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영이(가명)는 고시원을 전전하며 산다. 한때는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떠난 이야기를 웃으며 한 적도 있지만, 그처럼 단란한 기억은 이제 남의 이야기가 되었다. 자신을 한 번도 남성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 은영이는 가족에게 여성으로 성을 바꿀 계획을 털어놓은 뒤 집을 나와야 했다. 지금은 어머니만 가끔 고시원에 찾아올 뿐이다.

그녀와 전화통화를 하려면 그녀가 ‘이모’라고 부르는 고시원 주인의 휴대전화로 걸어야 한다. 그녀에게는 지금 땡전 한푼 없다. 버스비조차 없어 밖으로 나가 일자리를 구할 형편이 아니다. 어쩌다 주변 사람을 만나면 그녀는 어디 일할 곳 없냐고 절박하게 묻곤 한다.

한때는 ‘트랜스젠더 바’에서 일하기 위해 무척 애쓴 적도 있다. 돈도 돈이지만 그녀는 ‘언니’들과 함께 있고 싶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언니들과는 함께 공유할 일이 많았다. 구박을 받더라도 그들과 함께 있으면 위로가 됐다. 하지만 그녀가 트랜스젠더 바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는 어려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트랜스 바에서 일하기에 그녀는 너무 ‘여자답지 않게 생겼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가 트랜스젠더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보통 여자보다 더 여자다워야 한다. 하리수처럼 더 예쁘고 여자다운 경우에만 주변의 연민과 동정을 받고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 ‘저렇게 예쁘니까’ 당연히 성전환을 해야 한다고 납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가 김비씨의 책 제목처럼 ‘못생긴 트랜스젠더’를 향해 우리 사회는 가차없다. 못생긴 주제에 왜 성전환을 하느냐고 질타한다.

트랜스 바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이 어렵게 되자 그녀는 식당 종업원이나 자동차 정비 따위 다른 일자리도 알아보았다. 그녀는 자동차와 관련한 여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지난번 총선 때는 종로구에서 출마한 레즈비언 후보 최현숙씨의 선거 유세차 운전도 도맡아 했다. 하지만 어디를 가더라도 그녀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남자를 구하는 곳에서는 화장을 지우라 했고, 여자를 구하는 곳에서는 꾸며도 ‘남자 티’가 너무 난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성전환 호르몬 주사를 맞으며 몸이 변하기 시작한 그녀가 맞춤하게 끼어들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돈벌이가 바로 TV다. 때마침 한 케이블 TV에서 성 소수자의 삶을 리얼리티 쇼로 다루는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출연자를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출연료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한푼이 급하다. 그녀는 모든 트랜스젠더가 그렇듯 자기 삶도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팔릴 만하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트랜스젠더를 상품처럼 여기는 미디어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 가운데 무엇이 상품 가치가 있는지 날마다 되물어야 하는 사회에서 산다. 그렇게 팔 수 있는 것 중 마지막이 사생활, 즉 개인의 이야기다. 우리 주변에는 ‘팔릴 만한 삶’을 낚아채어 선정적으로 방영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미디어 산업이 있다. 불륜의 현장을 덮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부부가 나와서 서로 사생활을 까발리거나 쌍욕을 퍼부어대는 프로그램 등등. 이들은 상품 가치가 있는 이야기를 향해 아귀떼처럼 달라붙는다.

사회에서 완전히 배제된 성 소수자, 에이즈 감염인, 장애인 등 소수자의 삶이 미디어에게는 좋은 먹잇감이다. 허울은 이들의 인권을 생각하는 인간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카메라가 관심을 갖는 것은 언제 첫 섹스를 했는지, 언제 배신을 당했는지, 그러면서 어떻게 타락했는지에 대한 것뿐이다. “팔 것이 없으면 너의 삶이라도 팔아라.” 이것이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인간’으로 취급되는 방식이다. 먹고살 길이 막막한 은영이도 그 유혹 앞에 서 있다.

기자명 엄기호 (‘팍스로마나’ 가톨릭지식인문화운동 동아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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