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회장님의 ‘그 사람’ 수상한 부동산 거래


총수의 사생활에 시장이 ‘시선 집중’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한국 특유의 기업집단 모델인 ‘재벌 체제’의 사회적 정당성을 바닥까지 떨어뜨리고 말았다. 지난해 12월28일 최 회장은 ‘자연인 최태원’으로 〈세계일보〉에 보낸 편지에서 부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 의사를 공식화했다. 편지에 따르면 그는 오래전부터 노 관장과 “이혼에 대한 구체적 논의를 이어가던 중에 우연히 마음이 위로가 되는” 여성을 만났다. 최 회장은 이 여성과의 사이에 딸을 두고 있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았다.

편지의 문체는 진솔하고 애절하다. 노소영 관장에 대한 죄책감과 다른 여성 및 아이에 대한 애틋함이 절절히 묻어나온다. 재계 서열 3위인 SK그룹 총수라는 화려한 허울 뒤에 숨어 있던 초라한 중년 남성의 모습. 그러나 시장이 최 회장의 ‘커밍아웃’을 반기지 않았다는 것은 명확하다. 그룹의 지주회사인 SK는 물론 SK텔레콤, 하이닉스 등 주요 계열사의 주가가 이튿날부터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른바 총수의 권한이 막강한 SK그룹에서 ‘자연인 최태원’의 가정사는 결코 사생활에 그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인 노소영 관장 측의 반응은 너무나 담담하다. 그녀는 ‘자신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며, 심지어 최 회장과 다른 여성 사이의 아이를 키우겠다는 의사까지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혼 의사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무서운 일이다. 앞으로 이혼 및 재산분할 절차가 진행되는 경우, 최 회장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책임이 클수록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양도해야 할 재산의 규모도 커진다. 이 과정에서 자칫 SK그룹 전체의 지배구조가 요동칠 수 있다.

ⓒ연합뉴스1월4일 SK그룹 신년회에 참석한 최태원 회장. 그는 2015년 12월 이혼 의사를 공식화했다.

최태원 회장의 재산은 의외로 간명하다. 사실상 SK그룹 지주회사인 SK의 지분 23.21%밖에 없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4조원(1월5일 현재 SK 시가총액 16조9000억원의 23.21%). 지주회사는 다른 회사를 지배하기 위한 기업이다. 기업은 법인(법률상의 인간)으로서 다른 기업을 소유하고 지배할 수 있다. 예컨대 지주회사 SK는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SK텔레콤과 SK이노베이션의 지분을 각각 25.22%와 33.4% 보유하고 있다. SK텔레콤은 다시 하이닉스를 20.07%의 지분으로 지배한다. 최 회장은 지주회사 SK의 최대 주주인 덕분에 SK텔레콤·SK이노베이션·하이닉스 같은 다른 거대 기업들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다. SK의 다른 대주주로는 국민연금공단(8.4%), 최 회장의 여동생인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7.4%) 등이 있다.

결국 최태원 회장이 노소영 관장에게 분할하는 재산은 SK 지분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그룹의 다른 핵심 계열사의 지분은 갖고 있지 않다. 삼성의 이건희 일가와 다른 점이다. 삼성그룹 역시 이건희 일가가 지배하는 삼성물산이 다른 계열사들의 지분을 보유하고 지배하는 방식을 통해 전체 그룹을 운영한다. 그러나 일가의 구성원이 개인 차원에서 핵심 계열사의 지분을 따로 확보하고 있다. 예컨대, 삼성생명의 최대 주주는 이건희 회장 개인(20.76%)이다. 2대 주주가 삼성의 사실상 지주회사인 삼성물산이다. 이건희 일가는 삼성전자에 대해서도 4.7% 정도의 지분을 따로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최태원 회장에게는 지주회사 SK의 지분밖에 없다. 이 지분만으로 그룹 전체에 대한 ‘가문의 지배’를 담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태원 회장이 실제로 이혼을 강행하면서 재산분할에 들어가면, 이 중요한 지분 중 일부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다른 재산이 없기 때문이다. 총수의 사생활이 그룹 전체를 타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실성 떨어지는 ‘SK텔레콤 요구’설

이에 따라 흉흉한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재산의 최대 50%, 즉 SK 지분의 절반(11.6%)을 노소영 관장에게 분할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노 관장이 이혼 조건으로 핵심 계열사인 SK텔레콤을 요구한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까지 떠돈다. 만약 최 회장이 SK 지분의 절반을 노 관장에게 건네게 된다면, SK의 소유 구조는 최태원(11.6%), 노소영(11.6%), 국민연금(8.4%), 최기원(7.4%) 등으로 정리된다. 이렇게 되어도 최태원 일가의 지분은 최기원씨의 몫까지 합쳐 19%니까 삽시간에 ‘가문의 지배’가 와해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의 후계 구도 등을 감안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노 관장이 SK텔레콤을 요구한다는 ‘설’에는 현실성이 없다. SK텔레콤은 SK의 자회사지만, 양사의 시가총액은 비슷하다(19조6000억원가량).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SK텔레콤을 지배할 만한 지분을 양도하려면, 자신의 SK 지분 전체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총수의 이혼에 따른 그룹 구조 전체의 변동’까지 예측되는 이유는, 최 회장의 재산 형성에 노 관장의 집안(그녀의 부친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이 크게 기여했다는 세간의 인식 때문이다. 상당 부분 사실이다. SK의 전신인 선경그룹이 재계 선두권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발판은 1980년에 인수한 대한석유공사(현 SK이노베이션)였다. 이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친 사람이 당시의 정권 실세 노태우였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1988년에 결혼했고, 이 같은 정경 간 ‘혼인동맹’은 이후 SK그룹이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인수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라는 게 세간의 정설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혼 절차가 개시되었을 때, ‘노태우 일가’ 측이 ‘정경유착을 통한 기여’를 법정에서 공공연하게 주장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한국 특유의 기업집단 모델인 재벌 시스템에서 최대 강점은 ‘총수’의 강한 권력이다. 총수 일가는, 기업이 기업을 지배하는 복잡한 ‘지배 사슬’을 통해 경영권을 보장받았다. 이 덕분에 총수는 주주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장기적 모험 투자에 뛰어들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장점은 총수 개인의 성향에 따라 결정적 단점이 될 수도 있다. 더욱이 재벌 시스템에서는 총수로부터 경영권을 박탈하기가 매우 어렵다.

최태원 회장은 사익을 위해 회사 이익을 침해한 전과가 있다. 2013년 SK텔레콤 등 주요 계열사들로부터 490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이 돈은 무속인 출신인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에게 투자되었다. 역대 재벌 총수들이 그 숱한 전횡과 비리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긍정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면, 그들이 ‘괜찮은’ 사업 부문을 선별하고 과감하게 투자하는 능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무속인에게 투자 선별을 맡기는 사람이 그룹 최상층에서 절대적 권한을 행사해도 되는지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횡령 혐의로 징역형을 살고 있던 최태원 회장이 ‘경제 살리기’라는 대의명분으로 특별사면을 받은 것이 지난해 8월 중순이다. 그러나 그는 불과 4개월여 만에 이혼 문제로 한국 경제에 중요한 다수 대기업들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미래 리스크를 가중시켰다. SK의 2대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은 지난해 중순의 ‘삼성물산’ 사태에서 국민경제 차원의 장기적 이익을 대의명분으로 이건희 가문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이런 국민연금공단이 SK 총수의 자격에 대해서는 어떤 판단을 내리고 있는지 궁금하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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