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회장님의 ‘그 사람’ 수상한 부동산 거래


총수의 사생활에 시장이 ‘시선 집중’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고백’이 배임 의혹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에겐 오래전부터 교제하면서 자녀까지 둔 여성이 있었다. 그런데 SK가 계열사를 동원해 이 여성에게 수억원을 지원하고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편지가 공개된 지난해 12월28일, 안치용 ‘시크릿오브코리아(Secret of Korea)’ 편집인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최 회장이 언급한 여성이 미국 뉴저지 출신의 김씨라고 밝혔다. 안씨는 최 회장이 이 여성(김씨)에게 “SK 해외 계열사를 통해 회사 공금으로 아파트를 매입해줬다”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씨는 2008년 1월 서울 서초구 반포동 A아파트 한 채를 SK건설로부터 15억5500만원에 매입했다. 분양면적 426㎡(129평), 전용면적 243㎡(73평)인 고급 아파트다. 2년이 흐른 2010년 4월, 김씨는 싱가포르의 버가야인터내셔널 유한회사에 24억원을 받고 이 아파트를 팔았다. 문제는 버가야인터내셔널이 SK그룹의 계열사라는 점이다.

SK그룹의 핵심 계열사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에너지가 버가야인터내셔널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버가야인터내셔널이 김씨의 아파트를 매입한 시점은 설립(2010년 2월24일)된 지 두 달여 지난 때다. 이로부터 5년8개월 뒤인 지난해 12월22일, 버가야인터내셔널은 김씨로부터 24억원에 사들였던 아파트를 다른 개인에게 18억원을 받고 팔았다. 엿새 뒤, 최태원 회장의 편지가 공개됐다.

ⓒ시사IN 이명익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특수 관계인 김씨는 서울 반포동 A아파트(사진)를 SK건설로부터 사들여 SK계열사에 파는 방식으로 2년 새 8억4500만원의 시세차익을 올렸다.

이렇게 아파트 한 채가 사고 팔리는 동안 김씨는 8억4500만원의 차익을 챙겼고, SK 계열사 버가야인터내셔널은 6억원을 손해 봤다. 최태원 회장이 계열사를 이용해 김씨에게 아파트를 싸게 팔고 비싸게 매입해 그룹에 손해를 끼쳤다(배임)는 의혹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쟁점은 김씨와 SK건설, 그리고 버가야인터내셔널 사이의 거래가 해당 시기의 주변 시세에 맞는 가격으로 이뤄졌는지다.

김씨가 아파트를 ‘싸게 산’ 것인지부터 따져보자. 일단 김씨가 SK건설에 지불한 금액(15억5500만원)이 같은 분기의 해당 아파트 거래 가격 중에서 가장 저렴한 편이라는 것은 확인된다.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김씨가 아파트를 구입한 지 닷새 뒤인 1월22일, 같은 아파트의 232.54㎡(70평) 매물이 17억원에 거래됐다. 1월30일에는 해당 아파트의 222.49㎡(67평) 매물이 17억3000만원에 팔렸다. 그다음 달 22일에는, 김씨와 다른 층이지만 같은 243㎡의 매물이 23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김씨의 아파트보다 각각 3.3㎡당 400만원, 500만원, 1200만원 비싼 가격이다.

다만 인근 부동산 업체에 따르면, 이 정도의 가격 차이로 SK와 김씨 사이에 모종의 ‘가격 조작’을 의심할 수는 있지만 확증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중대형 아파트 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작은 평형(김씨의 243㎡보다 작은 222㎡)의 수요가 더 많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층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버가야인터내셔널의 매입 금액(24억원)에 대해서는 복수의 부동산 업자와 전문가가 공통적으로 의문을 표했다. 강남 지역의 당시 부동산 상황을 고려할 때, 2년 만에 54%의 수익률(15억5500만원에 사서 8억4500만원의 차익을 챙김)을 거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분석이다. 김씨가 아파트를 버가야인터내셔널에 판 2010년 4월은, 2008년 가을 세계 금융위기로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냉각된 뒤 회복되지 못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서울시 서초구에서 10년 이상 부동산업에 종사한 ㄱ부동산 사장은 “2010년이면 신분당선이 들어선 판교 신도시를 제외하고는 부동산 시세가 좋지 않았다”라고 돌이켰다. 부동산·경매 전문 정충진 변호사(법무법인 열린)는 “2010년 반포 쪽 부동산 시장은 굉장히 암울했다. 내막이나 의혹을 떠나 객관적인 부동산의 흐름으로만 봤을 때, 매입가보다 더 비싸게 팔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당시 일반 시장에 그 매물을 내놨으면 샀을 때보다 8억5000만원 가까이 비싸게 팔지는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씨가 아파트를 사고판 두 시점의 해당 아파트 공시가격을 비교해봐도 9억6800만원(2008년 1월1일 기준)에서 9억2000만원(2010년 1월1일 기준)으로 4.9% 하락했다.

물론 공시가격과 실거래가는 일치하지 않는다. 50세대 이하의 고급 아파트는 매매가 자주 일어나지 않아 단일 단지의 시세를 파악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그래서 주변의 비슷한 아파트와 비교해봤다. 김씨가 소유했던 A아파트와 같은 해(2007년)에 건설된 서초구 반포동 B아파트의 경우, 231㎡(70평)의 실거래가가 21억원(2008년 7월)에서 15억3000만원(2010년 4월)으로 27.4% 하락했다. 새로 지어진 아파트는 사정이 훨씬 나았다. 2009년부터 입주를 시작한 C아파트 244.5㎡(74평) 아파트는 28억5639만원(2009년 2월)에서 30억원(2010년 6월)으로 5% 상승했다. 역시 2009년부터 입주를 시작한 D아파트 198㎡(60평)는 26억5500만원(2009년 7월)에서 27억5000만원(2010년 1월)으로 3.5% 상승했다. 최근 지어진 아파트일수록 실거래가가 소폭 오르긴 했으나 54%까지 상승한 경우는 없다.

다만 변수는 있다. 정충진 변호사는 “강남 쪽의 고급 아파트에 유명 연예인 등이 살면서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하는 경우 3억~4억원의 가격이 더 붙을 수 있다. 만일 최 회장과 특수관계인 여성이 호화스럽게 리모델링했고, 그런 것을 고려해서 팔았다면 조금 더 가격이 올랐을 가능성은 있다”라고 말했다.

SK그룹 ‘모두 정상적인 거래였다’ 해명

그러나 SK그룹의 해명에 이런 내용은 없었다.  SK그룹 관계자는 김씨가 최 회장과 특수관계인이며, SK계열사와 거래를 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모두 “정상적인 거래”였다고 강조했다. SK그룹 관계자는 “2008년 김씨가 아파트를 살 때는 미분양 아파트였기 때문에 가격이 낮았다. 2010년 버가야인터내셔널이 사업적인 필요에 따라 해당 아파트를 시세에 맞게 구매했다. 최근 다시 판 것도 급히 처분한 것이 아니라 8월부터 부동산을 통해 매각을 진행했는데 수요가 없어서 가격이 낮아진 것뿐이다”라고 해명했다. 당시 강남 부동산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았는데도 높은 가격에 매입한 이유를 묻자 “공시가격과 실거래가가 항상 같이 가는 것은 아니다. 강남 지역의 고급 아파트는 공급이 많지 않아 충분히 고가에 거래될 수 있었던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최태원 SK 회장은 업무상 배임죄와 횡령죄로 두 번 유죄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다. 2008년 배임 및 횡령죄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2014년에도 횡령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4년형이 확정됐다. 참여연대 안진걸 사무처장은 “사생활에 대한 논평은 하지 않겠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이면 오해를 살 만한 특수관계인이 일반 서민이나 중산층은 물론 웬만한 부자들도 누리기 힘든 9억원 가까운 시세차익을 단박에 누리게 됐다는 점에서 배임 혐의가 있다”라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김씨와 연관된 부당 지원 의혹을 종합적으로 확인한 뒤 고발을 검토할 예정이다.

기자명 신한슬 기자 다른기사 보기 hs51@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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