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이계덕 상경은 “나의 양심과 정치적 견해에 반하는 명령을 받는 전경 생활을 견디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위는 시위 현장의 전경.
수화기 너머 이계덕 상경(22)의 말은 너무 빨라서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천천히 말을 못해요. 압력을 주는 사람이 많아서. 한두 명씩 돌아가며 저를 감시해요.” 조금만 여유 있게 말해달라는 기자의 부탁에도 이 상경은 여전히 숨가쁜 속도로 말을 이었다. 지휘관이 곧 전화까지 금지할 것 같다고도 했다. 이미 외출·외박·인터넷·면회가 두 달간 금지된 상태였다. 그 말을 한 7월11일 이후 이 상경에게서 전화는 더 이상 걸려오지 않았다.

이계덕 상경. 서울경찰청 제4기동대 소속.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 6월12일, 전투경찰 대신 육군으로 복무하게 해달라며 ‘전환복무 해제 행정심판’을 청구해 화제가 됐던 현역 전경이 바로 그다.
당시에는 그가 촛불집회 진압에 참여하고 나서 전경 생활에 회의를 느껴 전환복무 해제를 신청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것은 기자들의 작문이다”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전·의경은 본인의 정치적 견해와 양심에 반하는 정치 상황에 개입될 수밖에 없다. 촛불집회가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되기는 했지만, 그런 생각은 이미 입대 때부터 해오던 것이다.” 이 상경은 “촛불집회 진압도 안 나가본 사람이 촛불 핑계로 군 생활 편하게 해보겠다는 것”이라는 일부의 곱지 않은 시선에 대해 어처구니가 없다는 목소리였다.

행정소송을 낸 직후 이 상경의 군 생활은 심하게 요동쳤다. 일지만 따라가도 숨이 찰 정도다. 이 상경은 근무태만과 명령불복종 등을 이유로 6월24일부터 7월8일까지 ‘15일 영창’이라는 중징계를 당했다. 이 기간에 경찰은 동성애자인 이 상경이 동료 전경 13명을 성추행했다며 구속영장도 신청했다.
 
영창·구속영장·대외접촉금지 ‘3중 처벌’

영창에서 복귀한 직후인 7월9일부터는 외출·외박·인터넷·면회 두 달 금지라는 추가 징계가 떨어졌다. 현재 이 상경은 가족과 변호사만 면회가 가능하다. 경찰은 징계 사유를 ‘무리 야기 및 부적절한 행동’이라고만 말할 뿐 어떤 ‘부적절한 행동’이 있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영창 복귀 이후 이 상경은 몇 차례 동료 전경으로부터 구타를 당했다. 그 중 한 건에 대해서는 가해자가 영창행 처벌을 받았지만, 경찰은 “이 상경이 선임에게 욕설을 하는 등 폭행을 유발했다”라며 추가 징계를 검토 중이다. 이 상경의 삼촌 이 아무개씨(46)는 “경찰이 계덕이를 정신병자로 몰고 가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휘관이 계덕이 이야기를 하면서 은근슬쩍 기억하기도 힘든 정신질환 이름을 언급하곤 했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연합뉴스전투경찰은 신병훈련소(위)에서 ‘차출’된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시민과 맞서야 할 때도 있다.
이쯤 되면 ‘말려 죽이기’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인권운동가들은 경찰이 괘씸죄를 적용해 ‘3중 처벌’을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구타도 3~4일 영창을 다녀오는 게 보통인데 근무태만으로 영창 15일은 누가 봐도 가혹하다. 그것도 모자라 영창 안에 있는 사람을 두고 구속영장을 신청한 건 코미디다”라고 말했다. 전·의경폐지연대는 이 상경을 두고 경찰이 취한 일련의 징계를 보복이라 규정하고, 계속되는 징계와 철저한 고립 시도가 이 상경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다고 주장했다. 전·의경폐지연대는 7월17일 해결이 시급한 인권침해가 발생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신청’을 접수했다.

이 상경은 징계의 강도보다도 그 절차에 더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였다. “나를 하루 외박을 보내놓고 동료 전경에게 나와 관련한 소원수리를 일괄로 받았다. 어떻게든 징계를 할 ‘건수’를 찾았다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는 특히 성추행 소송에 관해서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성추행이 발생했다는 시점이 지난해 8월인데, 그때 나는 ‘커밍아웃’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내 성적 지향을 꽁꽁 숨겨야 할 상황이었는데 성추행이 말이 되나.” 성추행 관련 고소는 동성애자에 대한 무지와 편견의 소산이라는 얘기다.

서울경찰청은 대부분의 질문에 공식 견해를 밝힐 수 없다고만 답했다. “우리는 실명도 안 부르고 항상 이 모 상경이라고만 부른다. 어쨌든 우리 식구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호를 해줘야 한다”라는 게 입을 열지 않는 이유였다. 하지만 동료 전경의 불만이 상당하다는 얘기는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군인 신분으로서, 인권에 앞서 충실히 군 생활을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 다른 대원의 불평불만이 많았다.” 이 상경이 부대 내에서 ‘고문관’ 같은 취급을 받았고, 그래서 경찰로서도 마냥 선처할 수만은 없었다는 주장인 셈이다.

“나는 고문관 맞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상경이 군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것은 주위 사람은 물론 본인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활동하는 등 사회 활동에 적극적이었는데,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이때 만난 이 상경을 이렇게 회상했다. “적극적이긴 했지만 자기중심적인 면도 강했다. 신념이 강하면서도 자기 세계관이 너무 일찍 자리잡혀서 의사소통에는 서툴렀다.” 그는 고교 시절부터 사회 활동에 눈을 뜬 ‘조숙한 활동가’ 중 그런 문제를 갖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덧붙였다. 이 상경의 삼촌 이 아무개씨는 “동생한테도 욕 한번 안 하고 자란 착한 놈이다. 다만 어려서부터 영웅심리는 좀 있었다”라고 조카의 성격을 회상했다.

“나는 ‘고문관’ 맞다. 여기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민감하게 들릴 수 있는 질문에도 이 상경의 대답은 차분했다. 양심이 허락하지 않고 노력해도 적응이 불가능한 곳에서 ‘고문관’으로 살아가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이 상경이 고문관이라 치자. 고문관은 처벌해야 하는 거냐. 지금까지 잘 지내다가, 행정소송 내니까 갑자기 고문관이니 적응을 못하니 이야기하는 걸 누가 곧이곧대로 믿겠나”라며 고개를 저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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