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스포츠에서 흑인을 빼면 거의 모든 종목의 운영이 어려워질지도 몰라. 특히 인기 있는 미국의 프로 스포츠들, 이를테면 농구나 야구 등에서도 흑인의 존재감은 엄청나지.

그러나 흑인이 당당하게 그라운드를 뛰고 코트를 누비게 된 역사는 뜻밖에 짧아. 미국 프로 야구 메이저리그에 최초의 흑인 잭 로빈슨이 발을 디딘 건 1947년의 일이야. 아이스하키 리그에서는 그로부터도 11년이 지난 1958년에야 흑인 선수 윌리 오리가 처음으로 빙판에 서지. 그가 스케이팅을 할 때 백인 관중들은 목화꽃을 던졌어. 축하가 아니라 “목화밭에 가서 목화나 따라, 이 검둥아”라는 뜻이었지. 21세기 들어 그는 각종 공로상과 훈장을 받으며 ‘최초의 흑인 NHL(북미 아이스하키 리그) 선수’로 영예를 드높이게 되는데 그때 그가 토로한 한마디는 참 가슴을 아프게 한다. “나는 그냥 한 명의 선수이고 싶었는데.” 그럼 미국의 오랜 인기 스포츠였던 프로 복싱의 경우는 어떨까?

맨몸과 두 주먹으로 하는 스포츠여서 그런지 다른 종목에 비해서는 흑인의 진출이 빨랐어. 헤비급 세계 타이틀을 25차나 방어했고 히틀러가 자랑하는 독일의 세계 챔피언 막스 슈멜링을 때려눕혀 미국인들을 열광시켰던 ‘갈색의 폭격기’ 조 루이스는 가장 위대한 복서 중 하나로 꼽히지. 그럼 그가 최초의 흑인 챔피언이었을까? 그렇지 않아. 그 앞에는 잭 존슨이라는 걸출하지만 잊힌 이름이 있단다.

존슨은 1878년생이니까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 15년 뒤에 태어났어. 해방은 됐다지만 흑인의 지위는 노예에서 그다지 나아진 것이 없었지. 존슨은 흑인 복서들을 상대로 싸운 끝에 흑인 챔피언에 올라. 그러고는 당시 백인 챔피언으로 무패를 자랑하던 제임스 제프리스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하지만 제프리스는 “나는 짐승과는 싸우지 않는다”라고 말한 뒤 은퇴를 선언해.

ⓒWikipedia1909년 세계 최초 흑인 복싱 챔피언 잭 존슨(오른쪽)이 제임스 제프리스와 대결하고 있다.

그 뒤를 이은 게 토미 번스라는 캐나다의 백인 선수였는데 잭 존슨은 번스에게 끈덕지게 도전장을 내밀어 경기를 하게 돼. 그런데 이 경기에서 존슨은 번스를 아주 곤죽으로 만들어버리고 챔피언 타이틀을 따내. 심판도 아닌 경찰이 “저러다 흑인이 백인 죽이겠다”라며 링으로 뛰어들 정도였어. 그렇게 잭 존슨은 세계 최초의 흑인 챔피언이 된다. 하지만 그가 타이틀을 획득하고 포효하는 사진은 역사에 남아 있지 않아. 흑인이 백인을 때려눕히는 모습을 용납할 수 없다며 경찰들이 카메라를 압수해버렸기 때문이지.

이 경기를 지켜본 한 백인 기자이자 작가가 있었어. 이름은 잭 런던. 아마 너도 들어봤을 거야. 네가 재미있게 본 소설 〈하얀 엄니〉의 저자야. 그는 인간의 평등을 주창한 사회주의 작가로 이름이 높은데, 놀랍게도 이 경기를 보고 난 뒤 노골적인 인종주의 성향을 드러내. “원숭이로부터 타이틀을 되찾아올 위대한 백인을 희망한다”라는 식이었지.

잭 런던을 비롯한 여러 백인들의 호소에 등을 떠밀려 전 챔피언 제임스 제프리스가 존슨에게 도전장을 던졌지만, 존슨에게 그야말로 박살이 나고 말아. 이 경기를 지켜본 백인들은 폭동을 일으키고 그 와중에 흑인과 백인 수십명이 목숨을 잃고 만단다.

당시 백인들은 ‘흑인이 세계에서 제일 강하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야. 뻔히 눈앞에서 펼쳐진 경기를 부인할 도리는 없고 결국 눈에 띄는 다른 불쌍한 흑인을 족칠 수밖에 없었던 거지. 어딜 감히! 흑인 따위가 백인을 제치고 챔피언이라니! 입에서는 “아프리카로 돌아가 버려라”는 저주를 내뿜고 맘속으로는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저런 검둥이들이…” 하는 한탄을 했을 거야.

백인 도전자들을 연달아 물리치면서 잭슨은 승자로서 당연한 것을 누렸어. 사자를 때려잡은 삼손처럼 포효했고 백인 아가씨들의 환호를 받았고 그들과의 로맨스를 즐겼지. 이것 또한 백인들의 속을 펄펄 끓게 만들기에 충분한 일이었어. 백인과 연애했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이 재판도 없이 흑인을 나무에 목매달아 죽이는 시대였으니 오죽했겠니. 백인 인종주의자들은 눈엣가시인 흑인 챔피언을 몰아내기 위한 공작을 전개하게 돼. “백인 여성이 매춘을 위해 주 경계를 넘을 수 없다”라는 법을 들고나왔던 거야.

ⓒ연합뉴스이자스민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초코바 먹는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어 곤욕을 치렀다.

잭 존슨은 백인 여성과 결혼했지만, 인종주의에 사로잡힌 백인들은 그걸 결혼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단지 “돈으로 여자를 샀다”고 우겼지. 아내를 데리고 자유로이 미국을 누비던 잭 존슨은 바로 “매춘부를 데리고 주 경계를 넘은” 죄로 기소돼. 부부는 미국을 탈출했지만 아내는 압박감에 못 이겨 자살하고 말았고 존슨도 그 후 별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침울하게 살다가 세상을 떴단다.

오늘 우리에게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처럼 당연한 생각들 대부분은 한때 지극히 배척받거나 목숨을 위협할 만큼 위험한 것이었단다. 동시에 지금 당연하다고 여기는 부분에도 과거의 그림자는 스며들어 있지. 요즘 누군가 ‘인간은 기본적으로 불평등한 존재이고 타고난 우열이 존재한다’고 우기면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제대로 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할 테지만 특정 집단에 대해 나누는 쑥덕거림으로, 뒤통수를 때리는 험담으로, 익명의 가면을 쓴 저주의 형태로는 엄존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백인들만 그럴까? 아니, 우리도 그래.

왜 이자스민의 초코바는 ‘문제’가 됐을까

며칠 전 한 매체는 필리핀계 한국인인 이자스민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음식을 먹고 게임을 했다’며 대문짝만한 폭로 기사를 실었지. 그러자마자 “필리핀으로 돌아가라”부터 별별 상욕에 이르는 댓글이 흘러넘치더구나.

처음에는 본회의장에서 파티라도 한 줄 알았어. 하지만 이자스민 의원은 ‘본회의가 열리기 전에’ 초코바 하나를 먹었을 뿐이었고 ‘게임 삼매경’에 빠진 것도 본회의가 열리기 전이었어. 즉 네가 쉬는 시간에 휴대전화 게임을 한 것과 똑같아. 그런데 잭슨이 아내를 데리고 여행한 걸 ‘매춘법 위반’으로 몰아붙였던 미국인들처럼, 일부 언론은 이자스민 의원을 국회법을 어기고(!) 국정을 방기한 수준 낮은 국회의원으로 지나치게 매도해 내동댕이쳤고 “일단 흑인 챔피언 보기가 싫었던” 백인들과 같이 “필리핀 출신 국회의원”에 불만을 품은 일부 한국인들은 그녀를 아주 살벌하게 물어뜯었단다.

사람인 이상 편견을 가질 수 있어. 그러나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피부색 때문이든 종교 때문이든 출신 지역 때문이든 차별받지 아니하며, 그것을 이유로 모욕할 수 없다는 개념은 인류가 오랜 역사 동안 일궈낸 수확이야. 잭슨을 참아주지 못한 미국인들과, 회의 열리기 전 초코바 하나 먹은 것을 대단한 비행으로 몰아붙인 일부 한국인은 그런 의미에서 인류의 금기 중 하나를 어겼다고 생각해. ‘인종주의’지. 만약 여당의 김무성 대표나 야당의 문재인 대표가 본회의를 앞두고 허기진 배를 초코바로 달래는 모습이 나왔다면 오히려 ‘미담’이 됐을지도 몰라. 그런데 왜 이자스민의 초코바는 문제가 됐을까.

이를 폭로(?)한 언론 매체는 이자스민 의원실에 ‘해명’을 요구했지만 대답이 없었다고 적고 있어. 내막은 잘 모르지만 아빠는 이자스민 의원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특히 나름 ‘진보’를 자처하는, 잭 런던 같은 한국인들이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속이 뒤집혔을까.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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