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미디어법 개정 논의의 주요 쟁점은 보수 신문의 방송 진출이 우리 사회에 미칠 후유증에 관한 것이었다. 미디어법 통과를 반대했던 대다수 학자와 시민사회 단체들은 신문·방송 겸영이 여론시장의 균형을 완전히 무너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보수 신문들의 방송 진출로 인해 방송의 보수화가 가속화되고, 결국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30년 장기 집권 프로젝트를 현실화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종편(종합편성채널) 5년차를 맞이한 지금, 이러한 종편에 대한 우려는 상당 부분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JTBC의 이례적 행보를 제외하면 말이다. 종편의 출현 이후 우리 사회의 여론 다양성은 심각하게 훼손되었고, 방송 프로그램의 보수화와 쏠림 현상은 거의 위협적인 수준이다. 종편으로 인해 심화된 방송사 간 경쟁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논의와 서비스를 대거 축소시켰으며, 재허가권을 둘러싸고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우호적인 의견이 절대다수를 점유하도록 만들고 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009년 민주당 천정배, 최문순, 장세환 의원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미디어법 재논의를 요구하며 농성하고 있다. 2009.12.3

 

더구나 뻔한 규모의 방송 광고시장에 4개의 종편이 한꺼번에 들어옴으로써 야기된 시청률 경쟁도 문제다. 종편은 정부·여당을 비호하고 보수적 지지 기반을 확산하기 위한 정치적 필요뿐 아니라, 방송사를 유지 존속시키기 위한 경제적 필요를 반영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무책임하고도 공격적인 정치 토크의 범람은 그 자체가 정치적 존립 이유이자 시청률을 담보하는 생존 수단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종편의 킬러 콘텐츠는 시사 토크에 집중된다. 이는 제작비가 저렴할 뿐 아니라 존재 의미를 분명히 할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를 종편식 정치 포르노라고도 부른다. 정치를 맥락 없이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재가공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감각적인 재미가 있다. 그리하여 종편은 이미 지상파 다음으로 시청률이 높은 채널로 자리 잡았다. 더구나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가 발생하면 시청률은 급등한다. 물론 극도의 자극성이라는 장치를 제외하면 시사 토크가 가지는 미덕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문제는 지독한 편파성에 기반한 콘텐츠라는 점이다. 지금과 같은 수준이라면 누가 권력 감시의 기능을 수행하는 언론 중 하나라고 동의해줄 수 있겠나. 장담하건대, 정부·여당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비호하고 옹호하는 매체 특성이 개선되지 않는 한 종편은 여전히 시한부 매체일 뿐이다.

이처럼 시사 토크를 주 종목으로 하는 종편 채널들에게 이번 총선은 대목 중의 대목이 될 것이다. 실제로 2012년 총선은 종편이 약진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여과 없는 막말로 지지 세력을 규합하는 데 기여했다. 선거 특집 프로그램은 새누리당의 독무대였으며, 대놓고 새누리당 후보를 홍보하는 매체로 기능했다.

‘가장 편파적인 종편 프로그램’ 퇴출운동을 해볼 수는 없을까

당시 총선방송심의위원회가 이러한 편파성을 문제 삼자 돌아온 답변은 ‘야당의 출연 거부로 인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나마 2012년 총선 이후 야당 인사 혹은 진보적 인사들이 일부 출연하고 있으나, 불공정한 게임의 룰에 그대로 승복한다는 점에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에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대로라면 2016년 총선 방송에서도 심각한 불균형은 계속될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014년 방송통신위원회의 종합편성채널 재승인 심사를 앞두고 언론노조와 언론 관련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종편국민감시단 회원들이 서울 세종대로 동아일보사 앞에서 '조중동 종편 봐주기 심사 규탄·재승인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4.3.10

 

더구나 분열과 탈당, 상호 비방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야당 상황은 종편을 살찌우고 정치 혐오를 극대화하는 먹을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내부 분열 속에서 지겹도록 정쟁을 거듭하는 야당을 두둔할 생각도 없지만, 정부·여당을 편들기 위해 야당의 약점만을 적극적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접근은 심각한 문제다. 보육 예산, 일본군 위안부 합의 등 정부·여당의 실책이 연일 터져나오는 상황에서 이를 균형 있게 논의하지 않는 그 자체가 이미 방송매체로서의 함량 미달을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중립으로 자신의 위치를 포장해왔던 방송 패널이 여당에 찾아가 공천해달라고 줄을 서는 현실, 야당의 시각을 대변하거나 옹호하는 패널은 다수의 여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바보가 되는 현실, 진행자들의 편파성이 심각하게 드러나는 현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지원 없이는 공정성 논란을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 등을 고려하면 종편의 편파성을 최소한이나마 견제할 수 있는 시민 감시기능을 서둘러 작동시키는 게 절실하다. 이번 총선에서 우리들이 뽑은 가장 편파적인 종편 프로그램 퇴출운동을 하는 건 어떤가.

기자명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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