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는 지역주의 기초 위에 세워진 승자독식 구조다. 대통령 선거는 1% 차이로도 당락이 갈린다. 결과적으로 2등 이하에 투표한 유권자가 50%를 넘더라도 의미가 없다. 국회의원 선거 역시 마찬가지다. 소선구제 아래에서 2등과 3등은 의미가 없다. 현재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야당이 주장하고 있지만 관철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설사 채택한다고 하더라도 여야가 지역구 의원 수 증원만큼 축소하기로 합의한 비례대표 의석수 내에서 제한적인 의미만 있을 뿐이다. 이처럼 지역주의와 소선구제가 버티고 있는 양당 구조 속에서 여야의 대표 정당은 기득권을 강화하고 이들의 공천은 곧 당선의 보증수표가 된다. 또한 당권파가 되면 다시 공천을 받아 다선 국회의원이 되기가 쉽기 때문에 직업적 정치 귀족이 탄생하곤 한다. 대법관, 검찰총장을 지낸 사람들도 마지막 출세 코스로 국회 진출을 꿈꾸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구조에서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했다. 야권 분열의 방아쇠를 당긴 셈이다. 나머지 호남권과 수도권 의원들은 탈당을 해야 할지 남아야 할지 계산하기에 바쁘다. 부모는 이혼하고 자식들은 가출해 뿔뿔이 흩어지는 집안과 같은 게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의 내부 사정이다.

총선에서 여당 200석 차지하고, 결국 개헌으로 치닫나

그러나 안철수 의원이 탈당한 주된 이유는 자신이 요구하는 혁신전당대회를 거부한 문재인 대표에 대한 반감이다. 당이 싫어서라기보다 사람이 싫어서 나간 것이다. 야권의 대통령 후보가 될 가능성이 사라진다는 위기감이 더 정확한 원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안 의원의 신당은 호남 의석을 나누어 차지할 뿐 수도권에서는 야당 참패의 원인을 제공할 것이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한 석도 차지하기 힘들 공산이 크다. 이런 추세라면 총선에서 여당이 200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고, 이 경우 개헌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권력을 장기화할 구조 개편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야권의 분열은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에서 그 씨앗이 뿌려졌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분당으로 인해 졸지에 야당이 되어버린 새천년민주당은 그 반감으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에 동참했다. 그 직후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를 반대하는 여론에 힘입어 과반 의석을 넘어서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내분의 불씨는 여전히 야권 전반에 남아 있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중진 가운데 당시의 분당과 지금의 분열 상황에서 자유로울 정치인은 별로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의원들은 탈당의 변에서 한결같이 ‘새정치’를 하겠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누가 보더라도 이들의 관심사는 자신의 공천과 당선뿐이다. ‘새정치’를 외치지만 무엇이 새로운 정치인지 제시하지 않은 채 탈당과 창당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안철수 의원 역시 ‘새정치’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바도 없다. 본인 마음에 들면 새정치이고,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구태 정치라고 비판하는 격이다. 국민이 원하는 정치를 하지 않고 자기 정치를 하는 것이 독재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 정치를 비판하면서 자신은 과연 소통 정치를 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이는 문재인 대표도 마찬가지다. 법조인 출신이 갖는 한계 때문일까. 한국 정치의 개혁을 위해 정말 진지하게 노력을 했는지 스스로 살펴야 한다. 민주 사회에서의 리더십은 소통과 공감 능력에서 나오지 고집과 독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당내 분열을 수습할 능력이 없으면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것도 하나의 길이다.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한 신당파의 정강·정책은 새정치민주연합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정치 이념이 달라서 결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기야 대한민국 선거에서 정강·정책이나 공약이 의미를 갖는 것은 수도권 일부 지역일 뿐이다. 지역주의에 함몰되어 공천이 곧 당선인 지역이 대부분인 현실에서 공약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영남 패권주의에 찌든 정치 현실을 타파해야 할 야당 정치인들이 모두 호남 유권자를 상대로 정치 개혁을 약속하는 이상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을 바꾸지 않는 개혁은 공염불이다. 자질 없는 의원을 퇴출하는 것과 함께 선수 제한을 통해 다선 귀족 정치인을 자동 퇴출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다. 1980년대 처음 연방의회에 진출한 독일 녹색당 소속 의원들은 월급의 절반을 당비로 냈고, 비례대표 임기를 2년씩 교대했다. 정권 교체보다 자신의 국회의원 당선을 더 중요시하는 인물들이 개혁 정치를 표방하는 기만적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기자명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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