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학교에서는 교사가 강자이고 학생이 약자라고 생각하지만 학교 안 권력은 그렇게 단순하게 이분화되어 있지 않다. 학교 안 권력은 교사와 학생 사이를 가로지르며 생각보다 매우 촘촘하게 위계화되어 있으며 다수의 학생들은 이 권력의 차이를 ‘간파’하고 있다. 권력관계를 간파해야 자기가 누구에게는 개기고 누구에게는 찍소리도 하지 말아야 하는지가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사립학교의 맨 위에는 교장이 아닌 이사장이 있다. 그리고 행정실을 비롯한 학교 곳곳에 있는 이사장의 일가친척들이 그다음 자리를 차지한다. 학생들은 교사들도 그들에게는 꼼짝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사장이나 교장과 친한 학부모들이 또 이 ‘권력 계급도’에서 상당히 상위에 있으며 그들의 자식이 높은 권력을 갖는다.

이 권력 계급도 맨 아래에 누가 있을까? 학생으로서는 왕따와 같은 학교 폭력의 희생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 곁에 ‘의외로’ 교사가 있다. 기간제 교사다. 기간제 교사 중에서도 국·영·수 같은 주요 과목 담당이 아니거나, 여성이거나, 가르치는 방식이 학생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쉽게 권력에서 배제된다. 평소에는 다른 교사와 다를 바 없으나 수틀리는 일이 벌어지면 그들의 위치는 바로 노출된다. “진짜 선생님 아니잖아요”라는 말이 의미하는 건 바로 이것이다.

ⓒ박해성 그림

기간제 교사의 위치는 ‘정상’ 상태가 아닌 ‘예외’ 상태에서 드러난다. 그들은 학교 안에서 일종의 불가촉천민이다. 그들의 위치가 권력의 ‘아래’가 아니라 ‘바깥’이라는 의미다. 그들은 학교라는 제도 ‘안’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경계’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며,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곧바로 제도 바깥으로 내쳐지면서 학교라는 제도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된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세월호에서 희생된 기간제 교사들이다. 고 김초원, 고 이지혜 선생님이다. 이분들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학생들과 운명을 같이했지만 결국 ‘순직’에서 제외되는 방향으로 결정되고 있다. 정규직 교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7월 이분들의 신분이 현행법상 공무원이 아닌 ‘민간 근로자’라고 했다. 교육부와 인사혁신처는 그 과정에서 서로 공을 떠넘기는 핑퐁게임을 벌이기만 했다. 어느 ‘제도’도 그들을 자기 ‘소관’으로 가져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의 위치가 ‘아래’가 아닌 ‘바깥’이라는 게 여실히 드러난다. 법 바깥의 존재인 것이다. 기간제 교사를 제도 바깥으로 내치는 폭력은 국가에 의해 자행된다.

문제가 생기면 내치는 것으로 ‘최종 처리’?

국가의 뒤를 이어 기간제 교사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건 학교다. 기간제 교사의 ‘생명’은 전적으로 학교에 달렸다. 학교가 기간제 교사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다. 이것이 권력의 아래가 아닌 바깥에 위치하는 ‘불가촉천민’인 기간제 교사의 운명이다. 이들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숭고하게 희생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문제’가 생기면 그들 자신이 ‘처벌’받아야 하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 뒤를 잇는 것이 학생들의 폭력이다. 기간제 교사들 역시 자신이 제도의 바깥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교장이나 교사, 혹은 이번 교사 폭행 사건처럼 학생들로부터 인권침해를 당하더라도 항의하거나 신고하지 않는다. 문제가 벌어지면 그 문제의 장치인 국가와 학교가 마치 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등장해 자신을 ‘최종 처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간제 교사는 학교 현장에서 언제든 발가벗겨질 수 있는 존재다. 학생에 의해서건 교사에 의해서건 그들을 발가벗기는 폭력은 다시 그들을 학교에서 내치는, 즉 발가벗기는 것으로 해결을 시도할 것이다. 이것을 직시하지 않는 한 폭력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기자명 엄기호 (덕성여대 문화인류학 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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