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파리협정이 가리키는 미래


‘화석연료 시대’ 가고 재생에너지 몰려오네


기후변화에 취약한 개발도상국의 시선

 

거대한 전환이 시작됐다. 세계는 ‘교토의정서(1997)’ 시대를 지나 ‘파리협정(2015)’ 시대로 진입했다. 지금까지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하는 핵심 매뉴얼은 1997년 채택되어 2005년 발효된 교토의정서였다. 교토의정서는 2001년 미국이 탈퇴한 이후 사실상 무력화된 상태였지만, 이를 대체하는 무언가가 등장하지 않는 한 여전히 기후변화 대응 매뉴얼의 정본이었다. 2015년 12월12일, 대체 매뉴얼이 등장했다. 이날 채택된 파리협정(파리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결의된 합의문)은 ‘신기후체제’의 출범을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파리협정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먼저 교토의정서로 되돌아가야 한다. 복잡한 세부 사항을 덜어내고 보면, 교토의정서의 핵심 접근법은 선진국(교토의정서의 ‘부속서Ⅰ’ 국가)의 경우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감축할 의무를 진다는 것이다. 이들 국가는 2012년까지 1990년 대비 5%를 줄여야 한다고 교토의정서는 규정했다. 위에서부터 감축량을 할당하는 의무 부과 방식이다.

문제가 있다. 국제사회에는 이런 식의 ‘의무 부과’를 강제할 ‘위’가 없다. 국가를 뛰어넘는 세계정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고, 유엔은 그 비슷한 권위도 없다. 상호조약으로 서로를 묶고 감시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집주인과 세입자가 아파트 전세 계약을 맺었는데 계약을 최종 보장해줄 국가권력이 없다고 상상해보자. 집주인이 전세금을 들고 도망가도 처벌할 방법이 없으니 계약 자체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국가권력이 계약 준수 의무를 강제하는 국내 사회와, 중앙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국제사회는 이 지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난다.

국제사회에서 의무 사항을 부과하는 합의는 언제나 이런 ‘먹튀’와 무임승차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미국은 2001년 교토의정서 탈퇴를 선언했다. 미국의 도덕적 지도력에는 손상이 갔지만, 그게 다였다. 국제법 원칙으로 보면 조약의 가입과 탈퇴는 국가의 자유다.

이렇게 해서 세계는 진퇴양난으로 몰렸다. 온실가스가 기후변화를 불러왔다는 사실은 과학계가 합의한 사실이다. 2100년이 되기까지 기온 상승 폭을 적어도 2℃ 이내로 억제해야 한다는 과학계의 경고가 빗발치고 있었다. 이 기준을 맞추려면 210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75기가톤(Gt)으로 억제해야 한다. 현재 추세가 바뀌지 않는다면 2100년은커녕 앞으로 30년 안에 도달하는 수치다. 대규모 감축이 불가피한데, 결정적으로 그런 감축 의무를 각국에 부여할 강제력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감축 의무 부과를 골자로 하는 교토의정서는 이 대목에서 좌초했다.

기본 접근법은 ‘비용’이 아니라 ‘인센티브’

출구가 있을까. 국제법 연구자인 정서용 교수(고려대 국제학부)는 기후변화 국제 협상을 오래 추적해온 전문가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정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파리(협정)의 기본 접근법은 선진국이든 개도국이든 기후변화 대응이 절대로 ‘비용’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거꾸로 이게 각국에 ‘기회’가 되고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이 기회를, 인센티브를 어떻게 만들어줄 것이냐가 파리의 접근법이다.” 교토의정서에서 세계가 배운 것은, 강제력이 없는 상황에서 각국에 비용을 부과하려는 시도는 결국 실패한다는 사실이다. 파리협정은 거꾸로 접근했다. 기후변화라는 도전에서 어떻게 기회와 이익을 창출할지에 집중했다. 그렇게만 되면 국가들을 강제할 이유가 없다.

파리총회에서 주목받은 용어가 ‘INDC (Intended Nationally Determined Con- tributions)’였다. 각국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할당받는 대신 자발적으로 감축량 목표치를 보고했다. 한국 정부는 2030년 예상 배출량 대비 37%를 줄이겠다고 했다. 이 수치는 2005년 실제 배출량 대비 5.5% 감축에 불과해서 생색내기 논란이 일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Xinhua〈/font〉〈/div〉2015년 12월12일 각국 협상 대표들이 파리총회 본회의에서 신기후체제 수립을 위한 최종 합의문을 채택한 뒤 박수치고 있다.

INDC는 국내 언론이 주로 ‘자발적 감축 목표’라고 번역하지만, 정서용 교수는 “그보다는 ‘자발적 기여’가 맞는 번역이다”라고 말했다. ‘감축 목표’는 여전히 비용 부과의 뉘앙스가 강하다. 하지만 ‘기여’는 국가별로 감축에 기여할 수준을 알아서 설정하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 “접근법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다. 이제는 온실가스 감축이 의무가 아니라 기회가 되도록 할 것이기 때문에 국가별 감축량이 강제 조항이냐 아니냐는 본질이 아니게 된다. 국내에서는 감축량을 강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파리협정이 실패했다는 논평도 있는데, 완전히 거꾸로 본 것이다. 오히려 강제하면 실패한다.”

‘강제하면 실패한다’는 접근법은 낯설다. 교토의정서에서 온실가스 감축은 강제로 부과된 의무였고, 이 짐을 내가 덜 지고 타국에 더 넘기려는 전쟁이 기후변화 외교의 본질이었다. 중국을 선두로 한 개발도상국들은 이런 논리를 내세웠다. “서구 선진국들은 화석연료를 펑펑 써가면서 지구를 뜨겁게 만들었다. 이제 후발 국가가 경제 발전을 하려 하니 에너지를 쓰지 말자고 한다. 이것은 정의롭지 않다. 온난화에 역사적인 책임이 있는 서구 선진국이 감축량을 떠안아야 한다!” 이는 기후변화에 대한 ‘역사적인 책임’이라는 개념으로 정식화되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여럿 써낸 미국의 저널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책 〈코드 그린〉에서 자신이 중국에서 겪었던 일화를 썼다. 프리드먼은 2007년 중국의 ‘그린 카 대회’에서 연설하기로 했다. 그는 중국의 산업 엘리트들이 환경 이슈만 나오면 ‘역사적인 책임’ 문제로 미국을 공격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프리드먼은 이렇게 연설한다. “저는 오늘 여러분이 옳다는 말을 하러 왔습니다. 여러분 차례가 맞습니다. 마음껏 환경을 파괴하세요! 중국이 오염으로 숨 막혀 죽는 걸 막는 데 필요한 모든 청정에너지와 에너지 효율 도구를 우리가 발명해 여러분에게 파는 데 5년이면 족할 겁니다. 그쪽 산업에서는 우리가 여러분을 완전히 지배하게 되겠지요. 그러니 서두르지 말아주세요!”

이 연설은 기후변화 이슈의 패러다임 변화를 포착한다. 탄소 감축 이슈는 거대한 새 시장을 창출할 것이고, 늦게 참가할수록 손해가 될 것이다. 이런 세계에서는 누가 더 의무를 지느냐로 다툴 이유가 없다. 오히려 참여가 늦을수록 손해다. 문제는 이런 식의 패러다임 변화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느냐다. 아직은 분명히 화석연료가 저탄소 에너지보다 싸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015년 11월30일 파리총회 개막식에 참석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주석.

에너지 경제 분야를 연구하는 박호정 교수(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는 최근에 낸 책 〈탄소 전쟁〉에서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한다. 프레온 가스는 냉장고와 에어컨의 냉매, 스프레이 분무제 등으로 실생활에 널리 쓰이는 물질이었다. 이 프레온 가스가 오존층 파괴의 주범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1987년 국제사회는 프레온 가스 사용을 규제하는 몬트리올의정서를 채택한다. 그런데 프레온 가스를 생산하던 세계 최대 화학기업 듀폰이 몬트리올의정서를 적극 지지하고 나선다.

듀폰은 프레온 가스의 오존층 파괴 문제가 불거지자 대체물질 개발에 돌입했고, 몬트리올의정서 채택 시점에는 개발 직전 단계까지 와 있었다. 프레온 가스 사용을 규제하면 듀폰은 시장을 잃기는커녕 오히려 새 시장이 열릴 참이었다. 환경과 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몬트리올의정서는 성공적으로 작동했고, 국제 환경협력 사례로 손에 꼽힌다. 박호정 교수는 “듀폰 사례의 메시지는 단순하고 강력하다. 환경적인 요구와 경제적인 동기가 맞아떨어질 때 온실가스를 감축할 구속력 있는 국제 규범이 들어설 것이다”라고 썼다.

파리협정의 핵심 방향성은 탄소 감축에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고, 바꿔 말하면 시장 메커니즘을 전면 도입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탄소 배출이 지금보다 비싸지게 만들고, 저탄소 에너지 사용이 화석연료보다 유리하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초기 파이낸싱(자금 조성)이 중요하다.” 정서용 교수가 내놓은 답이다. 파리협정은 2020년까지 연간 100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모으기로 했는데, 기후변화로 피해를 입은 개발도상국 지원과 저탄소 에너지 기술의 초기 투자비용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륙하는 시장에는) 초기 자본이 필요하니까 그런 식으로 마중물이 들어가게 된다. 시장 형성을 위한 제도를 디자인해주고 초기 자본을 공급하자는 구상이다.”

또한 개도국 지원 비용은 주기적인 ‘이행 점검’과 맞교환된다. 세계정부가 없는 국제사회에서 탄소배출량을 힘으로 규제할 방법은 없지만, 대규모 기금이 조성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각국이 내놓는 ‘자발적 기여’가 적절한 수준인지, 제시한 목표치를 제대로 지켰는지를 평가할 수 있게 된다. 이행 점검과 기금이 맞교환되기 때문에 각 국가들도 배출량을 줄일 유인이 생긴다. 파리협정이 연 1000억 달러 규모의 기금 조성을 내건 이유다. 새로운 체제로 전환하는 데는 초기 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탄소 가격’의 시대도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탄소가 환경 파괴라는 비용을 발생시키므로 그에 걸맞은 가격을 물리자는 발상인데, 활발히 논의되어 이제는 거의 정착 단계다. 대표적으로 ‘탄소세’를 물리는 방안과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있다.

저탄소가 필수인 세상이 오고 있다

한국은 2015년 1월12일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을 개장했다. 정부가 기업에 일정량의 ‘배출권’을 할당해주고, 그 배출권을 기업들이 주식처럼 서로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저탄소 기술을 도입한 기업은 그만큼 배출권을 내다팔아 돈을 벌 수 있다. 탄소 배출이 많은 기업은 배출권 구입비만큼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현재까지는 활성화되었다기보다는 개점휴업에 가까운 상태다.

탄소에 가격을 매긴다는 발상은 지금은 낯설지만 조만간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중국은 지역별로 배출권 거래제를 설계해 시험 가동 중이고,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2017년 배출권 거래제 전면 시행을 공약했다. 유럽연합(EU)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배출권 거래 시장을 운영한다. 미국도 북동부 주들과 서부 캘리포니아 등 산업과 경제의 중심지인 주들은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했다. 시카고 기후거래소는 아예 세계 각지에서 발행되는 다양한 탄소배출권을 사고파는 장이다. ‘탄소 가격’이 주요 시장을 포괄하는 글로벌 표준이 될 경우, 세계에서 가장 구매력이 큰 시장에 진입하려면 저탄소를 필수로 장착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진입 장벽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작동한다. ‘탄소 가격’이 높아질수록 저탄소 에너지 기술 개발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고 새로운 시장이 탄생할 공간도 넓어진다. 태양광과 같은 근미래 에너지가 활성화되고, 수소에너지와 같은 먼 미래의 에너지 개발도 자극받을 수 있다(30~31쪽 기사 참조). 기후변화를 경제학적으로 접근하는 연구자들은 이렇게 형성되는 저탄소 경제의 규모가 세계 GDP의 2%에 해당하리라고 추산하기도 한다.

듀폰이 그랬듯, 기후변화 위기에 직면한 글로벌 석유 기업들이 ‘탄소 가격’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다. 박호정 교수는 책에서 “기업 내부적으로 비용 편익을 분석할 때 엑슨모빌은 t당 60달러, 브리티시페트롤럼(BP)은 40달러를 탄소 비용으로 반영한다”라고 소개했다. 기업들이 ‘탄소 가격 시대’를 피할 수 없는 대세로 보고 준비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패권 국가가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강력한 증거다. 교토의정서에서 최대 골칫덩이는 미국과 중국이었다. 미국은 부시 정부 시절 국내 산업 피해를 이유로 교토의정서를 탈퇴했고, 중국은 개발도상국 지위와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 논리로 자국의 폭증하는 탄소 배출에 면죄부를 요구했다. 이 두 골칫덩이가 기후변화 의제를 주도하는 국가로 재빨리 변신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만날 때마다 거의 기후변화 대응을 의제로 다루었다. 오바마 2기 첫해이자 시진핑 집권 첫해인 2013년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기후변화 문제 공동대응에 합의했다. 2014년 11월에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중에 만나 기후변화 공동선언을 냈고, 2015년 9월에는 공동성명을 냈다. 파리총회가 진행 중이던 11월30일에도 두 정상은 따로 만나 “성공적인 합의가 도출되도록 협력한다”라고 발표했고, 회의가 막판 진통을 겪던 12월11일에도 전화 통화로 협력 의지를 확인하며 타결을 압박했다. 일련의 회담에서 양국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과 탄소배출권 거래제 본격 시행 등의 계획을 잇달아 발표했다.

확 달라진 미국과 중국의 ‘기후변화’ 대응 태도

미국과 중국은 이미 나름의 계산이 섰다. 미국은 셰일오일 혁명 이후 온실가스 감축 부담이 크게 줄어들었다. 현재 추세에서 별다른 추가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이번에 파리에서 내놓은 ‘자발적 기여’ 목표치(2025년까지 2005년 대비 26~28% 감축)는 달성이 가능할 전망이다. 임기 만료를 앞둔 오바마 행정부는 더 공세적이다. 2015년 8월에 최종안이 나온 ‘청정전력계획’에서 재생에너지 발전 목표치를 초안의 22%에서 28%로 끌어올렸다. 셰일오일이 화석 에너지에서 저탄소 에너지 시대로 가는 ‘가교 연료’라 될 것이라던 기존 노선을 사실상 파기하면서, 미래형 저탄소 에너지로 곧바로 넘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중국의 태도도 달라진 지 오래다. 토머스 프리드먼이 야유했던 ‘중국이 오염으로 숨 막혀 죽는’ 상황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베이징 등 중국의 대도시와 산업 중심지의 대기 상태는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아서, 생활수준이 높아진 중국의 도시 거주자들은 점점 더 대기환경의 위협에 불만을 느끼고 있다. 이는 일당독재 시스템을 유지해야 하는 중국 공산당에도 거대한 도전이다. 더욱이 패권 국가로의 발돋움을 노리는 중국은 에너지 공급 문제에 대단히 민감하다. 신기후체제가 성공리에 안착하고 에너지 시장이 저탄소 에너지 중심으로 재편될 경우, 그 방향을 선점하는 것은 사활이 걸린 과제가 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아직 가보지 못한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 파리협정의 핵심 전략은 탄소 감축이 의무가 아니라 기회가 되는 세상을 디자인하자는 것이다. 여전히 고비는 많다. 매년 1000억 달러 기금 조성이라는 목표는 각국이 또다시 무임승차의 유혹을 느끼게 한다. 선진국과 개도국의 이해관계는 여전히 일치시키기 힘들다. 화석연료 이해관계 블록의 힘에 막혀 ‘탄소 가격’이 끝내 좌초할 수도 있고, 재생에너지 기술 개발이 기대만큼 빠르게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모든 노력보다 기후변화의 파국이 빨리 도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숱한 위험 요소에도 불구하고, 변화는 이미 진행 중이다. 너무 거대해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뿐이다.

 

 

 

박스 기사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이명익〈/font〉〈/div〉

"시진핑이 판을 완전히 새로 짰다"

고려대 정서용 국제학부 교수(사진)는 1996년 미국 유학 시절부터 기후변화 문제를 연구해왔다. 파리총회에도 자문 역할로 동행했다. 출국 직전이던 2015년 12월3일과 귀국 후인 12월18일 두 차례 만나 신기후체제의 등장 배경과 의의를 물었다.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은 언제부터 등장했나?
국 제사회에는 중앙권력이 없기 때문에 자기가 싫으면 안 해버리곤 한다. 이걸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가 늘 문제였다. 교토의정서는 선진국에 감축 의무를 강제 부과하는 접근법이지만, 거기에 ‘교토 메커니즘’이라고 해서 시장 메커니즘을 심어뒀다. 그게 배출권거래제, 청정 개발 메커니즘(CDM:선진국이 개도국에 기술과 자본을 투자해 온실가스를 줄이면 그를 선진국의 감축량으로 인정해주는 제도), 공동 이행(선진국끼리도 타국에서 줄이는 온실가스만큼 감축을 인정) 등이다. 이 셋이 맛보기로 들어가 있었다. 그 접근법이 파리 이후에는 대세로 자리 잡은 거고.

대세가 되는 과정은?
크게 보면 EU(유럽연합)가 ‘톱다운(위에서 아래로)’ 방식으로 접근하고 미국이 ‘보텀업(아래에서 위로)’ 방식으로 접근했다. 교토의정서에 시장 메커니즘을 집어넣은 것도 사실 미국이고. 교토까지는 톱다운이 대세였다면, 2009년 코펜하겐에서 보텀업으로 접근해야 풀린다는 합의가 형성되었다. 코펜하겐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약이 아니라 합의에 그쳐서 실패라는 평을 받는데, 나는 이걸 ‘성공적 실패’라고 부른다.

중국의 태도 변화가 놀랍다.
5년 전까지만 해도 개도국 지원금을 당근으로 중국을 엮어야 한다고 나도 생각했다. 이제 중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다. 단순히 신기후체제에서 어떤 혜택을 받겠다가 아니라 글로벌 경영을 노린다. 기후변화를 그 무대로 생각하고 들어온다. 시진핑 주석이 판을 완전히 새로 짰다. 이전 기후변화 협상에서는 선진국과 개도국이 ‘역사적 책임’을 놓고 계속 싸웠는데, 이번에 파리에서는 그게 많이 줄어들었다. 패러다임이 바뀌었는데 아직도 저 얘기냐, 해버린다.

산유국은 반대하지 않나?
바꿔 생각하면 기후변화가 중동의 어젠다가 될 수 있다. 화석연료는 결국 고갈된다. 중동 산유국이 돈은 정말 많은데, 미래 먹을거리가 있어야 한다. 글로벌 저탄소 시장이 형성될 때 선제 투자를 하면 중동의 미래 전략이 될 수 있다.

중앙권력이 없는 국제사회에서 협력을 어떻게 창출하는가 하는 질문은 흥미롭다.
기 존 국제법 메커니즘은 몇백 년 된 관습법을 성문화하고 의무를 부과하는 식이었다. 국제법의 99%가 ‘분쟁의 국제법’이다. 기후변화는 다르다. 이건 새로운 의제라 관습법도 없고 아예 다른 차원의, ‘협력의 국제법’이다. 기후변화가 국제법에서도 선도적 성격이 짙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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