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철 박사의 여행심리학

① 사분면으로 보는 여행심리학 입문

② 액티비티-내가 감당할 수 있는 짜릿함의 한계는?

③ 역사 유적-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틀림없이 맞는 곳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이 자주 듣는 조언이다. 가는 곳의 역사와 문화와 즐길 거리를 미리 알고 떠나는 여행과 준비 없는 여행은 만족도가 다르다.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나 자신에 대해서도 유효하다. 나를 알고 이해하는 만큼 여행의 가치가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여행지를 공부하는 만큼 나 자신을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나와 여행의 궁합’은 의외로 정확히 맞추기 어렵다.

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나와 여행의 궁합을 연구하는 심리학의 한 갈래가 있다. ‘여행심리학’이라는 낯설면서도 흥미로운 이름으로 불린다. 2016년 새해 계획을 세우면서도 여행은 어쩐지 나랑 어울리지 않는다며 제쳐두는 당신을 위해, 〈시사IN〉이 새 연재를 준비했다.

필자인 김명철은 심리학 박사(성격심리학)다. 500여 일에 걸쳐 12개국을 여행한 경력이 있다. 심리학과 여행학, 그리고 본인의 여행 경험을 종합해 ‘김명철 박사의 여행심리학’을 연재한다.

 

호세는 나보다 여섯 살 정도 어린 캐나다 남자다. 호세와 나는 방콕을 출발해서 타이-캄보디아 국경까지 가는 승합차의 승객이었다. 우리는 휴게소 식당에서 빠르게 친해진 뒤 캄보디아 국경에서 빠르게 작별을 고했다. 그와 나는 2주 정도가 흐른 뒤 라오스의 왕위앙에서 다시 만났다.

호세는 그 2주 사이에, 시엠레아프의 앙코르 와트를 관광하고, 캄보디아 수도인 프놈펜을 들러 오토바이로 누빈 뒤, 비행기를 타고 타이의 끄라비에 내려 푸껫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광란의 보름달 파티를 즐기고 불붙인 사다리로 줄넘기를 하는 사람들의 동영상을 찍은 뒤, 다시 끄라비로 나와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가, 호찌민으로 날아가서 베트남 남부를 두루 돌아보고, 육로로 라오스 국경을 건너 왕위앙에 이른 것이었다. 지독한 시간에 뜨고 내리는 저가 항공기를 몇 번이나 갈아타면서. 깊은 애정을 담아 평하자면 ‘짐승 같은 여행’이라 할 수 있다.

ⓒ연합뉴스튜빙은 큰 고무 튜브를 타고 두 시간 정도 강을 떠다니는 활동이다.

 

왕위앙에서 다시 만났을 때 호세는 감기에 걸린 상태였다. 그는 내게 “너 ‘튜빙’은 했어?”라고 물었다. 튜빙이란 큰 고무 튜브를 타고 강을 떠내려가는 액티비티다. 차가운 강물에 몸을 담근 채 두 시간 정도를 떠내려가는 튜빙이 감기 환자에게 적합할 리가. 그런데도 우리는 다음 날 튜빙을 나갔고, 호세는 밥 딜런을 흥얼거리며 튜빙을 즐겼다. 오히려 냉수 반신욕에 호되게 당한 것은 나였다. 호세는 “티셔츠를 벗어봐. 그럼 태양을 직접 받아서 따뜻할 거야”라고 가르쳐주었다.

에이미는 호세와 여러 면에서 다른 여행자다. 내가 에이미를 만난 곳은 인도 바라나시의 유명한 베이커리 식당이었다. 그녀는 아시아인처럼 보였고 삭발을 한 상태였다. 수수한 옷을 입어서 꼭 스님 같아 보였다. 서양인들은 조용히 혼자 앉은 아시아인 수행자에게 말을 잘 붙이지 못한다. 하지만 아시아인이고 불교 수행자에 대한 신비주의에 묶여 있지도 않은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알고 보니 에이미는 베트남계 오스트레일리아인이었고, 불교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다. “여행을 나왔으니 머리카락을 잘라볼까?”라는 단순한 이유로 삭발을 했지만, 그러고 나니 인도인들이 자기를 스님 취급해주는 것이 좋았다. 에이미는 홀로 몇 달 동안 인도를 여행 중이었으며, 바라나시에만 몇 주째 머물고 있었다. 나는 “바라나시는 뭐가 좋아?”라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에이미는 “가트에서의 삶이지”라고 답했다.

가트란 힌두교도들이 신성시하는 여러 강이나 호수의 둔치로, 인도인의 삶과 종교의 중심이 되는 문화적 구조물이다. 에이미가 이야기하는 ‘가트에서의 삶’이란 가트에서 펼쳐지는 삶의 변화무쌍함과 다채로움 그 자체였다. “지난주에만 해도 가트에는 축제로 사람들이 들끓었어. 그런데 이번 주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즈넉하고 평화롭다고. 정말 멋지지 않아? 매일 매일이 새롭단 말이야.” 에이미는 힌두교의 중심지에서 펼쳐지는 문화와 삶의 조용한 변주를 즐기며 홀로 바라나시에 머물러 있었다. 호세와 에이미는 무척 다르지만 둘 다 만족스러운 여행을 만끽했다.

ⓒ연합뉴스힌두교 최고의 성지로 꼽히는 인도 바라나시의 풍경.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여행도 달라진다

행복한 여행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성격과 가치관을 잘 이해하고, 여행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다양한 경험을 이해하여, 여행과 나 사이의 ‘기가 막힌 궁합’을 만들어내야 한다. 핵심적인 질문은 “나는 왜 여행을 떠날까?”라는 것이다. 여행심리학이라는, 여러분께 낯설게 들릴 학문이 이 주제를 다룬다.

이에 대한 연구 가운데 권위 있는 것으로는 자기 내면에 집중하는 여행자와 타인 및 환경에 중점을 두는 여행자를 구분하는 스탠리 플로그(Stanley C. Plog)의 연구, 그리고 친숙성을 중시하는 여행자와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추구하는 여행자를 구분하는 에릭 코언(Erik Cohen)의 연구가 있다. 플로그와 코언의 구분법은 각각 성격심리학의 ‘외향성’과 ‘개방성’을 통한 여행 동기 구분법이라 할 수 있다. 즉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와 우리가 만족을 느끼는 여행의 양상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외향성·내향성은 심리적 에너지 수준의 차이로 발생하는 성격의 차이다. 외향적 성격을 가진 사람, 즉 외향인은 심리적 에너지 수준이 높다. 이들은 신경계가 자극을 받아서 각성된 상태를 선호한다. 반면 내향인은 심리적 에너지 수준이 낮고, 신경계가 지나치게 흥분된 상태를 불편해한다. 외향인은 지루한 일상과 답답한 인간관계에서 탈출해 신나고 자극적인 경험과 강한 육체적 활동, 새로운 사람들과의 열렬한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여행이 어울린다. 반면 내향인은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과 인간관계에서 탈출해 평온함을 느끼고 친밀한 소수와 맺는 알찬 사회적 관계를 추구하는 여행이 어울린다.

개방성은 새로운 지식, 아이디어, 가치, 사상, 감정, 행동에 ‘열려 있는’ 정도를 뜻하는 성격 특성이다. 개방성이 높은 사람은 낯선 것에 관용과 호기심을 보이며,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찾아다닌다. 반면 개방성이 낮은 사람은 친숙한 것에 더 끌린다. 이들은 해보지 않은 일, 먹어보지 않은 음식, 가보지 않은 곳의 위험성에 마음을 많이 쓰고 거북해한다. 개방성이 낮은 사람은 여행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개방성이 낮은 여행자는 고향에서 가깝고, 문화적 차이가 적고, 안전하고 깨끗한 여행지를 찾아내서 몇 번이고 다시 방문하며 만족스러운 여행을 즐긴다.

호세는 외향인 여행자의 전형적인 사례다. 반면 에이미는 호세에 비해 훨씬 내향적인 여행자다. 하지만 에이미가 개방성마저 낮은 것은 아니다. 개방성은 본질적으로 이질적 문화에 접촉하고 새로운 지식과 현상을 탐사하는 특성을 갖는 여행과 밀접하다. 에이미는 내향적이지만 개방성이 높은 여행자다.

외·내향성과 개방성을 조합하면 위 〈그림〉과 같은 사분면을 그릴 수 있다. 외향적이며 개방성이 높은 사람(1사분면)에게 좋은 여행은 문화적 차이가 크고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여행지에서 흥미롭고 짜릿한 경험을 하며 새로운 친구를 찾는 여행이다. 내향적이고 개방성이 높은 사람(2사분면)은 이국적인 문화 유적지나 마을을 찾아다니며 개인과 사회와 역사에 대해 성찰하기를 즐긴다. 내향적이고 개방성이 낮은 사람(3사분면)은 조용한 휴양지나 작은 마을에 오래 머무르며 푸근하고 아늑한 느낌을 받을 때 만족감을 느낀다. 외향적이고 개방성이 낮은 사람(4사분면)은 보다 친숙한 문화권이나 유명한 리조트 관광지를 여행하며 신나는 활동을 즐기고 유쾌한 친구들을 많이 만나볼수록 즐거워한다.

당신이 소심하고 새로운 환경을 무서워한다고 해서 ‘나는 여행에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단지 당신과 어울리지 않는 여행(이를테면 1사분면 여행)에 덴 것뿐일지도 모른다. 성격심리학과 여행 연구를 조합한 여행심리학의 도움을 받으면, 당신도 얼마든지 자신에 어울리는 여행을 찾아낼 수 있다. 외·내향성과 개방성을 척도로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나에게 어울리는 여행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외·내향성과 개방성은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성격 특성이다(아래 설명과 함께 자가진단 테스트를 해보자).

자신의 외·내향성과 개방성을 파악했다면 좋은 여행을 위한 준비를 절반은 끝낸 셈이다. 이제는 나머지 반쪽, 즉 ‘여행의 다양한 요소들’에 대해 생각할 때다. “나는 어떤 여행을 즐기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았다면, 이제 “나는 여행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에 답해보자. 이후의 연재에서는 다양한 여행의 요소들을 살펴보고, 각각이 어떤 사람에게 더 큰 만족을 줄 수 있는지, 그리고 사람에 따라 각 요소를 어떤 식으로 즐기면 좋을지, 나의 여행 경험과 여행심리학을 도구 삼아 알아볼 것이다.

 

독자 여러분이 자신의 외·내향성과 개방성을 파악해볼 수 있는 간단한 테스트를 소개한다. 아래는 성격 5요인 이론의 연구자 가운데 한 명인 루이스 골드버그가 만든 자가 측정용 5요인 테스트다.


먼저 아래의 10개 문항에 솔직하게 응답해보자. 그다음 내향성·외향성 요인과 개방성 요인별로 여러분이 체크한 점수를 합산한다. 마지막으로 요인별 총점을 5로 나누어 평균을 구한다. 이것이 여러분의 내·외향성과 개방성 점수다. 만약 개방성 점수가 3점이라면 여러분은 개방성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사람이다. 반면 내·외향성 점수가 4.2점이라면 여러분은 외향인에 가깝다고 할 수 있고 1점일 경우에는 매우 내향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기자명 김명철 (심리학 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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