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철 박사의 여행심리학

① 사분면으로 보는 여행심리학 입문

② 액티비티-내가 감당할 수 있는 짜릿함의 한계는?

③ 역사 유적-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틀림없이 맞는 곳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이 자주 듣는 조언이다. 가는 곳의 역사와 문화와 즐길 거리를 미리 알고 떠나는 여행과 준비 없는 여행은 만족도가 다르다.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나 자신에 대해서도 유효하다. 나를 알고 이해하는 만큼 여행의 가치가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여행지를 공부하는 만큼 나 자신을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나와 여행의 궁합’은 의외로 정확히 맞추기 어렵다.

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나와 여행의 궁합을 연구하는 심리학의 한 갈래가 있다. ‘여행심리학’이라는 낯설면서도 흥미로운 이름으로 불린다. 2016년 새해 계획을 세우면서도 여행은 어쩐지 나랑 어울리지 않는다며 제쳐두는 당신을 위해, 〈시사IN〉이 새 연재를 준비했다.

필자인 김명철은 심리학 박사(성격심리학)다. 500여 일에 걸쳐 12개국을 여행한 경력이 있다. 심리학과 여행학, 그리고 본인의 여행 경험을 종합해 ‘김명철 박사의 여행심리학’을 연재한다.

 

 

중국 쓰촨성 북부에 있는 쑹판은 해발 2800m에 위치한 인구 8만명 남짓의 평범한 마을이다. 마을을 둘러싼 고성은 관리 상태가 좋지만 만리장성과 자금성의 나라 중국에서 이 정도는 특별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곳에는 독특한 매력 포인트, 말 트레킹이 있다.

말과 노새로 유라시아의 물류를 움직여온 나라답게 중국에는 유서 깊은 교역로가 이리저리 얽혀 있고, 곳곳에서 마방(말이나 노새로 물류를 유통했던 상인) 노릇을 가업 삼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말 트레킹은 마방이 있는 곳에서는 거의 어디서나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쑹판에서 설산(설옥정)을 왕복하는 2박3일 트레킹은 각별하다. 짙은 숲속을 누비고 드라마틱한 산길을 오르내리는 이 코스는 사흘 동안 잠시도 허투루 보내지 못할 압도적인 경관을 자랑한다.

말타기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무서운 느낌이 들어서 몸이 긴장하면 자세를 유지하기가 더 어렵다. 허리와 사타구니, 엉덩이 쪽에 상당한 부담이 가해져 밤이면 곳곳이 쑤시고 아프다. 더구나 쑹판 말 트레킹에서는 트레커가 말고삐를 직접 쥔다. 말에 익숙할 리 없는 대다수 한국인에게는 상당한 부담이다.

ⓒ차마고도 여행카페중국 쓰촨성 북부에 있는 쑹판에서는 설산을 왕복하는 2박3일 말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말 트레킹의 즐거움은 이런 여러 어려움에서 나온다. 말의 고삐를 잡고 사흘간 산을 타다 보면 이 말이 내 말이라는 강한 감정적 유대를 느낄 수 있고, 말을 능숙하게 탄다는 기분 좋은 환상을 가질 수도 있다. 익숙해진 후에는 말의 진동을 온몸으로 느끼며 경치를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기분 좋은지 알게 된다. 그리고 딱 한 번, 마방들은 30분 정도 말을 ‘달리게’ 해주는데 이때는 강렬한 낙마의 공포와 함께 정말로 모발이 기립하는(piloerection:모발기립. 자율신경계 흥분의 징후. 털북숭이 동물 시절부터 이어져온 인간의 신경계 반응이다) 짜릿한 흥분을 맛볼 수 있다. 눈 아래가 시원하게 떨어지는 산길을 말 위에서 내려다볼 때마다 고소공포와 흥분이 뒤섞인 짜릿함을 느끼기도 한다.

‘액티비티’라는 제목에 독자 여러분은 스카이다이빙이나 익스트림 스키를 기대하셨을지도 모른다. 기껏 내놓은 게 말 탄 이야기라니! 하지만 2박3일 말타기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 수준의 액티비티다. 어떤 액티비티가 ‘짜릿한 액티비티’로 불릴지 ‘불쾌한 공포 체험’으로 불릴지는 즐기는 사람의 성격 특성에 달려 있다. 나는 이 특성이 그다지 높지 않은 사람에 속한다. 여러분께 ‘감각 추구 성향’을 소개한다.

외향성의 구성 성분 중 하나인 감각 추구 성향이란 신경계에 강렬한 자극을 주고 짜릿한 경험을 추구하는 성향이다. 보통 사람들이 ‘위험’이나 ‘일탈’이라고 인식하는 상황이나 행동을, 감각 추구 성향이 높은 사람들은 ‘짜릿함’으로 해석해버린다. 이들은 개조한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고속으로 몰아대고, 유난히 도박을 즐기며, 번지점프나 클리프다이빙에 도전하고, 뭘 하든 안전장비를 떼고 하겠다고 우겨댄다.

감각 추구 성향의 극단적 사례로는 영화 〈폭풍 속으로〉의 패트릭 스웨이지를 들 수 있다. 그는 짜릿함이라는 마약에 인생을 헌납하여 은행 강도, 스카이다이빙, 익스트림 서핑을 본업으로 삼다가 태풍이 불러온 파도 속으로 서핑보드를 저어 들어가버린다. 이 정도 극단까지는 아니더라도 감각 추구 성향이 높은 성격은 일상에서도 드러난다. 내 주위에서 감각 추구 성향이 가장 높은 J군은 실력은 그저 그런데도 당구를 칠 때조차 모험적인 길만 노린다. 감각 추구 성향이 높은 사람에게 여행은 최고의 레저 활동이다. 이들에게 여행은 아찔한 암벽과 콸콸 쏟아지는 급류와 무시무시한 상어와 눈보라 모래폭풍을 의미한다.

액티비티로 유명한 아시아 각지의 여행지들

내가 직접 방문해본 아시아 각지에도 액티비티로 유명한 곳이 많다. 지프라인 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타이 치앙마이나 라오스 남부에서 아름다운 정글을 날아다닐 수 있고, 인도 조드푸르의 우람한 무굴 요새에서 탑과 성벽 사이를 날아볼 수도 있다. 몽골은 표지판도 없고 도로도 없는 평원을 말이나 오토바이로 누비며 늑대가 우글거리는 벌판에서 캠핑을 즐기는 모험이 있는 나라다. 네팔은 산에 관한 모든 레포츠에서 세계 최고다. 네팔 서부의 중심지 포카라에서는 날마다 하늘을 수놓는 패러글라이더를 볼 수 있다.

타이 서남부의 레일레이는 기암괴석이 빚어내는 경치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암벽등반으로도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는 곳이다. 2013년에 나는 오직 바위를 타기 위해 이곳을 일곱 번째 찾았다는 스페인 커플을 만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발리 섬 남쪽의 렘봉안 섬에 가면 바다의 신에게 산 제물을 바치는 곳처럼 생긴 클리프 다이빙 장소가 있다. 이곳에는 “어떤 녀석이 여기서 다이빙을 하지? 몇 시간을 기다려서라도 꼭 보고 말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이버가 잘 보이는 위치에 파라솔과 테이블, 의자가 설치되어 있다.

그렇다면 나 같은 사람, 여러 액티비티에 호기심이 가지만 나에게는 너무 셀 것 같아서 두려움이 이는 내향인들은 어떻게 해야 좋을까? 나는 내가 소개한 액티비티 대부분이 정작 내게는 불안과 공포를 안겨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는걸! 호기심은 넘치지만 신경계가 물러터진 동지들이여, 여행은 언제나 모든 사람들에게 맞춰줄 준비가 되어 있다.

첫째, 여러분이 즐길 수 있는 스릴은 어떤 것이고, 반대로 마음을 가장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자가 진단을 해보자. 나는 사람이 많은 공간에서 별다른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며 속도가 빠른 것은 즐기지만, 높은 곳이나 안전장치가 불안해 보이는 것은 견딜 수 없다. 이 정도만 알아도 목록을 뽑아낼 수 있다. 나는 스노클링과 스쿠버다이빙은 즐길 수 있지만 패러글라이딩이나 번지점프는 공짜로 태워준대도 안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인적이 드물고 너무 고요한 곳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폐쇄된 공간이나 물을 피하려 하고, 어떤 사람은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는 상황에 불안을 느낀다.

둘째, 나와 같은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건 항상 초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실력에 대해 허풍을 떨어서는 안 된다. 3년 전에 서핑을 배운 적이 있다고 해서 함부로 상급자용 쇼트보드를 타선 안 되고 면허가 없다면 오토바이를 빌리지 말아야 한다.

셋째, 스릴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목적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을 바꿔보자. 평생 한 번도 말을 타본 적 없는 내가 트레킹을 결심했던 것은, 말타기가 흥분될 것 같아서가 아니라 말이 나를 아름다운 자연 속으로 이끌어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말타기는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하지만 중국 서부 고지대의 침엽수림은 오랫동안 꿈에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어떤 장소를 더욱 깊고 진하게 느끼기 위해 트레킹을 하고 카약을 타며 산을 오르거나 바다에 잠수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면 진한 경험이 주는 즐거움이 신경계의 역량을 일시적으로 확장시켜주기도 한다.

기자명 김명철 (심리학 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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