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월이면 정년퇴직을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의 일만 같다. 30년의 세월이 한달음에 훌쩍 가버린 느낌이다. 교직을 떠날 때가 되니 이제야 조금씩 깨달아지는 것들이 있다. 선의를 가지고 한 인간을 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도 알겠다. 많은 것을 하는 것보다 필요 없는 것을 하지 않는 게 더 교육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런 걸 진작 좀 깨달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움이 가슴을 후비지만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얼마 전 일이다. 나는 수업을 하다가 잠깐 동작을 멈추었다. 문득 교실에서 나 혼자만 열심히 떠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칠판에 써놓은 것들을 모두 지우고 그 자리에 ‘want’라는 영어 단어를 새로 썼다. 동그래진 아이들의 눈을 향해 나는 이렇게 물었다.

“진수성찬 앞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누굴까요?”

“맛을 못 느끼는 사람이요.”

“배부른 사람이요.”

ⓒ박해성 그림

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호응해주었다. 두 번째 답을 한 아이에게는 놀랍다는 표정까지 지어 보였다. 내가 준비한 ‘방금 전에 라면을 세 그릇이나 먹어버린 사람’과 가장 답이 근사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교실 분위기가 한결 나아지자 나는 칠판에 써놓은 글씨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여기 want라는 단어는 여러분이 알고 있는 ‘원하다’ ‘바라다’라는 뜻 말고도 ‘부족하다’ ‘모자라다’라는 뜻도 있어요. 그런데 ‘원하다’와 ‘부족하다’가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부족해야 원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맞아요. 부족하고 모자라야 원하는 마음이 생기겠지요. 배가 고파야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듯이. 그런데 지금 전 너무 불행해요. 여러분이 배가 고프지 않은지 제가 준비해온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지 않아서요.”

그러자 사람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기특하고 멋진 녀석들이 한마디씩 농을 걸어온다.

“쌤! 아직 점심시간이 안 돼서 그럽니다.”

“저는 배가 안 고파도 맛있게 먹겠습니다. 냠냠!”

자화자찬이 되겠지만, 나는 그런대로 수업을 재밌게 하는 편이다. 학생들도 나를 잘 따르고 내 수업을 좋아한다. 문제는 설명이 필요한 중요한 대목에서 어김없이 수업 분위기가 산만해진다는 점이다. 아예 내 눈을 피하는 아이들도 있다. 잘 듣고도 이해를 못하면 영락없이 머리가 나쁜 학생이 되기 때문이다. 성실하지 못한 것보다 머리가 나쁜 것을 더 부끄럽게 여기는 게 아이들 잘못만은 아닐 터다. 물론 내 탓도 있을 것이다. 나는 한 번도 아이들의 명석하지 못한 머리를 탓하거나 이해가 더디다는 이유만으로 화를 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은연중에 나의 눈빛이 그 말을 대신했을 수도 있다. 아, 내 눈빛이 문제라면?

수행평가를 받지 않겠다는 아이에게

며칠 전 퇴근길에 한 여학생을 만났다. 그애는 나를 보자 단거리 선수처럼 달려와 꾸벅 인사를 했다. 눈 속까지 환한 웃음을 보여주더니 안녕히 가시라고 마구 손을 흔들어댔다. 영어 수행평가에서 최하점을 받은 아이다. 처음에는 아예 수행평가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럼 빵점을 줄 수밖에 없다고 하자 상관없다고 했다.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내가 먼저 읽을 테니 따라서 읽어보라고 했다. 자꾸 따라서 읽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영어가 늘 거라고 했다. 영어를 못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며 모든 사람이 다 영어를 잘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재밌게 하면 된다고 말이다.

몇 번 더 설전이 오고 간 뒤 결국은 내가 이겼다. 녀석은 손에 책을 들더니 나를 따라서 떠듬떠듬 영어 문장을 읽기 시작한 것이었다. 마치 처음 걸음마를 배우듯 뒤뚱뒤뚱했다. 그러다가 다시 걸음을 계속했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를 바라보는 어미의 눈빛이 그랬을까? 한 존재의 작은 성취에 늙은 선생은 신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날, 그 아이에게 영어를 못해도 너를 좋아할 거라는 말은 눈으로만 했다.

기자명 안준철 (시인·순천 효산고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