빵 컴필은 의미가 남다르다. 2007년 제5회 한국대중음악상은 〈빵 컴필레이션 Vol. 3〉에 ‘특별상’을 수여했다. 9년 전 심사위원단은 이렇게 평했다. “(이 앨범을 제작한 아티스트와 제작자의) 노력은 2007년 홍대 앞을 넘어서 한국 대중음악에 가장 신선한 에너지를 수혈하는 구원투수의 역할을 다했다.” 그로부터 8년 뒤, 2015년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은 ‘올해의 앨범’으로 ‘로로스(Loro’s)’의 〈W.A.N.D.Y〉를 선정했다. 2005년 라이브클럽 빵에서 처음 공연을 시작한 대표적인 빵 출신 밴드가 한 해 대중음악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홍대 앞의 쾌거이자, 빵이 이룬 성취이기도 했다.

 

홍대 앞에서 쫓겨나는 게 당연한 시대를 견디며

음악하기 녹록지 않은 환경이다. 임차료뿐 아니라 음악계 전반이 변했다. 음악을 듣는 사람과 홍보와 마케팅 방법, 시장이 운영되는 방식도 변했다. 유행하는 장르도 바뀌었다. 록 음악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도 EDM과 힙합에 왕좌를 물려준 상태다.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아, 이제는 새로 음악을 하는 이들도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거나 혼자 컴퓨터를 두들기며 만들어낸다. 밴드의 시대는 지났다고 외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빵은 묵묵히 오디션을 이어가며 새로운 팀을 발굴하고 있다.

tvN 드라마 〈치즈인더트랩〉 이윤정 PD는 이번에도 ‘티어라이너’에게 음악감독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티어라이너’는 이 PD의 미니시리즈 데뷔작인 〈카페프린스 1호점〉 때부터 줄곧 호흡을 맞춰왔다. 공교롭게도 〈카페프린스 1호점〉은 빵에게도 남다른 의미를 가진 작품이다. 촬영장이자 실제 카페로 운영되기도 한 ‘카페프린스 1호점’이 빵 맞은편에 위치해 있고, 빵에서 기반을 닦은 아티스트들이 이 드라마 OST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 ‘티어라이너’도 빵에서 종종 공연했던 아티스트다.

동시에 이 드라마는 빵에게 불행이기도 했다. 드라마가 나온 2007년 이후 홍대 앞은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속화되었고, ‘빵 골목’은 와인바와 편집숍이 늘어선 부티크 골목으로 변하고 있다. 빵 역시 언제까지 생존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번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하면서 빵은 “성장과 진보를 담기보다 지금까지 해왔던 과정을 이어가자는 목적이 크다”라고 밝혔다. 늘 하던 대로 버티고, 고집스럽게 남아 있겠다는 의지다. 홍대 앞에서 쫓겨나는 게 당연한 것 같은 시대에, 빵이 좀 더 오래 새로운 자극을 계속 키워주기를. 물론, 더 자주 이곳을 찾아주는 게 가장 좋은 응원의 방식일 것이다.

기자명 중림동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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