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수씨(가명·23)는 배달원이다. 오후 5시에 출근해 새벽 2시까지 오토바이를 몬다. 서울 관악구 일대가 그의 ‘구역’이다. 지난 연말 어느 날 밤 8시께 그의 스마트폰에서 문자 알림 신호가 울렸다. ‘콜이 배정되었습니다. 확인해주십시오.’ 문자가 지정한 업소는 보쌈 가게다. 그는 보쌈 가게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10여 분간 음식 포장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3만7000원짜리 보쌈을 받고, 업주 주인에게 3만4000원을 줬다.

가게를 나선 지 5분 만에 고객에게 배달을 완료하고 돌아섰다. 보쌈값 3만7000원을 받았다. 차액 3000원은 김씨가 얻는 배달 수수료다. 마침 스마트폰이 다음 주문을 알린다. 치킨 가게다. 주문이 몰리는 시간이라 조급한 마음에 불법 좌회전 등 교통신호 위반을 하고 만다. 이날 김씨는, 족발·도시락·분식 등 10개 업소를 돌면서 모두 29건의 배달을 마쳤다. 수입은 9만7000원. 배달 1건당 3300원꼴이다. 일이 손에 익으면 한 시간에 서너 군데씩 돈다. 시간당 1만∼1만2000원을 손에 쥐는 셈이다.

ⓒ시사IN 이명익매월 500만명 이상이 앱으로 배달 서비스를 이용한다. 배달업이 성장하면서 배달 대행업체도 성행 중이다.

김씨의 업무를 ‘배달 대행’이라고 부른다. 한 업소에 고용돼 고정된 월급을 받는 것과 달리, 여러 업소를 돌면서 건별로 수수료를 챙긴다. 음식점은 배달 대행업체에 매달 10만∼20만원을 내고, 대행업체는 배달 주문이 올 때마다 김씨 같은 배달 담당자에게 ‘콜’을 넣는다. 배달 담당자는 배정받은 음식점으로 간다. 2000∼4000원가량 싼 값에 음식을 사서 고객에게 원 가격으로 판다. 차액이 배달 담당자의 몫이다. 평일 20∼30건, 주말 30∼50건씩 콜을 잡으면(주문을 받으면) 매월 200만원 이상 손에 쥔다. 배송 대행업체에 오토바이 임차료로 하루 5000∼1만원 혹은 한 달 20만∼25만원씩 낸다.

2011년 배달 주문을 중개하는 앱 ‘배달의 민족’ 등이 등장하면서 배달 음식 주문량이 늘었다. 배달업이 성장한 직접적 계기였다. 매월 500만명 이상의 고객이 앱으로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고객 처지에서는 어디서든 주변 음식점을 검색해 바로 주문할 수 있는 데다, 배달 가능 음식까지 부쩍 늘어났다. 원래 배달하지 않던 식당까지 이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서다.

근로기준법에서 자유로워진 업주들

이 과정에서 배달 서비스 구조가 변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화요리점 등 ‘배달 가능 식당’은 직접 배달원을 고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현재는 배달 대행업체의 지시를 받아 각종 식당의 배달을 수행하는 배달 대행 ‘직원’이 상당수다. 이들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다. 정확한 명칭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다. 이에 따라 배달 대행업체의 배달원은 노동법상 권리인 ‘서면 근로계약서 작성’ ‘최저임금 준수’ ‘임금체불 예방’ 등에서도 제외된다.

2013년 11월, 서울 광진구에서 배달 대행 중이던 고등학생 ㄱ군이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입었다. 그는 승강이 끝에 근로복지공단의 요양급여 및 휴업급여를 승인받았다. 배달 대행업체 사장은 이에 불복하며 소송을 냈다. 그로부터 2년가량이 지난 2015년 10월, 법원은 배달 대행 배달원은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판사 차행전)는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ㄱ씨는 운영자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배달업무를 수행했지만, 배달 요청을 수용할지 여부는 자신이 결정했다. ㄱ씨의 수입은 배달한 건수라는 객관적으로 수행된 업무 실적의 결과로만 산정된다. ㄱ씨는 운영자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근로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았으며 산재보험에도 가입되지 않았다. 이런 점을 종합하면 ㄱ씨는 독립해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한 것이므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볼 수 없다.”

법률상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없다 보니 실제 사고가 나더라도 대책이 없다. 연장수당이나 야간수당·실업수당·퇴직금 등은 물론이고 산업재해 같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10대 청소년들이 ‘신종 배달’로 몰리고 있다. 각종 구인·구직 사이트에는 ‘청소년 가능’이라는 제목으로 배달 대행 구인 게시물이 수십 개씩 올라와 있다. 10대 처지에서는 “하교 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이 적고, 인력이 급한 배달 대행업주는 오토바이 타기를 즐기는 10대를 마다하기 어렵다.

배달 대행업체는 법률상 ‘특수고용 사업장’으로 분류된다. 음식 가맹점 10∼50곳으로부터 10만∼20만원 수수료를 받고, 배달원으로부터는 건당 10% 정도의 수수료를 뗀다. 구조상 더 높은 수입을 위해 더 많은 음식점과 제휴하기를 원한다. 업체가 대행하는 음식점이 많아질수록 관할 지역은 넓어지고 배달 거리는 길어진다. 배달 담당자는 여러 음식점의 음식을 배달한다. 같은 질의 서비스를 유지하려면 위험한 상황을 배달원이 오롯이 감내해야 한다. 대행업주는 위험부담 없이 중간 수익을 얻는다.

음식점 업주도 마찬가지다. 배달 직원을 별도로 채용하고 ‘관리’하는 부담, 노동법을 지켜야 하는 부담이 없다. 무엇보다 사고의 책임에서 면제된다. 배달 대행업체와 제휴 중인 서울 마포구의 한 음식점 업주는 “사고라도 나면 골치 아프다.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런 위험부담을 덜 수 있는 데다 필요할 때만 직원을 쓸 수 있어서 경제적이다. 같은 값이면 대행이 편하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보면 음식점과 배달 대행업체가 새로운 고용 형태의 서비스로 편익을 나누는 셈이다. 이에 따른 ‘위험’은 온전히 배달원에게 전가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연구위원은 “노동권 보호에 취약한 새로운 고용 형태”라고 평가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2015년 12월 보고서 ‘배달 앱 아르바이트, 어떻게 볼 것인가?’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신종 배달(대행업체와 계약)’ 노동자가 다른 형태의 배달원보다 더 열악한 근로조건에 놓여 있다.

이 연구소는 같은 해 11월10일~12월4일 동안 패스트푸드점이나 소형 음식점에 소속된 ‘기존 형태의 배달원’ 250명과 대행업체와 계약한 신종 배달원 200명을 대상으로 각각 고용 및 노동 실태를 설문조사했다. 그 결과, 서울 지역 배달원(‘기존’과 ‘신종’을 합친)은 일주일에 평균 5.6일을 일하는 생계형 노동자인데도 대체로 저임금과 4대 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그중에서도 열악한 정도가 더 심한 쪽은 ‘신종 배달자’들이었다. 산재처리 비중의 경우, 패스트푸드점과 소규모 음식점 소속 배달원이 각각 8.9%, 6.5%인 데 비해 배달 대행업체 계약자(신종 배달원)는 2%에 불과했다.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 가입률은, 패스트푸드점이 42.9%인 데 비해 배달 대행업체 32%, 소규모 음식점 25.4% 등이다.

기존 음식점에 고용된 배달 노동자가 겪는 문제(지각 시 벌금 물리기, 오토바이 수리비 물리기, 사고 시 자비로 치료하기)는 최소한 노동 행정기관이나 사법기관이 사업주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배달 대행업체가 고용하는 형태에서는 최소한의 법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배달 대행 노동시장의 실태, 고용구조, 노동환경에 대한 연구 역시 전무한 실정이다.

법률과 판결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

노동규씨(가명·19)는 서울 강남구에서 배달 노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학교를 그만두고 치킨집에서 배달원으로 일했다. 당시 근무조건은 하루 13시간 근무, 월 2일 휴무, 월 200만원이었다. 그러다 대행업체와 계약해서 일하게 되었다. 한곳에 얽매이지 않고 “하는 만큼 벌어간다”라는 친구의 말에 솔깃했다.

그러나 첫 달 노군이 손에 쥔 돈은 80만원에 불과했다. ‘콜’을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 기사 첫머리에 나오는 김준수씨의 경우는 대행업체가 ‘콜’을 배달원들에게 배정했다. 하지만 노씨와 계약한 대행업체는 배달원들에게 일괄적으로 ‘콜’을 보내고, 이를 먼저 낚아채야 수입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구조다. 일종의 경쟁 원리다. 이에 따라 노씨는 배달 도중에도 스마트폰을 예의 주시해야 했다. 가끔 콜이 울리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일을 시작한 지 3개월쯤 지나서는 아찔한 일을 겪었다. 무단횡단하던 사람을 피해 급브레이크를 잡다가 도로에 그대로 넘어져 몸이 쓸렸다. 그때 팔과 다리에 생긴 흉터가 여전하다. 사고 뒤에도 노씨는 별도의 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겨울철 눈이 내리고 그대로 땅이 얼어버리면 그야말로 “답이 없다”. 날씨가 안 좋을수록 콜이 늘고 그때마다 늦으면 안 된다는 압박을 받는다. 음식이 늦으면 고객에게, 음식점 업주에게, 배달 대행 사장에게 3연타로 욕을 들었다. 그때마다 “참고 넘겼다”.

2015년 12월21일 서울시는 한국노동사회연구원, 아르바이트청년권리보호협의회와 함께 ‘아르바이트 청년 권리보호포럼’을 열었다. 토론자로 참석한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최저임금보다 많은 임금을 받는다고 해도 이것만으로 노동조건의 보장 여부를 따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업무의 고위험성, 업무 강도 등을 따져볼 때, 안전하고 안정적인 노동조건이 보장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연구위원은 “IT 및 정보기술이 발전하면서 노동시장이 급속도로 유연해지고 있는 추세다. 국내의 기존 법률과 판결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 정부가 배달업 시장규제 정책, 특별 근로감독, 모니터링을 통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시사IN 송지혜2015년 12월21일 서울시 청년공간 무중력지대에서 ‘아르바이트 청년 권리보호포럼’이 열렸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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