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촛불집회에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이 사라지고, 전문 시위꾼만 남았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시위 현장에서 매일 보는 사람이 있다. 이들의 일과는 시위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오후 7시 촛불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낮에 피켓과 양초를 준비하고, 다음 날 아침에 귀가해 인터넷에 후기를 올리고 잠시 토막잠을 자는 생활을 두 달 넘게 반복한다. 그러나 ‘전문’이라는 말을 붙이기에 이들은 너무나 어설프다. ‘꾼’보다 ‘폐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직장까지 그만두고 거리로 나온 이들이 ‘누구’인지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봤다.
그는 “이 생활도 주말이면 끝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주로 한 달간의 휴가가 끝나기 때문이다. 5월3일 처음 청계광장에 나올 때만 해도 그는 평범한 ‘출퇴근 시위객’이었다. 그러나 부상자가 발생한 5월 넷째 주 주말을 지나면서 그는 시위에 올인하게 된다. 직업이 간호사인 까닭에 의료봉사를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보름 중 열흘 결근에 사흘 조퇴. 병원 원장은 대표로 열심히 싸우라며 무급휴가를 허락했다. 그러나 더 이상 그의 손에 구급상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지금 봉사가 아닌 시위 자체에 몰입해 있다.
윤경자씨는 스스럼없이 자신을 ‘실력 있는 간호사’라고 소개했다. 그는 “난 (결혼을 하지 않아) 딸린 가족도 없고, 모아놓은 돈도 있다. 이민 가도 된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너무 좋아 이러고 있는 거다”라고 말한다. 여행하며 사진 찍는 것이 취미인 윤씨는 전국에 안 다녀본 곳이 없다. 시위에 올인하는 까닭을 이렇게 말했다. “돌아다닐 때마다 한국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느꼈다. 대통령 때문에 내가 우리나라를 떠나기에는 너무 억울하다.” 그는 일부러 휴가를 연장하지 않았다. ‘MB 퇴진’이라는 시위 참여 목적이 쉽게 달성되지 않을 것 같아서다. 몇 년이라도 시위할 수 있도록 그는 다음 주부터 다시 ‘출퇴근 시위 모드’로 돌아갈 예정이다.
무빈 씨가 처음 촛불집회에 나온 것도 아들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아들이 어느 날 광우병 위험성과 현 정부의 문제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는 386 세대다. 대학 시절 쇠파이프도 휘둘러보았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한 이후로는 신문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는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안전한 먹을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처음 촛불집회에 나갔고, 미래에 아이들의 눈과 귀가 되어줄 바른 언론을 지키기 위해 여기에 앉아 있다”라고 말했다.
KBS 노조가 새로 임명되는 11월까지 그는 시위를 계속할 예정이다. 장기전을 위한 계획도 철저하다. 곧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초등학생인 둘째와 셋째는 용인의 할머니 댁에 맡길 것이다. 고3인 큰아들은 혼자 다 알아서 생활하고, 대학 걱정 안 할 만큼 공부도 잘하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단다.
다만 다시 일거리를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이다.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는 그는 그동안 경제적으로 별 어려움 없이 살아왔다. 시위를 위해 주머니에서 100여 만원을 선뜻 내놓았을 정도다. 그러나 최근 행적이 알려지면 일감을 얻는 데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는 “나도 다른 386처럼 기득권층으로 눌러앉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미래를 위해 행동하는 것이 좀더 아이들을 위한 길이라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배씨는 “나도 가끔씩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한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라고 말했다. 나이 스물아홉에 겨우 대학을 2학기 다닌 그는 생활이 넉넉지 못하다. 예순이 다 된 어머니가 아파트에서 허드렛일을 해 벌어오는 돈으로 가족이 근근이 살아간다. 아버지는 치매에 걸렸다.
그는 평일에는 혼자 집회에 나오지만 주말이면 아내와 딸이 함께한다. 처음 집회에 참가할 때만 해도 15개월이던 딸아이는 이제 17개월이다. 딸을 집회에 데려오느라 튼튼하고 방수도 되는 유모차를 새로이 장만했다. 그는 “딸이 어려서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민주화 현장에 있었던 경험을 남겨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요즘 흡연구역 씨는 조계사 천막에서 생활한다. 수배 중인 카페 부대표 백은종씨의 ‘사수대’다. 세끼 절에서 밥을 먹을 수 있으니 매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서울광장 천막 시절보다는 형편이 낫다. 그러나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다. 오전에는 천막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고, 오후에는 집회 준비, 오후 7시 촛불집회가 시작되면 CCTV를 보며 상황을 살피는 것이 그의 일과다. 너무 바쁘다. 두 달여 동안 그는 구미의 집에 세 차례 다녀왔다. 세금을 내기 위해서다. 현 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아 집을 나온 사람이 세금 낼 때에만 집에 들어갔다는 말이 역설적이다. 그러나 흡연구역 씨는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정부에 당당하게 권리도 주장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