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의원과 호남 의원들뿐 아니라 김한길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함에 따라 야권이 요동치고 있다. 이제는 수도권과 충청권 의원들 중 몇 명이나 탈당할 것이냐가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외부 인사 영입에 주력하는 등 ‘비주류 지우기’에 주력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탈당이 명분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논의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야권 분열이 총선에 미칠 영향이 문제인데, 이를 두고서는 여러 관측이 난무한다.

몇몇 보수 신문은 야당이 분열되면 야권의 파이가 커져서 여당 의석이 줄어든다고 보도하는데, 그것은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이던 신한국당은 139석을 획득했고, 새정치국민회의는 79석, 자민련은 50석, 통합민주당은 15석을 얻었다. 진정한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와 통합민주당이 합쳤더라면 수도권 선거 결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니, 야권은 분열로 참패한 셈이다. 다음해에 경제위기가 닥쳐오자 여당의 지지도가 폭락했지만 소수당 대표로 전락한 DJ(김대중)는 자신과는 정체성이 다른 JP(김종필)와 손을 잡아야 했고, 이인제 후보가 여당 표를 대거 잠식한 데 힘입어 간신히 대통령에 당선됐다. 야권 분열의 대가는 그만큼 컸던 것이다.

1988년 13대 총선은 분열된 야권이 총선에서 승리한 드문 경우였다. 그해 총선은 지역에 근거를 둔 3김이 이끈 선거였다. 여당이던 민정당은 125석을 얻는 데 그쳤고, DJ가 이끌던 평민당이 70석, YS(김영삼)가 이끌던 민주당이 59석, 그리고 JP가 이끌던 공화당이 35석을 얻어서 ‘여소야대’ 정국이 생겨났다. 당시 야권이던 평민당과 민주당은 총 129석을 획득해서 민정당이 얻은 125석보다는 많았지만 민정당과 공화당이 얻은 총 160석보다는 적었다. 야권이 분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민정당은 10석을 얻는 데 그쳤고 평민당은 17석, 민주당은 10석, 공화당은 3석을 얻었다.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된 데에 대한 견제심리가 발동해서 서울 유권자들이 될 만한 야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었던 것이다.

1988년과는 달리 지금은 영·호남 대립 구도가 고착화됐고,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을 거치며 진영논리가 공고화한 탓에 야권 분열은 야권의 참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100%에 가깝다. 야권 지지자들이 한 가지 위안으로 삼는 것은, 야당이 분열하지 않았더라도 4월 총선에서 어차피 참패하게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통진당과 연대했던 야당 주류 세력에 대한 비호감,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야기된 호남 민심의 이탈 때문이다.

4월 총선은 이제 안철수 의원과 탈당 의원들이 추진하는 국민의당이 어떤 모습을 갖추느냐에 달렸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수도권 선거에서 참패하고 새누리당이 200석을 넘어서는 대승을 거두는 경우다. 이런 경우라면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의 정치 생명도 함께 끝날 것이다. 이런 재앙을 피할 길은 수도권 유권자들의 현명한 선택뿐이다. 1988년에 서울 유권자들이 했던 것처럼 수도권 유권자들이 분별력 있는 투표를 하지 않는다면 수도권 선거 결과는 새누리당의 독주로 귀결될 것이다. 유일한 대책은 수도권에서 두 야당이 선거연대를 하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양쪽이 모두 구태정치라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니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치고받으면 야권 성향 유권자가 투표소 외면할 수도

더 큰 문제는 총선까지 가기도 전에 야권이 지리멸렬해서 유권자들로부터 버림받을 가능성이다. 요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추진 세력이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모습을 보면 총선에 가기도 전에 공멸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평소 말수가 적은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상대방을 향해 날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어서 보기에도 거북스럽다. 탈당 여부를 두고 고민하는 동료 의원에 대해 ‘탈당하려면 해라. 그러면 자객 공천을 해서 떨어뜨리겠다’는 식으로 대하는 것도 그러하다. “친박과 친노 후보를 떨어뜨리겠다”라고 공언하는 것은 신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무슨 비책으로 친박과 친노를 동시에 응징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이희호 여사 방문을 두고 서로 비방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민망하다.

야권 분열은 불가피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치고받다가는 야권 성향 유권자마저 투표소를 외면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두 야당은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각자의 지지층을 찾아나서야 한다.

기자명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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